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롭고 불같은 활동력을 가진, 무모하리만큼 자신의 처지를 돌보지않고 뜻한 바에 올인하는 여자 니나. 차분하고 이성적이지만 정말 원하는 것이 가까이 있어도 용기내어 손을 뻗지 못하는 소심하고 우유부단한 남자 슈타인. 둘의 엇갈리는 사랑과 운명적인 18년간의 순애보에 마음에 절절했던 소설. 지극히 개인적인 나의 성향을 고려해보자면, 니나 보다는 슈타인에게 더욱 마음이 쏠린다. 냉정하게 앞을 내다보며 계획성있게 처신하지 못하는 니나의 횡보가 그리 좋아보이지는 않는다.
대학생 때 몸 좋고 활달한 마초같은 남자와 우연히 만나 며칠 되지도 않아서 결혼을 약속하고, 약혼한 상태에서 또 다른 남자의 아이를 임신하는 니나. 다른 남자의 아이를 임신한 사실을 알게됐지만 니나의 약혼자는 결혼을 강행했고, 그 아이를 낳지마자 몇 주 되지도 않았는데 복수심에 그녀를 강제로 취해서 둘째아이를 임신하게 만든다. 그의 아이를 낳기 싫었던 니나는 자살을 기도하지만 슈타인에 의해서 목숨을 건진다.
어찌보면 이 모든 사달은 니나의 신중하지 못함으로 기인한 것이 아닐지. 물론 그녀가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가족의 경제문제나 심리적인 문제들은 이해한다손 치더라도 말이다.
그런 니나를 18년간 바라보며 사랑하고 지켜주는 20살 연상의 의사 슈타인. 결혼도 하지 않고 여동생과 함께 병원을 운영하던 그 앞에 자신과는 정반대 기질을 지닌 니나 부슈만이 나타난다. 슈타인은 니나를 자신의 목숨과도 바꿀 만큼 사랑하지만 그녀가 다른 남자와 결혼하고 또 다른 남자의 아이를 임신하고, 나치즘과 싸우다 투옥되고, 자살을 기도하고, 끝없이 타락하는 순간순간을 고통 속에서 바라볼 수밖에 없다.
슈타인은 니나를 통해 자신의 진짜 모습을 발견한다. 니나와 슈타인이 함께 할 수 없었던 궁극적인 원인은, 자유를 갈망한 나머지 자신이 제공하는 안락한 삶을 거부하려는 니나 때문이 아니라 속박을 두려워하는 자신의 본질 때문이었던 것. 이렇게 슈타인은 오직 니나라는 한 여자를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 삶의 온갖 잔혹한 이면들을 모두 경험하면서 어느새 절망 속에서도 참된 삶을 자각해 나간다.
‘가만히 있기보다는 차라리 모험을 택해 전부를 기꺼이 잃으려고 하는 여자, 충동과 격정에 자신을 내맡길 줄 아는 여자’인 ‘니나’보다는 사랑하는 여자와 가까운 사람들을 위기에서 구하기 위해 나치에 위장입당까지 결단하고, 종전 후에는 그 죄책감에 괴로워하는 ‘슈타인’이 훨씬 인간적으로 다가왔다.
이렇게 전혀 다른 두 사람이기에 슈타인의 죽음 목전에 마지막으로 만나 나눈 교감의 시간이 그려진 장면이 그렇게나 찡하게 와닿았던 것인지도.
_________
우리는 어떤 대화를 나누었다. 나는 이것을 다시 떠올리기가 부끄럽다. 물론 나는 여느 때처럼 어두운 쪽 강변에 남아 있었고 니나는 더 밝은 반대편에 있었다. 그 사이에는 다리가 없었다. 그러나 한 사람이 부르면 다른 사람은 알아들었다. 니나가 돌아가기 전 우리가 나눈 마지막 말들 뒤에 남은 측량할 길 없는 침묵의 시공에서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서로 밀착해 있다고 느꼈다.
나는 말할 수 있는 것을 말하지 않았다. 너를 사랑하기 때문이야, 라고 말하지 못했다. 다만 미소를 지었을 뿐이다. 니나는 나를 쳐다보았다. 여전히 당황한 눈빛이었으나 점차 깨닫고 있었다. 그리고 나지막이 물었다. 왜 당신은 ‘할 수 있었다’ ‘이었다’ ‘하려고 했다’라고 말하는 거죠? ‘할 수 있다’ ‘이다’ ‘하려고 한다’라고 하지 않고?
이 질문에 대해서도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우리는 침묵했다. 니나가 이 침묵의 의미를 어떻게 해석했는지는 모르지만 나는 이 침묵이 어떤 심연의 끝에 있는지는 파악했다고 느꼈다. 그리고 그녀는 갔다. 더 이상 얘기할 게 없었다. 나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니나는 길모퉁이를 돌아가기 바로 직전에 뒤를 돌아보았다. 마지막으로 지상에서의 이별의 고통이 엄습해 왔다.
나는 이런 아름다운 만남을 선사한 인생에 감사한다.
니나의 음성이 내가 들은 마지막 음성이고 니나의 눈이 내가 기억하는 마지막 눈이 되리라.
삶의 한가운데 | 루이제 린저, 박찬일 저
#삶의한가운데 #루이제린저 #민음사 #니나 #슈타인 #독서 #책읽기 #북스타그램 #고전읽기 #민음사세계문학전집










정의롭고 불같은 활동력을 가진, 무모하리만큼 자신의 처지를 돌보지않고 뜻한 바에 올인하는 여자 니나. 차분하고 이성적이지만 정말 원하는 것이 가까이 있어도 용기내어 손을 뻗지 못하는 소심하고 우유부단한 남자 슈타인. 둘의 엇갈리는 사랑과 운명적인 18년간의 순애보에 마음에 절절했던 소설. 지극히 개인적인 나의 성향을 고려해보자면, 니나 보다는 슈타인에게 더욱 마음이 쏠린다. 냉정하게 앞을 내다보며 계획성있게 처신하지 못하는 니나의 횡보가 그리 좋아보이지는 않는다.
대학생 때 몸 좋고 활달한 마초같은 남자와 우연히 만나 며칠 되지도 않아서 결혼을 약속하고, 약혼한 상태에서 또 다른 남자의 아이를 임신하는 니나. 다른 남자의 아이를 임신한 사실을 알게됐지만 니나의 약혼자는 결혼을 강행했고, 그 아이를 낳지마자 몇 주 되지도 않았는데 복수심에 그녀를 강제로 취해서 둘째아이를 임신하게 만든다. 그의 아이를 낳기 싫었던 니나는 자살을 기도하지만 슈타인에 의해서 목숨을 건진다.
어찌보면 이 모든 사달은 니나의 신중하지 못함으로 기인한 것이 아닐지. 물론 그녀가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가족의 경제문제나 심리적인 문제들은 이해한다손 치더라도 말이다.
그런 니나를 18년간 바라보며 사랑하고 지켜주는 20살 연상의 의사 슈타인. 결혼도 하지 않고 여동생과 함께 병원을 운영하던 그 앞에 자신과는 정반대 기질을 지닌 니나 부슈만이 나타난다. 슈타인은 니나를 자신의 목숨과도 바꿀 만큼 사랑하지만 그녀가 다른 남자와 결혼하고 또 다른 남자의 아이를 임신하고, 나치즘과 싸우다 투옥되고, 자살을 기도하고, 끝없이 타락하는 순간순간을 고통 속에서 바라볼 수밖에 없다.
슈타인은 니나를 통해 자신의 진짜 모습을 발견한다. 니나와 슈타인이 함께 할 수 없었던 궁극적인 원인은, 자유를 갈망한 나머지 자신이 제공하는 안락한 삶을 거부하려는 니나 때문이 아니라 속박을 두려워하는 자신의 본질 때문이었던 것. 이렇게 슈타인은 오직 니나라는 한 여자를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 삶의 온갖 잔혹한 이면들을 모두 경험하면서 어느새 절망 속에서도 참된 삶을 자각해 나간다.
‘가만히 있기보다는 차라리 모험을 택해 전부를 기꺼이 잃으려고 하는 여자, 충동과 격정에 자신을 내맡길 줄 아는 여자’인 ‘니나’보다는 사랑하는 여자와 가까운 사람들을 위기에서 구하기 위해 나치에 위장입당까지 결단하고, 종전 후에는 그 죄책감에 괴로워하는 ‘슈타인’이 훨씬 인간적으로 다가왔다.
이렇게 전혀 다른 두 사람이기에 슈타인의 죽음 목전에 마지막으로 만나 나눈 교감의 시간이 그려진 장면이 그렇게나 찡하게 와닿았던 것인지도.
_________
우리는 어떤 대화를 나누었다. 나는 이것을 다시 떠올리기가 부끄럽다. 물론 나는 여느 때처럼 어두운 쪽 강변에 남아 있었고 니나는 더 밝은 반대편에 있었다. 그 사이에는 다리가 없었다. 그러나 한 사람이 부르면 다른 사람은 알아들었다. 니나가 돌아가기 전 우리가 나눈 마지막 말들 뒤에 남은 측량할 길 없는 침묵의 시공에서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서로 밀착해 있다고 느꼈다.
나는 말할 수 있는 것을 말하지 않았다. 너를 사랑하기 때문이야, 라고 말하지 못했다. 다만 미소를 지었을 뿐이다. 니나는 나를 쳐다보았다. 여전히 당황한 눈빛이었으나 점차 깨닫고 있었다. 그리고 나지막이 물었다. 왜 당신은 ‘할 수 있었다’ ‘이었다’ ‘하려고 했다’라고 말하는 거죠? ‘할 수 있다’ ‘이다’ ‘하려고 한다’라고 하지 않고?
이 질문에 대해서도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우리는 침묵했다. 니나가 이 침묵의 의미를 어떻게 해석했는지는 모르지만 나는 이 침묵이 어떤 심연의 끝에 있는지는 파악했다고 느꼈다. 그리고 그녀는 갔다. 더 이상 얘기할 게 없었다. 나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니나는 길모퉁이를 돌아가기 바로 직전에 뒤를 돌아보았다. 마지막으로 지상에서의 이별의 고통이 엄습해 왔다.
나는 이런 아름다운 만남을 선사한 인생에 감사한다.
니나의 음성이 내가 들은 마지막 음성이고 니나의 눈이 내가 기억하는 마지막 눈이 되리라.
삶의 한가운데 | 루이제 린저, 박찬일 저
#삶의한가운데 #루이제린저 #민음사 #니나 #슈타인 #독서 #책읽기 #북스타그램 #고전읽기 #민음사세계문학전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