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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물리학자가 들여다본 북핵의 실체: 핵의 변곡점>, 시그프리드 헤커 지음, 천지현 옮김, 창비.

'퀸캣' aka 양산퀸캣 찡찡이
2024-02-21
조회수 402

  

먼저, 완독하지 못한 상태에서 감상을 정리하는 참이다. 매월 글을 쓸 때마다 반복하는 내 고유한 돌림 노래지만, '집중이 잘 되지 않아' 유독 읽다 말다를 반복한 책이기도 하다. 이번 책 읽어내기 위한 특전사체험 캠프는 임의 중간 퇴소가 되고 말았다. 안타깝게도 불명예 퇴소 맞다. 


  총 21장으로 이뤄진 전문 중 10장까지 힘겹게 읽어내고(읽기가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설명해보자면 분명 처음 읽는 대목인 줄 알고 읽었는데 밑줄 쳐있더라, 물론 내용은 생소했지만) 시간에 쫓겨서 중간 생략하고 문재인 정부 시절인 18- 21장을 읽었다. 


  18- 20장 읽으면서는 감격과 놀라움 연속이던 제1차 판문점 남북정상회담(20180427), 깜짝 만남이었던 제2차 판문점 남북회담, 꿈 같았던 평양에서의 제3차 남북 정상회담, 북미 싱가포르 정상회담(20190228).... 뉴스 속보 뜨기를 실시간으로 설레이며 기다렸던 전례 없는 그 시절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저자 표현대로 P. 495 "트럼프와 북한이 양쪽에서 회담을 취소하겠다고 으름장 놓은 뒤 문재인 대통령의 '셔틀 외교' 덕분에 회담이 정상 궤도로 돌아와 있는 상태", 온전히 대통령님 몸과 영혼을 갈아넣다시피해서 평화를 위한 대장정의 운전대를 잡고 계셨던 그 때.


 물론 내 기억과 추억 속에서 그때 그 영광의 시간이 아스라이 기록될 뿐, 책에 기록된 실제 역사는 냉정하다. 영광의 찰나 뒤 좁혀지지 않는 입장 차와 좁혀진 입장 차를 뒤집는 번복의 연속이었다.


 나로써는 꼼꼼하게 기록된 저자의 평양 방문기가 다른 친구 님들의 감상처럼 흥미진진하거나 소설처럼 읽히기 보다는 좀 지루했다. 이유는 내용에 있다기보다, 1) 나는 이미 결론을 알고 있고 2) 1장 도입부부터 북한의 이중 경로 전략과 반대로 미 정부의 정치적 편견과 선입견으로 핵 문제 확산 저지하지 못한  설명이 마치 시작도 전에 결론을 못 박는 듯 해서다. 실제로 지난 30여년 간 북한 핵 문제를 둘러싼 역사는 정반합이 아닌 무한반복을 통한 북한 핵 기술력의 진보다!


P. 23 "내가 거듭 맞닥뜨린 상투적 진리는, 북한의 핵 프로그램을 중지시키고자 했던 미국 측 노력이 북측의 반복적인 외교적 합의 위반 탓에 무위로 돌아갔다는 변함 없는 믿음이었다. (중략) 그것은 워싱턴이 제 실패에 대해 너무 쉽게 면피하도록 해 주고, 왜 우리가 지금과 같은 곤경에 빠져 있는지도 설명해주지 못한다."


 .... 한 눈에 봐도, 우리 언론의 대북 내지 북핵 관련 보도에 뒤따라오는 분석 같지 않나. 그것도 많이 보수적이거나 우경화되지 않은 언론사 관점.


P. 34 " 비극은, 누가 백악관을 차지하든 워싱턴이 기술적 정보에 기반한 위험/편익 분석을 수행하지 못한 데 있다. 오히려 미국의 정치지도자와 정책입안자들은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편견을 결정적 분석보다 우위에 놓고 결정을 내렸다. 정치적 결정들이 그것이 가져올 기술적 결과에 대한 냉철한 가치판단을 담는데 실패를 거듭하면서, 결국은 북한이 핵 프로그램을 확장하도록 문을 열어준 셈이었다.

(중략)김씨 3대를 걸쳐 권력이 이양되는 동안에도 북한의 지도력은 중심을 잃은 적 없었던 반면, 워싱턴은 갈지자 행보를 보였다."


 책 주제인 북핵의 발전과 위협에 대응하는, 보다 현명했을 강대국(미국) 외교협상 전략에 대한 반추와 숙고는 잠시 내려놓는다. 뭐 아주 대충은... 이해한 것 같다. 대신 내가 종종 그러듯,  엉뚱한 관점으로 책을 다시 읽고자 한다. 바로 일상에서 만나는 나와 '많이 다른' 타인과의 소통 혹은 불통, 타협 혹은 절대 동의할 수 없는 대척점에 관해서다.

 

 내가 믿는 정의나 신념, 혹은 불의에 대한 기준과 다른 기준을 갖는 주변 타인들은 늘 존재할 것이다. 아니, 훨씬 더 많다. 

  처음엔 내가 옳다고 믿는 가치관과 그의 가치관이 얼추 합이 맞고 그렇기에 소통 가능하다고 생각했다가도, 정부에 따라 하루 아침에 달라지는 국가 정책처럼 개인 간의 관계 사회적 관계도 일순 금이 갈 수 있다. 단순 입장 차가 아니라,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역린이 나와 타인에게 각기 달리 존재할 수가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절대적이고 불가역적인 나름의 소신.

  당연히 옳다고 믿기에 '내 신념, 내주관'이라고, 그래서 상대방이 편협하고 상식적이지 않다고 주장하고 싶지만.... 그에겐 나 또한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마치 부시 대통령에겐 북한은 P.70 "악의 축", P.75 "평양과의 직접 협상은 미국 외교관을 납치하려고 설계된 함정" 이고,트럼프 전 대통령에겐 김정은 위원장이 P.472 "꼬마 로켓맨" 이지만 반대로 김 위원장에겐 트럼프 대통령이 P. 470 "정신 나간 노망난 늙다리"에 불과한 것처럼.


 국가 대 국가든, 개인 대 개인 관계든 내재된 신념과 가치관이 상태, 타자를 바라보고 판단하는 가늠자가 된다. 법과 도덕 기준에서 절대악이나 옳지 않음은 존재하겠지만, 모든 관계에서의 평가는 절대선도 절대악도 본질적으론 판단하기 어렵다. 

  사실상 핵기술 발전과 성과에 있어서 최소 북미 중 승자는 북한인데, 미국 정부로써 인정하기는 어렵겠고, '제3자' 입장인 대한민국 국민으로써 울분 터져도 때로는 그 무관심과 방치가 미국 이익이 되기도 했을테니까.

  

  최근 그 소신과 신념에 반하는 현상을 경험하면서 화가 많이 났었다(....또, 또 화가 났다!). 

혐오주의를 반대하고 대항하다가 그 보다 더한 혐오주의자, 극단주의자라니. 서글픈 것은, 내가 부정 당하니 나도 상대를 더 부정하고 싶어지고 나만 옳다고 고집 부리고 싶어진다는 것.


 책에서 반복되는 대화 시도- 평행선- 가까스로 합의 도달- 합의 무산의 수십년 외교사를 보니까 개인 간 관계 아니지만 합의 무산 끝에 감정적 혐오가 깊어짐이 이해는 되었다. 외교적으로든 인간적으로든 혐오가 옳지 않더라도.


  나와 다른 신념에 대한 환멸, 분노가 깊어지던 어젯밤 이 사진을 보고 많은 생각 했다. 나를 좋아하지 않는, 좀 더 직접적으로 말하면 적개심과 비아냥으로 중무장한 타인의 손을 맞잡아주는 모습.


  혐오는 힘이 없다. 혐오는 이길 수 없다. 아무리 정당성을 부여하더라도 결국 혐오는 혐오일 뿐 초라하고 비겁하다. 

 비정하고 차가운 외교사, 얼어붙는 국제 정세의 신 냉전 기류에도 자신 부정을 피하기 위해 상대를 더 혐오해야한다는 극단주의만은 피해갈 수 있기를.

8 12
Kea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