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숨 작가 책 중에서 추천받아 읽게된 단편집. 표제작 ‘국수’ 너무 찡했다. 디른작품들은 딱히 좋은지는 모르겠지만,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묶인 인연때문에 불편하기도 당황하기도 짐스럽기도 한 우리네 이웃들 이야기를 참 밀도있게도 담았구나 싶은 느낌이 들었다.
시아버지와 며느리의 불편한 동거를 기묘한 분위기로 드러내기도 하고, 증오만 남은 부자 관계를 극도의 공포에 휩싸인 집단 살육의 현장과 중첩시켜 표현하기도 한다. 이쯤되면 가족은 전염병이나 죄악에 가깝다. 그러나 가족이 착취의 제도일 뿐이라는 절망적인 상황을 보여주면서도 작가는 때로 따듯한 국물에 풀어진 부드러운 국숫발처럼 가슴속에 맺힌 응어리를 풀어주기도 한다.
감동적이었던 작품 ‘국수’에서 화자 ‘나’는 29년 전 의붓어머니가 처음 해주었던 음식인 국수를 반죽하고 만들면서 흘러간 세월을 돌아본다. 자식 딸린 남자의 후처로 들어온 의붓어머니는 남편과 의붓자식들에게 제대로 된 식구 대접을 받지 못한 채 29년 세월을 살아왔다. “빚을 갚는 심정으로 반죽의 시간을 견디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화자의 말처럼 국수를 만드는 과정은 지난 시간의 응어리를 풀어내는 화해의 과정과 포개진다.
이런 감정이 울렁거리는 단편을 쓰는 작가였다는 것을 알고보니 얼마전에 읽은 김숨 작가의 장편 <잃어버린 이름>이 좀 다르게 보인다. 거기에도 사람의 마음을 예민하게 긁이대는 울컥거리는 장면들이 몇 군데씩 심심치않게 등장한다. 단편에서부터 내공이 쌓여졌던 결과였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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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이 끈이더라는 말을 친구에게 들은 적이 있어요. 남편과 자신을 이어주는 끈일 뿐 아니라 세상과 이어주는 끈이 돼주더라는 말을요. 일찌감치 결혼해 자식을 넷이나 낳은 친구였지요. 그러고 보니 국숫발이 모양으로만 보자면 끈 같기도 하네요. 혹 당신이 뽑아낸 국숫발들은 끈이 아니었을까요. 당신은 자식이란 끈 대신 밀가루로 반죽을 개어 끈들을 만들어냈던 게 아닐까요. 그 끈들이 허망하게 불어터지고 늘어지는 게 싫어 꾸역꾸역 당신의 입안으로 말아넣었던 것이 아닐까요. 당신이 국숫발을 이로 끊어 먹지 않고 끝까지 젓가락으로 끌어올려 입속으로 말아넣었지요. 그런 국숫발을 내가 숟가락으로 죄다 뚝뚝 끊어버렸으니…… ____‘국수’ 중에서
어제 <파묘>를 두 번째 보고 왔는데(이 영화가 흥행한다는 게 여전히 신기한 1인!), 중간에 사찰에서 큰 일 앞두고 보살님이 국수 끓여줘서 모든 인물들이 맛있게 먹는 장면이 눈에 들어오더라구요. 돈 받고 일하느라 모인 4명이 처음으로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식사를 하고....이후 일이 터지고 나서 최민식 딸 결혼식에서 가족도 아닌데 가족사진 찍죠.
결혼 자체도 옛날엔 '국수 먹는 날'이었는데, 어떤 음식보다 더 결합의 의미를 가졌나 싶었는데요. 이 서평을 읽고 나니 진짜 '끈'같고 연결 같구나 싶네요.
매번 소설과는 다른 딴소리, 죄송합니다 😅
김숨 작가 책 중에서 추천받아 읽게된 단편집. 표제작 ‘국수’ 너무 찡했다. 디른작품들은 딱히 좋은지는 모르겠지만,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묶인 인연때문에 불편하기도 당황하기도 짐스럽기도 한 우리네 이웃들 이야기를 참 밀도있게도 담았구나 싶은 느낌이 들었다.
시아버지와 며느리의 불편한 동거를 기묘한 분위기로 드러내기도 하고, 증오만 남은 부자 관계를 극도의 공포에 휩싸인 집단 살육의 현장과 중첩시켜 표현하기도 한다. 이쯤되면 가족은 전염병이나 죄악에 가깝다. 그러나 가족이 착취의 제도일 뿐이라는 절망적인 상황을 보여주면서도 작가는 때로 따듯한 국물에 풀어진 부드러운 국숫발처럼 가슴속에 맺힌 응어리를 풀어주기도 한다.
감동적이었던 작품 ‘국수’에서 화자 ‘나’는 29년 전 의붓어머니가 처음 해주었던 음식인 국수를 반죽하고 만들면서 흘러간 세월을 돌아본다. 자식 딸린 남자의 후처로 들어온 의붓어머니는 남편과 의붓자식들에게 제대로 된 식구 대접을 받지 못한 채 29년 세월을 살아왔다. “빚을 갚는 심정으로 반죽의 시간을 견디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화자의 말처럼 국수를 만드는 과정은 지난 시간의 응어리를 풀어내는 화해의 과정과 포개진다.
이런 감정이 울렁거리는 단편을 쓰는 작가였다는 것을 알고보니 얼마전에 읽은 김숨 작가의 장편 <잃어버린 이름>이 좀 다르게 보인다. 거기에도 사람의 마음을 예민하게 긁이대는 울컥거리는 장면들이 몇 군데씩 심심치않게 등장한다. 단편에서부터 내공이 쌓여졌던 결과였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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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이 끈이더라는 말을 친구에게 들은 적이 있어요. 남편과 자신을 이어주는 끈일 뿐 아니라 세상과 이어주는 끈이 돼주더라는 말을요. 일찌감치 결혼해 자식을 넷이나 낳은 친구였지요. 그러고 보니 국숫발이 모양으로만 보자면 끈 같기도 하네요. 혹 당신이 뽑아낸 국숫발들은 끈이 아니었을까요. 당신은 자식이란 끈 대신 밀가루로 반죽을 개어 끈들을 만들어냈던 게 아닐까요. 그 끈들이 허망하게 불어터지고 늘어지는 게 싫어 꾸역꾸역 당신의 입안으로 말아넣었던 것이 아닐까요. 당신이 국숫발을 이로 끊어 먹지 않고 끝까지 젓가락으로 끌어올려 입속으로 말아넣었지요. 그런 국숫발을 내가 숟가락으로 죄다 뚝뚝 끊어버렸으니…… ____‘국수’ 중에서
개정판 | 국수 | 김숨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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