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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숲

다이앤14
2024-02-03
조회수 474

니콜 크라우스의 이 작품은 너무 난해했다. <위대한 집>을 읽을 때에도 ‘유태인임’이 작가에게 얼마나 큰 구속이 되고 중요한 이슈인지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이해가 잘 되지 않는 부분들이 많았는데, 이번 작품에서는 작가 스스로 자신의 정체성을 깨고 나오려는 몸부림을 절실히 다루고 있는 듯 해서 더욱 그랬다. 


<사랑의 역사>가 전세계적으로 성공을 거둔 이후에 유태인 사회에서는 그녀에게 민족의식을 고양할 무엇인가 모범이 될만한 활동을 해주기를 기대했던 모양이다. 그런 것들이 작가에게 자신을 ‘결박’하는 것으로 다가왔고, 순탄치 못한 결혼생활로 결국 이혼까지 하면서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색깔의 작품을 쓰게 된 것인듯. 작가의 새로운 모습을 보게 되는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좀처럼 이해하기 힘든 구조와 심오한 종교적 민족적 색채가 물씬한 작품은 실망스러운 부분이 많았다.


맨해튼에 사는 부유한 변호사 줄스 엡스타인. 평생을 전투적이고 도전적인 자세로 살아온 그는 예순여덟 생일을 맞고 얼마 뒤, 자신의 삶에 회의를 느끼기 시작한다. 값비싼 예술품을 모으고 고상한 삶을 살던 그는 자식들과 재무 변호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돈과 귀중품을 주변 사람들에게 무차별적으로 나누어주기 시작한다. 

마침내 재산이 바닥을 보이기 시작할 무렵, 그는 부모님을 기념할 만한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남은 돈을 들고 이스라엘 텔아비브로 떠난다. 자신이 태어난 그 도시에서 부모님의 이름으로 돈을 기부할 곳을 물색하던 중, 그는 미국 유대인 지도자 모임에서 만났던 랍비 한 명과 조우한다. 

‘다윗왕 후손 재회 행사’를 조직하고 있는 랍비는 엡스타인이 다윗왕의 직계 후손이라 주장하며 그를 끌어들이기 위해 애쓰고, 그로 인해 엡스타인은 계획과 다른 방향으로 정처 없이 나아가기 시작한다.


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린 소설가 니콜은 유대인이라는 정체성을 내세운 소설로 인정받아왔다. 그러나 지금 그녀는 차기작을 준비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두 어린 아들을 매개로 간신히 지속되던 결혼생활 역시 돌이킬 수 없이 악화되어간다. 

어느 날 전화 통화를 하던 당숙이 얼마 전에 이스라엘 텔아비브의 힐턴호텔에서 떨어져 죽었다는 남자 이야기를 꺼내고, 그녀는 그 순간 글쓰기의 돌파구가 그곳에 있을 거라는 막연한 희망에 휩싸인다. 그 호텔은 니콜의 어머니가 그녀를 잉태한 곳이자, 그녀가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과 함께 거의 매년 휴가를 보냈던 곳이다. 결국 니콜은 뚜렷한 계획도 없이 충동적으로 텔아비브에 가지만, 거기서도 그녀는 글을 쓰지 못한다. 

좌절과 고민에 빠진 그녀 앞에, 당숙의 친구이자 텔아비브대학교의 문학 교수라는 정체불명의 남자가 나타난다. 그는 니콜에게 세상에 발표되지 않은 카프카의 유고 이야기를 꺼내며, 믿기 어렵지만 그녀가 도저히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한다.


전반부의 줄스 엡스타인의 이야기는 아마도 <사랑의 역사>의 성공 이후 승승장구하며 거칠것 없던 작가의 모습을 그린 것인듯. 화려하지만 어딘가 공허한 마음에 파행을 거듭하며 방황하는 인물이다. 후반부에 나오는 니콜 역시 작가 자신의 이름을 그대로 사용할만큼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반영한 캐릭터다. 작품의 마지막 ‘작가 노트’에 인용한 문장들이 두 인물과 작가 자신의 상황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이 아닌가 싶다. 안타깝다.


우리의 인생길을 반쯤 지났을 때

나는 어두운 숲에서 헤매고 있었네,

똑바로 난 길을 잃어버렸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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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의 자랑이 되어야 한다는 필요만으로도 기형을 일으키기 충분한데, 민족 전체의 자랑이 되어야 한다는 압박이란 완전히 다른 차원의 문제다. 내게 글쓰기는 그런 것과는 전혀 별개로 시작되었다. 열넷인가 열다섯 살에, 나는 글쓰기를 나 자신을 조직하는 방법으로 인식했다—단지 나 자신을 탐색하고 발견할 뿐만 아니라 의식적으로 성장시키는 방법으로. 하지만 그것은 진지한 작업이었던 동시에 유쾌하고 즐거움으로 가득한 일이기도 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저 모호하고 별난 사적인 과정에 불과했던 것이 점차 직업으로 정착하자 글쓰기와 나의 관계는 변했다. 글쓰기는 이제 내면의 필요에 대한 답이면 충분한 것이 아니라 다른 많은 것이 되어야 했고 다른 상황에서도 효능을 발휘해야 했다. 그리고 그런 효능을 발휘하면서, 애초에 자유로움의 행위로 시작했던 것이 또다른 형태의 결박이 되고 말았다.


어두운 숲 | 니콜 크라우스, 민은영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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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a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