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산책친구 회원들이 읽은 책, 함께 읽고 싶은 도서를 소개하는 공간입니다. 책의 표지, 한 페이지 등 사진과 함께 공유해보세요.
※ 욕설, 비방, 게시판 목적과 무관한 내용은 관리자가 이동 또는 삭제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

다이앤14
2024-02-10
조회수 1738

이처럼 사소한 것들 | 글레어 키건


길지 않음이 오히려 작품의 가치와 의의를 돋보이게 해준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말을 아낌으로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말해주는 소설. 클레어 키건의 작품들은 한결같다. 아픔을 구구절절 아프다고 설명하지 않아도 사실을 묘사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눈앞에 고통의 강도 뿐 아니라 색체와 그 파괴력까지 오롯이 전달된다. 

‘Small Things Like These’라는 제목이 인상적이다. 누군가에게는 특별할 것 없는 아주 일상적이고 사소한 행동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삶 자체를 송두리째 바꿀 수 있는 힘이 되기도 한다는 것. 어쩌면 그것은 제목에서처럼 결코 ‘사소한 것’아 아닐 수 있다. 주변의 따가운 눈초리와 편견, 비난을 이겨내야 하는 용기가 필요할 수도. 그렇지만, 나 스스로에게 떳떳허기를 원하고, 외부의 부당한 억압으로부터 자유롭기를 원한다면 반드시 용기를 내야만 한다. 희망적인 것은, 그 용기라는 것도 사실은 아주 작고 사소한 실천에서부터 일 수 있다는 것 아닐지. 


1985년, 나라 전체가 실업과 빈곤에 허덕이며 혹독한 겨울을 지나고 있는 아일랜드의 한 소도시 뉴로스. 부유하진 않아도 먹고사는 데 부족함 없이 슬하에 다섯 딸을 두고 안정된 결혼 생활을 꾸려가는 석탄 상인 ‘빌 펄롱’이 이야기의 주인공이다. 

펄롱은 빈곤하게 태어나 일찍이 고아가 되었으나 어느 친절한 어른의 후원 아래 경제적 도움을 받았고, 그런 본인이 그저 ‘운’이 좋았음을 민감하게 자각하는 사람이다. 가족을 먹여 살릴 수 있는 직업이 있고, 딸들을 좋은 학교에 보낼 수 있으며, 따뜻한 침대에 누워 다음 날 어떤 일들을 처리해야 할지 생각하면서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는 특권을 누리고 있음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이 안온한 일상을 언제든 쉽게 잃을 수 있다는 사실까지도 잊지 않고 살아간다.

크리스마스를 앞둔 어느 날 아침, 펄롱은 수녀원으로 석탄 배달을 나가 창고에서 한 여자아이를 발견하고 그곳에서 벌어지는 불법적인 사건의 정황을 파악하게 된다. 아이를 돕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아이를 집으로 덜컥 데리고 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그냥 두고가야 하는 발길도 편치 않다. 아이를 생각하며 평온하던 일생이 조금씩 흐트러지기 시작하고, 스스로에게 ‘서로 돕지 않는다면 삶에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질문을 던지는 데까지 생각이 이르지만, 아내를 비롯한 그를 둘러싼 세계는 평온하게 가정을 지키기 위해서는 무시할 것들은 무시해야 한다고 조언하며 그를 침묵하게끔 한다. 

수녀원이 절대적 권력을 행사하는 마을에서 안락한 삶을 누리던 펄롱은 위험이 예견된 용기를 내야 할지 아니면 딸들과 가정을 위해 자신도 침묵해야 할지 깊은 고민에 빠진다. 그리고 그 위태로운 갈림길 앞에서 불안과 동시에 어떤 전율을 느낀다.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는 선택 앞에 움츠러든 펄롱은 마을에 흐르는 강을 오래도록 내려다본다. 강물은 자기가 갈 길을 안다는 것, 너무나 쉽게 자기 고집대로 흘러 드넓은 바다로 자유롭게 간다는 사실을 부러워하며.


주인공 펄롱이 느끼는 갈등은 아마도 우리가 일상애서 매일 겪는 흔한 경험 아닐까. 나라면 펄롱처럼 용기있는 선택을 기꺼이 할 수 있을까? 짧지만 많은 것을 느끼게 해주는 소설이었다.

_________


아무것도 달라지지도 바뀌지도 새로워지지도 않는 걸까? 요즘 펄롱은 뭐가 중요한 걸까, 아일린과 딸들 말고 또 뭐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종종했다.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는데 어딘가로 가고 있는 것 같지도 뭔가 발전하는 것 같지도 않았고 때로 이 나날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_44쪽


문득 서로 돕지 않는다면 삶에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나날을, 수십 년을, 평생을 단 한 번도 세상에 맞설 용기를 내보지 않고도 스스로를 기독교인이라고 부르고 거울 앞에서 자기 모습을 마주할 수 있나? _119쪽


펄롱은 미시즈 윌슨을, 그분이 날마다 보여준 친절을, 어떻게 펄롱을 가르치고 격려했는지를, 말이나 행동으로 하거나 하지 않은 사소한 것들을, 무얼 알았을지를 생각했다.

그것들이 한데 합해져서 하나의 삶을 이루었다. _120쪽


#이처럼사소한것들 #클레어키건 #다산책방 #독서 #책읽기 #북스타그램


09d13d4a0c8a5.jpeg

5 4
Kea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