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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ᅋᅦ⋅ᅋᅳ란스(정지용 전 시집) 후기 - 시모임 '평산시애'에서 함께 읽다.

엄지공주
2024-05-18
조회수 218

정지용

  • 1902년 옥천 출생. 
  • 1923년 일본 교토 도시샤 대학 입학. 
  • 1926년 <학조>에 ‘카페 프란스’ 발표. 
  • 1929년 귀국 후 휘문고보 영어 교사 재직. 
  • 1930년 <시문학> 동인 참여. 
  • 1933년 모더니즘 운동의 ‘구인회’ 가담. 
  • 1939년 <문장>지 ‘시 부분 추천위원’으로 ‘청록파’ 추천. 
  • 1946년 조선문학가동맹 중앙집행위원 역임. <경향신문> 주간으로 윤동주 ‘쉽게 씌여진 시’ 추천. 
  • 1950년 한국전쟁 중 납북되는 과정에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됨. 
  • 1988년 해금되어 한국인이 좋아하는 시인 중 한 사람이 됨. 

 

‘향수’와 '유리창'의 시인, 윤동주가 존경했던 시인. 이번에 평산책방 시모임(평산시애)에서 정지용의 시 전집을 읽었다. 그는 살아 생전 시집 두 권을 남겼다. 1935년 <정지용 시집>, 1941년 <백록담>. 첫 시집에서 20대에 쓴 시들은 일본 유학 시절, 신문물을 접한 지식인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근대적인 것에 대한 놀라움과 관심을 보여주고 있다. 일부러 외국말을 섞어쓰는 허세스러운 면도 있었다. 이때의 시들을 읽다 보면 향토적이고 서정적인 시, 아름다운 우리말의 진수 ‘향수’의 작가가 맞나 의아하게 된다. ‘카ᅋᅦ⋅ᅋᅳ란스'가 대표작이다. 

 

카ᅋᅦ⋅ᅋᅳ란스

 

옴겨다 심은 종려나무 밑에

빗두루 슨 장명등

카ᅋᅦ⋅ᅋᅳ란스에 가쟈.

 

이놈은 루바쉬카

또 한놈은 보헤미안 넥타이

뻣적 마른 놈이 압장을 섰다.

 

밤비는 뱀눈처럼 가는데

페이브멘트에 흐늙이는 불빛

카ᅋᅦ⋅ᅋᅳ란스에 가쟈.

 

이 놈의 머리는 빗두른 능금

또 한놈의 심장은 벌레 먹은 장미

제비처럼 젖은 놈이 뛰여 간다

 

『오오 패롵鸚鵡 서방! 꾿 이브닝!』

 

『꾿 이브닝!』(이 친구 어떠하시오?)

 

울금향鬱金香 아가씨는 이밤에도

경사 更紗 커-틴 밑에서 조시는 구료!

 

나는 자작子爵의 아들도 아모것도 아니란다.

남달리 손이 히여서 슬프구나!

 

나는 나라도 집도 없단다

대리석 테이블에 닷는 내뺌이 슬프구나!

 

오오, 이국종異國種 강아지야

내발을 빨어다오.

내발을 빨어다오.    (1926. 6.) p.62

 

옮겨다 심은 종려나무(야자수)와 장명등이 있는 카페 프란스. 원산지를 떠나온 종려나무와 같은 처지인 유학생 세 명이 비오는 밤거리를 걸어 카페 프란스에 간다. 그들의 옷차림과 카페의 모습은 사뭇 이국적이다. 조선의 청년 유학생들에게 문명 개화한 일본의 모든 것이 얼마나 새로웠을까. 카페에는 ‘굿 이브닝’이라 말하는 앵무새와 울금향 아가씨가 졸고 있다. 자신의 존재는 아무것도 아닌, 나라도 집도 없는, 손이 흰 무기력한 존재다. 그저 테이블에 빰을 대고 슬퍼할 뿐이다. 그리하여 화자는 이국종 강아지에게라도 위안을 얻고 싶어한다. 

이국 땅에서 식민지 백성으로 자존감을 상실한 시인은 자신을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조약돌’에 비유한다. 말 못하고 앓기만 하는 피에로나 고달픈 청제비와 같이 이국 거리를 피 맺힌 상태로 헤매는 슬픈 존재다.

 

조약돌

 

조약돌 도글 도글...

그는 나의 혼魂의 조각이러뇨.

 

알는 피에로의 설음과

첫길에 고달픈

청靑제비의 푸념 겨운 지줄댐과

꾀집어 아즉 붉어 오르는

피에 맺혀,

비날리는 이국거리를

탄식하며 헤매노나.

조약돌 도글 도글...

그는 나의 혼魂의 조각 이러뇨. (1932. 7.) p.67

 

 

시인에겐 삶이 행복하지 않았다. 엄하고 가부장적인 아버지와 가난한 집안 식구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떠나온 유학생이라는 부담감, 조선인에 대한 일본인들의 차별, 억압적 시대 앞에 당당히 나서지 못하는 자신의 나약함 등등. 삶의 무게에 힘겨워할 때마다 시인은 바다를 바라본다. 바다의 거침없음과 자유로움이 현실의 무게를 잠시 잊을 수 있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바다1

 

오⋅오⋅오⋅오⋅오 소리치며 달려 가니

오⋅오⋅오⋅오⋅오 연달어서 몰아 온다

 

간 밤에 잠살포시

머언 뇌성이 울더니,

 

오늘 아침 바다는

포도삧으로 부풀어졌다.

 

철석, 처얼석, 철석, 처얼석, 철석,

제비 날어 들 듯 물결 새이새이로 춤을 추어. (1927.2) p.100

 

 

일본에서 고향으로 오고 가던 배에서 바라본 바다는 위험하기도 하도 활기가 넘친다. 뇌성이 울리는 무서운 밤 바다를 지나 포도빛으로 물든 아름다운 아침 바다를 만날 수 있다. 살아있는 바다의 모습에서 화자는 삶의 무게를 잠시 잊고 위안을 얻는다. 역동적이고 생동감 넘치는 그 모습에서 힘을 얻는다. 바다는 나약하고 무기력하기만 한 자신을 깨워주는 존재이기도 하다. 

 

나무

 

얼골이 바로 푸른 한울을 울어렀기에

발이 항시 검은 흙을 향하기 욕되지 않도다.

 

곡식알이 거꾸로 떨어져도 싹은 반듯이 우로!

어느 모양으로 심기여젔더뇨? 이상스런 나무 나의 몸이여!

 

오오 알맞은 위치! 좋은 우아래!

아담의 슬픈 유산遺産도 그대로 받었노라.

 

나의 적은 연륜으로 이스라엘의 이천년을 헤었노라.

나의 존재는 우주의 한낱초조한 오점이었도다.

 

목마른 사슴이 샘을 찾어 입을 잠그듯이

이제 그리스도의 못박히신 발의 성혈에 이마를 적시며-

 

오오! 신약의 태양을 한아름 안다. (1934.3) p.140

 

 

나약한 인간이라서 슬픈 시인. 삶의 비애를 그대로 받아들여 인내하며 무기력을 극복하기 위해 절대자를 갈망한다. ‘아담의 슬픈 유산’으로 ‘검은 흙으로 향해 가야 하는’ 인간은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다. 나무가 되어 유한한 존재로서 무한한 존재인 푸른 한울(하늘, 절대자)을 경외하며 갈망한다. 2천년 간 떠돌아다녀야 했던 이스라엘 민족의 슬픈 운명도 이해하며 우주의 한탄 초조한 오점인 자신의 존재를 인정하려 한다. 사슴이 샘을 찾듯 신약의 태양인 신을 안으며 삶의 고독과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한다. 천주교 신자였던 정지용에게 삶이란 죽음과 아픔 그 자체였으며 그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종교가 필요했던 것이다. 

 

 

두 번째 시집, [백록담]을 펼치면 시들이 좀 더 성숙해져감을 느낀다. 자연과 사물을 바라보는 시선이 좀 더 담백해졌다. 담백하게 거리를 두고 바라보며 그림을 그리듯 보여주고 있다. 이때의 시를 감정절제, 회화적, 이미지즘이라고 하는 이유를 ‘구성동’에서 살펴 볼 수가 있다.

 

구성동九城洞

 

골작에는 흔히

유성流星이 묻힌다

 

황혼黃昏에

누뤼가 소란히 싸히기도 하고,

 

꽃도 

귀향 사는곳,

 

절터ㅅ드랬는데

바람도 모히지 않고

 

산山그림자 설핏하면

사슴이 일어나 등을 넘어간다. (1937. 6. 9.) p.165

 

자연은 있는 그대로 아름답다. 적막하고 쓸쓸하다고 느끼는 것은 인간이라서 그렇다. 금강산을 여행하던 시인은 아주 고요한 골짜기로 들어간다. 이 골짜기는 유성과 누뤼(우박)가 떨어지는 등 신비로운 하늘을 기운이 느껴지는 곳이다. 이곳에서는 꽃도 홀로 피어 귀향을 사는 것 같다. 절터가 있었지만 인간이 사라져 이미 폐허가 되었다. 바람도 없는 쓸쓸한 골짜기에 산그림자 슬쩍 떨어져도 사슴이 놀라 일어나 산등을 넘어간다. 고요함 속의 소란, 정중동의 시상 전개 방식. 그래서 더 적막하고 아름다움이 느껴지는 시다. 화자는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러나 그가 보고 있는 자연 자체가 화자의 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말하지 않아도 사물이 말하게 하라.' 정경이 말을 하게 하라는 것이다. 한시에서 만날 수 있는 경지를 정지용의 시에서도 만나게 된다. 


인동차忍冬茶

 

노주인의 장벽腸壁에

무시無時로 인동忍冬 삼긴물이 나린다

 

자작나무 덩그럭 불이

도로 피여 붉고,

 

구석에 그늘 지여

무가 순돋아 파릇 하고,

 

흙냄새 훈훈히 김도 사리다가

바깥 풍설風雪소리에 잠착하다.

 

산중에 채력도 없이

삼동三冬이 하이얗다. (1941. 1.) p.173

 

이 시 또한 회화적이다. 추운 겨울, 혹독한 현실을 인동차를 마시면서 견디는 노주인의 모습에서 탈속의 경지가 느껴진다. 노주인은 산중에서 책력(달력)도 없이 세상에 무관심하게 눈 쌓인 겨울을 보내고 있다. 밖은 한겨울, 집 안엔 자작나무에 붉은 불이 다시 타오르고 한 구석에 무순이 파릇하게 돋았다. 그는 바깥의 풍설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인동차를 마시고 있다. 시인은 노주인의 모습을 통해 자신이 바라는 삶의 자세를 그리고 있다. 세상일에 흔들리지 않고 괴로워하지 않으면서 달관하는 삶을 원했던 것은 아닐까. 

정지용 전 시집을 읽으면서 한 청년이 어른으로 성장하듯 시 또한 성장해 나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정지용은 완성형 시인이지만 전집을 읽어 보면 그의 변화 과정을 알 수가 있다. 그 또한 젊고 패기가 있던 한 청년이었다가 시대의 우울에 빠져 괴로워하며 존재의 무게에 힘들어 하다 종교에 위안을 얻어도 보았다가 달관하여 자연과 인생의 아름다움을 깨닫는 점점 더 성숙한 존재가 되어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세상일에 초연하고 달관하는 삶의 자세를 그리던 40대의 시인은 자신이 원하던 대로 살진 못했다. 자신의 의지와는 다르게 세상은 자신에게 선택을 강요하고 어느 편에라도 설 수밖에 없게 만든다. 해방 이후 그의 행보는 그가 원했던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식민지 시대와 그 이후 좌우익의 대립 속에서 결코 외면할 수 없었던 시대가 주는 무게감이 상당했을 것이다. 그 당시 최선이었을 자신의 선택이 시인에겐 또 어떤 무게로 다가갔을지 안쓰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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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a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