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앤드루 포터. 단편만 잘 쓰는 줄 알았더니 장편마저 이럴수가. 단편에서 느꼈던 긴장감과 스피티한 전개, 궁금함을 유발하는 줄거리가 그대로 살아있다.
모든 작품들을 관통하는 주제는 ‘죄책감과 의무감, 그 사이에서 방황하는 인간’인듯. 작가의 성향이 아마도 상당히 섬세하고 심약하면서 한편으론 의리를 무척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인 것 같이 느껴진다.
유망한 건축가였지만 나이가 들면서 직장에서도 가정에서도 자기 자리를 잃어가는 유약하고 무감한 아버지, 나이 많은 남자를 사랑해 다니던 대학도 그만두고 결혼한 뒤 가족 뒷바라지에 몰두해 살다가 결국은 이혼을 선택하는 어머니, 좋은 시를 쓸 재능이 있지만 도전을 두려워해 낮에는 카페에서 일하고 밤에는 술과 파티에 빠져 사는 아들, 어렵사리 적응한 대학에서 사고에 휘말려 정학처분을 받고 집으로 돌아오는 딸.
이들은 하나같이 상처를 보듬고 어찌할 줄 몰라 자기 안으로 파고드는 여린 사람들이다. 때로는 자기 마음도 읽지 못하고 어디로 가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해 늘 머뭇거린다. 삶이 공허하고 의미가 없다.
그런데 이 아슬아슬한 가족을 뒤흔들어 모두의 삶을 완전히 바꿔놓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리고 이들은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조금씩 진상을 드러내는 그 사건을 각자의 방식으로 감당하며 자신의 삶을 아프게 돌아보고 힘든 선택을 하면서 자기 자리를 찾아간다.
어찌보면 현재를 사는 대부분의 가정에서 안고있을 문제들을 꼬집어 표현했다고도 할 수 있겠다. 그래서 각 인물들이 상황을 헤쳐나가는 모습에 집중되고, 때로는 안타까워하면서 혹은 응원하면서 읽게 된다.
속시원한 해피엔딩도 서글픈 세드엔딩도 아니다. 각자의 위치에서 각각의 후회와 서글픔, 그리고 새 시대에 대한 희미한 희망이 기다리는 결말이 있을 뿐. 역시나 죄책감과 의무감, 그러나 자신의 행복을 위한 횡보 역시 놓을 수 없어 고민하는 인물들의 선택이 인상적이다.
모처럼 흥미롭게 빠져들어 읽은 장편소설.
_______
이 두 종류의 죄책감과 두 가지 책임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 그건 마치 그에게 주어진 잔인한 시험, 그리스 신화의 주인공들이 겪는 불가능한 난제 같은 느낌마저 든다. 그가 무슨 일을 하든, 무슨 말을 하든, 누군가는 실망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건 늘 그랬던 것 아닌가? 항상 무슨 일이 잘못되기만 하면 책임을 뒤집어쓰는 사람은 나 아니었나? 늘 내가 어찌해볼 수 없는 일 때문에 그렇게 당했던 거 아닌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그는 덫에 걸린 짐승이 된 듯한 기분이 든다.
어떤 날들 | 앤드루 포터, 민은영 저
#어떤날들 #앤드루포터 #문학동네 #독서 #책읽기 #북스타그램









아, 앤드루 포터. 단편만 잘 쓰는 줄 알았더니 장편마저 이럴수가. 단편에서 느꼈던 긴장감과 스피티한 전개, 궁금함을 유발하는 줄거리가 그대로 살아있다.
모든 작품들을 관통하는 주제는 ‘죄책감과 의무감, 그 사이에서 방황하는 인간’인듯. 작가의 성향이 아마도 상당히 섬세하고 심약하면서 한편으론 의리를 무척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인 것 같이 느껴진다.
유망한 건축가였지만 나이가 들면서 직장에서도 가정에서도 자기 자리를 잃어가는 유약하고 무감한 아버지, 나이 많은 남자를 사랑해 다니던 대학도 그만두고 결혼한 뒤 가족 뒷바라지에 몰두해 살다가 결국은 이혼을 선택하는 어머니, 좋은 시를 쓸 재능이 있지만 도전을 두려워해 낮에는 카페에서 일하고 밤에는 술과 파티에 빠져 사는 아들, 어렵사리 적응한 대학에서 사고에 휘말려 정학처분을 받고 집으로 돌아오는 딸.
이들은 하나같이 상처를 보듬고 어찌할 줄 몰라 자기 안으로 파고드는 여린 사람들이다. 때로는 자기 마음도 읽지 못하고 어디로 가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해 늘 머뭇거린다. 삶이 공허하고 의미가 없다.
그런데 이 아슬아슬한 가족을 뒤흔들어 모두의 삶을 완전히 바꿔놓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리고 이들은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조금씩 진상을 드러내는 그 사건을 각자의 방식으로 감당하며 자신의 삶을 아프게 돌아보고 힘든 선택을 하면서 자기 자리를 찾아간다.
어찌보면 현재를 사는 대부분의 가정에서 안고있을 문제들을 꼬집어 표현했다고도 할 수 있겠다. 그래서 각 인물들이 상황을 헤쳐나가는 모습에 집중되고, 때로는 안타까워하면서 혹은 응원하면서 읽게 된다.
속시원한 해피엔딩도 서글픈 세드엔딩도 아니다. 각자의 위치에서 각각의 후회와 서글픔, 그리고 새 시대에 대한 희미한 희망이 기다리는 결말이 있을 뿐. 역시나 죄책감과 의무감, 그러나 자신의 행복을 위한 횡보 역시 놓을 수 없어 고민하는 인물들의 선택이 인상적이다.
모처럼 흥미롭게 빠져들어 읽은 장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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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두 종류의 죄책감과 두 가지 책임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 그건 마치 그에게 주어진 잔인한 시험, 그리스 신화의 주인공들이 겪는 불가능한 난제 같은 느낌마저 든다. 그가 무슨 일을 하든, 무슨 말을 하든, 누군가는 실망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건 늘 그랬던 것 아닌가? 항상 무슨 일이 잘못되기만 하면 책임을 뒤집어쓰는 사람은 나 아니었나? 늘 내가 어찌해볼 수 없는 일 때문에 그렇게 당했던 거 아닌가?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그는 덫에 걸린 짐승이 된 듯한 기분이 든다.
어떤 날들 | 앤드루 포터, 민은영 저
#어떤날들 #앤드루포터 #문학동네 #독서 #책읽기 #북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