| 온유한 시선으로 마주하는 오늘의 얼굴
| 햇빛 두 개 더
| 저자 : 고영민 | 출판 : 문학동네 | 추천일: 2024. 11. | <추천글> 고영민의 시집에는 일상에서 틀려도 좋은, 틀려서 좋은 따뜻한 순간들이 가득하다. 체념도 극복도 아닌, 그저 느긋한 ‘긍정’이 오히려 위로된다. 그것이 우리를 울게도 웃게도 한다.
<출판사 서평> ◎ 고영민 시인과의 미니 인터뷰
1. 5년 만의 신작 시집입니다. 독자들께 오랜만에 시집을 선보이는 소감과 더불어 인사 말씀 부탁드립니다. 저는 요즘 아침 일찍 공원 산책을 하는데, 매번 좋습니다. 매일매일 다릅니다. 같은 적이 없습니다. 늘 처음이고 마지막입니다. 그런 것처럼 이번 시집이 여섯번째 출간 시집인데도 처음처럼 긴장되고 새롭습니다. 시집을 묶을 때의 기분은 늘 처음의 처음으로, 끝의 끝으로 돌아간 것 같습니다. 시가 시를 씀으로 처음 나를 이곳에 데려온 것 같고, 또 뒤늦게 도착한 기분입니다. 멀고 낯설고, 시는 시인 속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2. 이번 시집에서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지만, 주요한 키워드를 꼽자면 ‘가족’과 ‘일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두 단어가 작가님의 시작(詩作)에 끼치는 영향에 대해 들어보고 싶어요. 시인은 시를 살아내는 사람일 것입니다. 시는 그냥 살아가는 일이고 살아내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시는 그저 일상입니다. 그리고 일상의 한가운데 가족이 있습니다. 시인은 그렇게 일상을 오롯이 살아내는 것이며, 그 안에서 순간순간 부딪치는 질문을 통해, 다른 차원의 존재가 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3. 작가님의 주요한 시적 방법론 중 하나가 ‘착-각’에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와 연관 지어 시가 오는 순간/시가 되는 순간들에 대해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시는 보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유심히 보는 것은 대상을 새로운 눈으로 보는 전제조건입니다. 창조의 본질은 관찰하는, 발견하는 눈입니다. 프랑스 소설가 마르셀 프루스트는 “발견의 진정한 마법은 새로운 풍경을 찾아나서는 데 있지 않다. 새로운 눈을 갖는 데 있다”고 말합니다. 즉, 대상을 어떻게 인식하느냐가 관건입니다. 제 시에서의 착각도 인식의 한 방법입니다. 저는 서로 다른 세계의 겹침을 경험할 때가 있습니다. 물론 착각이죠. 관점의 변화만으로도 친숙한 풍경이 새롭게 보이는 현상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대상을 새로운 시각으로 인식하는 것, 이것이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시적 인식’입니다. 흔히 시인(詩人)을 시인(視人)이라고 말하는 이유도 이 때문일 것입니다.
4. 수록작 중에 가장 마음이 가는 시편은 무엇이었나요? 그 이유에 대해서도 들어보고 싶습니다. 「립싱크」라는 시입니다. 결국 저는 또 어머니 이야기를 하고 맙니다. 이 시에서의 애인은 어머니입니다. 회사에서 일을 하는데, 무심결 제가 어머니가 생전에 즐겨 부르던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습니다. 이 노래가 어떻게 나를 찾아왔을까. 먹먹해진 가슴으로 한동안 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어머니가 그 노래를 어디에서 어떻게 익혔는지 모르지만, 어머니는 가끔 밭이나 부엌에서 일을 할 때 그 노래를 혼자 흥얼거렸습니다. 노래는 어머니가 부른다기보다는 그냥 어머니에게서 흘러나왔습니다. 어머니가 무언가에 잔뜩 정신이 팔려 자신을 놓고 있을 때 노래는 흘러나왔고, 자신이 노래를 흥얼거리는 것을 자각하는 순간 노래는 어머니의 입에서 잦아들었습니다. 그 순간 어머니는 노래의 노래였습니다.
5. 작가님만의 ‘시 읽기’ 노하우 한 가지를 알려주세요. 시를 쓰는 사람이나 읽는 사람이나 시의 숙주입니다. 시는 시를 쓰기로, 또 읽기로 작정한 사람의 내부에서 생(生)을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시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시가 사람 속으로 들어옵니다. 시가 들어와 사는 것입니다. 숙주가 기생체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기생체가 숙주를 선택하는 이치와 같습니다. 숙주의 기능이 다 된 경우 기생체는 자기에게 필요한 다른 숙주를 선택하게 됩니다. 시는 끊임없이 시를 쓰기로, 또 읽기로 작정한 사람을 찾아다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는 한 눈금도 더할 수도 뺄 수도 없이 몸으로 살아낸 만큼 쓸 수 있으며, 읽어낼 수 있으니 덤도 에누리도 없습니다. 시를 잘 쓰거나 읽기 위해서는 자신을 시적인 상태로 만들어놓아야 합니다. 시가 자기 안에서 잘 살 수 있도록 좋은 마음, 몸 상태를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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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민의 시집에는 일상에서 틀려도 좋은, 틀려서 좋은 따뜻한 순간들이 가득하다.
체념도 극복도 아닌, 그저 느긋한 ‘긍정’이 오히려 위로된다. 그것이 우리를 울게도 웃게도 한다.
<출판사 서평>
◎ 고영민 시인과의 미니 인터뷰
1. 5년 만의 신작 시집입니다. 독자들께 오랜만에 시집을 선보이는 소감과 더불어 인사 말씀 부탁드립니다.
저는 요즘 아침 일찍 공원 산책을 하는데, 매번 좋습니다. 매일매일 다릅니다. 같은 적이 없습니다. 늘 처음이고 마지막입니다. 그런 것처럼 이번 시집이 여섯번째 출간 시집인데도 처음처럼 긴장되고 새롭습니다. 시집을 묶을 때의 기분은 늘 처음의 처음으로, 끝의 끝으로 돌아간 것 같습니다. 시가 시를 씀으로 처음 나를 이곳에 데려온 것 같고, 또 뒤늦게 도착한 기분입니다. 멀고 낯설고, 시는 시인 속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2. 이번 시집에서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지만, 주요한 키워드를 꼽자면 ‘가족’과 ‘일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두 단어가 작가님의 시작(詩作)에 끼치는 영향에 대해 들어보고 싶어요.
시인은 시를 살아내는 사람일 것입니다. 시는 그냥 살아가는 일이고 살아내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시는 그저 일상입니다. 그리고 일상의 한가운데 가족이 있습니다. 시인은 그렇게 일상을 오롯이 살아내는 것이며, 그 안에서 순간순간 부딪치는 질문을 통해, 다른 차원의 존재가 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3. 작가님의 주요한 시적 방법론 중 하나가 ‘착-각’에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와 연관 지어 시가 오는 순간/시가 되는 순간들에 대해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시는 보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유심히 보는 것은 대상을 새로운 눈으로 보는 전제조건입니다. 창조의 본질은 관찰하는, 발견하는 눈입니다. 프랑스 소설가 마르셀 프루스트는 “발견의 진정한 마법은 새로운 풍경을 찾아나서는 데 있지 않다. 새로운 눈을 갖는 데 있다”고 말합니다. 즉, 대상을 어떻게 인식하느냐가 관건입니다. 제 시에서의 착각도 인식의 한 방법입니다. 저는 서로 다른 세계의 겹침을 경험할 때가 있습니다. 물론 착각이죠. 관점의 변화만으로도 친숙한 풍경이 새롭게 보이는 현상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대상을 새로운 시각으로 인식하는 것, 이것이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시적 인식’입니다. 흔히 시인(詩人)을 시인(視人)이라고 말하는 이유도 이 때문일 것입니다.
4. 수록작 중에 가장 마음이 가는 시편은 무엇이었나요? 그 이유에 대해서도 들어보고 싶습니다.
「립싱크」라는 시입니다. 결국 저는 또 어머니 이야기를 하고 맙니다. 이 시에서의 애인은 어머니입니다. 회사에서 일을 하는데, 무심결 제가 어머니가 생전에 즐겨 부르던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습니다. 이 노래가 어떻게 나를 찾아왔을까. 먹먹해진 가슴으로 한동안 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어머니가 그 노래를 어디에서 어떻게 익혔는지 모르지만, 어머니는 가끔 밭이나 부엌에서 일을 할 때 그 노래를 혼자 흥얼거렸습니다. 노래는 어머니가 부른다기보다는 그냥 어머니에게서 흘러나왔습니다. 어머니가 무언가에 잔뜩 정신이 팔려 자신을 놓고 있을 때 노래는 흘러나왔고, 자신이 노래를 흥얼거리는 것을 자각하는 순간 노래는 어머니의 입에서 잦아들었습니다. 그 순간 어머니는 노래의 노래였습니다.
5. 작가님만의 ‘시 읽기’ 노하우 한 가지를 알려주세요.
시를 쓰는 사람이나 읽는 사람이나 시의 숙주입니다. 시는 시를 쓰기로, 또 읽기로 작정한 사람의 내부에서 생(生)을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시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시가 사람 속으로 들어옵니다. 시가 들어와 사는 것입니다. 숙주가 기생체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기생체가 숙주를 선택하는 이치와 같습니다. 숙주의 기능이 다 된 경우 기생체는 자기에게 필요한 다른 숙주를 선택하게 됩니다. 시는 끊임없이 시를 쓰기로, 또 읽기로 작정한 사람을 찾아다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는 한 눈금도 더할 수도 뺄 수도 없이 몸으로 살아낸 만큼 쓸 수 있으며, 읽어낼 수 있으니 덤도 에누리도 없습니다. 시를 잘 쓰거나 읽기 위해서는 자신을 시적인 상태로 만들어놓아야 합니다. 시가 자기 안에서 잘 살 수 있도록 좋은 마음, 몸 상태를 만드는 것이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