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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여관

다이앤14
2024-04-03
조회수 54

4.3을 코앞에 두고 잔지한 마음으로 읽어볼 수 있었던 의미있는 작품이었다. 『백년여관』의 서사는 세 개의 사건을 상징하는 세 인물을 중심으로 구성된다. 이 셋은 모두 불행했던 역사로 인해 깊은 내상을 입은 사람들이다.


<1> 1948년 제주도 4·3항쟁의 희생자 가족 강복수

4·3항쟁 희생자의 아들로서, 사법시험에 합격하고도 연좌제에 의해 법관의 길을 갈 수 없었던 강복수는 승려와도 같은 삶을 살아야 했다. 월남전에서 저지른 가해의 기억과 부상 입은 몸의 후유로 인해 고통스런 삶을 살아가는 허문태와 처남매부 사이로 ‘백년여관’을 운영한다.

<2> 1950년 8월의 보도연맹원 학살사건의 희생자 가족 김요안

1950년 보도연맹원 학살사건 당시 어머니가 처참하게 욕을 보고 살해당하는 꼴을 목격해야 했던 김요안은 전쟁고아로 미국으로 보내졌지만 정신적 외상으로 인한 기억상실증에 더하여 신경증적 발작에 시달려왔다.

<3> 1980년 광주항쟁의 피해자이자 소설가 이진우

이진우는 광주항쟁 당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못하고 친구를 배반했다는 깊은 죄의식으로 인해 괴로워했다.
이들은 모두 1999년 12월 한반도 남해안의 영도라는 가공의 섬에 모인다. 강복수와 허문태는 백년여관을 운영하는 사람들이고, 잃어버린 기억을 찾고자 하는 김요안과 속죄를 위해 친구의 발자취를 확인하고자 하는 소설가 이진우 두 사람은 손님이다. 그들은 시애틀과 서울에서 똑같이 어떤 목소리를 들었다. 시간이 됐으니 돌아오라는 메시지였다.

임철우(혹은 이진우)는 광주항쟁 때 친구에게 비겁한 짓을 했다는 누구에게도 말 못할 죄의식을 지니고 있었고, 광주항쟁에 관한 다섯 권짜리 장편을 쓴 후 마치 고해를 하듯이 조용하게 자전소설을 발표했다. 그 친구가 읽어주리라는 기대를 하면서. 그렇다면 이제 남은 것은 그 친구에게 사죄하고 용서를 구하는 일이다. 그런데 그런 속죄의 순간이 오기도 전에 그 친구가 세상을 떠나버렸다. 

친구 케이는 광주항쟁 당시 전면에서 나서서 활동을 했고 살아남아 도피생활을 했고 또 체포당해 중형을 선고받았고 특사로 풀려난 이후로는 연극 활동을 통해 광주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애를 썼었다. 그런 그가, 다섯 권짜리 광주에 관한 장편이 나온 해에 암으로 세상을 떠나버렸다.

소설가 이진우가 백년여관을 찾은 것은 바로 이 친구에 관한 기억 때문이다. 친구 케이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들른 곳이 바로 영도의 백년여관이었다는 것이다. 케이가 이미 세상을 떠난 마당에 용서를 구할 사람, 자기를 용서해줄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는 죄의식 때문에 그 자리를 찾아간다. 

케이의 흔적을 따라 영도에 내려갔던 이진우는 케이의 비밀과 맞닥뜨리게 된다. 영도에서 만나게 된 순옥이라는 여성을 통해서였다. 케이는 광주항쟁 때 앞장서서 활동했지만 도청을 향해 탱크를 앞세운 진압군이 몰려들던 그날 밤, 십여 명의 어린 여학생들을 이끌고 사지를 빠져나왔다. 순옥은 이십 년 전, 케이에게 이끌려 그 현장을 빠져나온 여학생 중의 하나였고, 순옥의 입을 통해 이진우는 그 사실을 알게 된다.

친구의 흔적을 찾아 내려온 영도에서, 자기에게 죄의식을 안겨준 사람이었던 케이가 자기 자신과 다르지 않은 죄의식으로 인해 얼마나 고통스러워했는지를 알게 되는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역사의 죄인들은 느끼지 못하는 죄의식을 오히려 피해자였던 이들, 맞서 싸웠던 이들만 느껴야하는 것인가 자괴감이 들기도 했다. 책 속의 인물들과의 이야기가 작가 자신의 실제 삶을 그린 것이라는 점 또힌 작품의 무게를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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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a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