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테안경 | 조르조 바시니
1938년 이탈리아 인종법이 시행되기 직전, 페라라라는 도시를 배경으로부유한 유대인 가정 출신의 ‘나’와 동성애자인 세련된 의사 파디가티 선생님이 당하게 되는 간접적인 혹은 직접적인 박해에 대한 이야기.
작가인 조르조 바시니도 주인공과 같이 부유한 유태인 출신이어서 당시 이탈리아 부르조아 유태인 사회의 분위기와 꺾이지 않겠다는 작가의 의지를 소설 속 사건들을 통해 잘 표현하고 있는 듯. 파디가티가 느꼈을 고독감과 가족들 사이에서 ‘나’가 느꼈을 절망과 괴로움이 ‘동성애자와 유태인’이라는 정체성과 절묘하게 맞물리는 엄청난 소설이다. 144페이지밖에 안되는 짦은 소설인데, 정말 많은 감정이 들게 한다.
페라라에서 병원을 운영하는 파디가티는 인품도 훌륭하고 돈도 많은데 왜 아직도 결혼하지 않고 혼자인가가 동네사람들의 관심사였다. 그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알게되자 사람들은 그를 ‘그거’, ‘그런 사람’으로 부르며 비웃으면서도 불쾌하게 생각하기보다는 오히려 안심하며 즐거워하기까지 한다.
파디가티는 볼로냐까지 가는 완행열차에서 동네청년들과 점차 친해진다. 몸좋고 잘생긴 델릴리에르스는 사람들 앞에서 파디가티의 성정체성을 비난하는 발언을 일삼으며 종종 그를 곤란하게 만든다.
여름휴가를 위해 휴양지 리초네로 간 ‘나’는 델릴리에르스와 함께 온 파디가티를 만난다. 그가 사준 요란한 차를 몰고 밖으로 나도는 델릴리에르스 때문에 파디가티는 늘 홀로 남겨진다. 자신이 게이라는 사실을 들킬까 봐 염려하지만, 이미 주민들을 모두 알고있다. 눈치없는 ’나‘의 아버지만이 아무것도 모르고 반갑게 그를 초대하며 어울린다. 그러나 어김없이 그를 조롱하는 사람들 때문에 마음 약하고 외로움 많은 파디가티는 매번 당혹스러움과 고독감을 느낀다. 급기야 휴가지에서 델릴리에르스에게 모든 것을 다 도둑맞고 얼굴까지 가격당한 후 ’나‘에게 하소연을 하는 파디가티. 경찰에 신고하라는 나를 어처구니없이 바라보며 ’그게 가능할 것 같니?‘라는 말을 남길 뿐이다.
휴가에서 페라라로 돌아온 후 동네분위기가 바뀌었다. 이탈리아에서도 나치처럼 유태인에 대한 탄압을 본격적으로 시도하려 하는 중이었다. 파시스트 당에서는 절대 아니라고 선전하지만, 유태인이면서도 파시스트당에 협조하고 파시스트 활동에 열성을 보이던 유태인들에게는 앞으로의 자신들의 처지가 어찌될지 걱정하며 술렁일 수밖에 없었다.
‘이탈리아에서 반유대주의는 심각한 정치적 형태를 띨 수 없다’고 확신하며 출세를 위한 포석을 까는 어린애 같은 믿음을 가진 친구 니노를 향해 ‘어설프고 무감각하고 우둔한 이교도’라는 평가를 내리는 ‘나’는 파시스트들의 선전을 그대로 믿을 수 없다.
그로부터 얼마 후 ‘나’는 길거리에서 길 잃은 개와 실랑이하고 있는 파디가티를 다시 만난다. ‘내가 나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 아니면 다른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순응하는 것’ 중에서 어떤 삶을 살아야하는가 묻는 나에게 그는 지난 여름 이후 무너져버린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며 좌절한다. ‘나’는 그와는 다른 방식을 삶을 살 것을 다짐한다.
이틀 뒤 약속대로 ‘나’에게 안부전화를 건 피디가티는 온통 젖이 불어서 낑낑대다가 자기 새끼들과 주인을 찾아 가버린 개의 소식을 전해주며 개가 견뎠을 고통을 안쓰러워한다. 뭉클하고 야릇한 작별인사를 남기며 쉽사리 전화를 끊지 못하는 파디가티.
술렁이는 마을 분위기에도 아랑곳없이 미국에 유학중이던 동생이 돌아온다는 소식에 어머니는 잔뜩 들뜨고, 아버지는 당의 고위관료와 친분이 있는 인사가 개인적으로 ‘이탈리아에서 인종법이 절대 공포되지 않도록 보증하겠다’는 약속을 받았다며 기뻐한다. 행복해하는 아버지를 보면서 절망하는 나. 가족들 사이에서조차 고독감을 느끼던 차에 신문에서 파디가티의 익사 소식을 발견하고, 침착하고 냉정하게 그의 부고를 전한다.
________
아버지의 기쁨은 부당하게 쫓겨났다가 선생님의 복귀 명령을 받고 교실로 돌아온 학생의 기쁨과 같았다. 그 학생은, 벌칙을 면했을뿐 아니라 아무 잘못이 없음을 인정받고 완전히 명예를 회복했다고 기뻐한다. 결국 아버지가 그 아이처럼 기뻐하는 것이 옳지 못한 걸까? 나에겐 그렇다. 지난 두 달 동안 내게서 한시도 떨어지지 않았던 고독감이 바로 그 순간 한층 더 심해졌다.
총체적이며 결정적이었다. 나는 나의 유배지에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절대로.
#금테안경 #조르조바시니 #문학동네 #독서 #책읽기 #북스타그램


금테안경 | 조르조 바시니
1938년 이탈리아 인종법이 시행되기 직전, 페라라라는 도시를 배경으로부유한 유대인 가정 출신의 ‘나’와 동성애자인 세련된 의사 파디가티 선생님이 당하게 되는 간접적인 혹은 직접적인 박해에 대한 이야기.
작가인 조르조 바시니도 주인공과 같이 부유한 유태인 출신이어서 당시 이탈리아 부르조아 유태인 사회의 분위기와 꺾이지 않겠다는 작가의 의지를 소설 속 사건들을 통해 잘 표현하고 있는 듯. 파디가티가 느꼈을 고독감과 가족들 사이에서 ‘나’가 느꼈을 절망과 괴로움이 ‘동성애자와 유태인’이라는 정체성과 절묘하게 맞물리는 엄청난 소설이다. 144페이지밖에 안되는 짦은 소설인데, 정말 많은 감정이 들게 한다.
페라라에서 병원을 운영하는 파디가티는 인품도 훌륭하고 돈도 많은데 왜 아직도 결혼하지 않고 혼자인가가 동네사람들의 관심사였다. 그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알게되자 사람들은 그를 ‘그거’, ‘그런 사람’으로 부르며 비웃으면서도 불쾌하게 생각하기보다는 오히려 안심하며 즐거워하기까지 한다.
파디가티는 볼로냐까지 가는 완행열차에서 동네청년들과 점차 친해진다. 몸좋고 잘생긴 델릴리에르스는 사람들 앞에서 파디가티의 성정체성을 비난하는 발언을 일삼으며 종종 그를 곤란하게 만든다.
여름휴가를 위해 휴양지 리초네로 간 ‘나’는 델릴리에르스와 함께 온 파디가티를 만난다. 그가 사준 요란한 차를 몰고 밖으로 나도는 델릴리에르스 때문에 파디가티는 늘 홀로 남겨진다. 자신이 게이라는 사실을 들킬까 봐 염려하지만, 이미 주민들을 모두 알고있다. 눈치없는 ’나‘의 아버지만이 아무것도 모르고 반갑게 그를 초대하며 어울린다. 그러나 어김없이 그를 조롱하는 사람들 때문에 마음 약하고 외로움 많은 파디가티는 매번 당혹스러움과 고독감을 느낀다. 급기야 휴가지에서 델릴리에르스에게 모든 것을 다 도둑맞고 얼굴까지 가격당한 후 ’나‘에게 하소연을 하는 파디가티. 경찰에 신고하라는 나를 어처구니없이 바라보며 ’그게 가능할 것 같니?‘라는 말을 남길 뿐이다.
휴가에서 페라라로 돌아온 후 동네분위기가 바뀌었다. 이탈리아에서도 나치처럼 유태인에 대한 탄압을 본격적으로 시도하려 하는 중이었다. 파시스트 당에서는 절대 아니라고 선전하지만, 유태인이면서도 파시스트당에 협조하고 파시스트 활동에 열성을 보이던 유태인들에게는 앞으로의 자신들의 처지가 어찌될지 걱정하며 술렁일 수밖에 없었다.
‘이탈리아에서 반유대주의는 심각한 정치적 형태를 띨 수 없다’고 확신하며 출세를 위한 포석을 까는 어린애 같은 믿음을 가진 친구 니노를 향해 ‘어설프고 무감각하고 우둔한 이교도’라는 평가를 내리는 ‘나’는 파시스트들의 선전을 그대로 믿을 수 없다.
그로부터 얼마 후 ‘나’는 길거리에서 길 잃은 개와 실랑이하고 있는 파디가티를 다시 만난다. ‘내가 나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 아니면 다른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순응하는 것’ 중에서 어떤 삶을 살아야하는가 묻는 나에게 그는 지난 여름 이후 무너져버린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며 좌절한다. ‘나’는 그와는 다른 방식을 삶을 살 것을 다짐한다.
이틀 뒤 약속대로 ‘나’에게 안부전화를 건 피디가티는 온통 젖이 불어서 낑낑대다가 자기 새끼들과 주인을 찾아 가버린 개의 소식을 전해주며 개가 견뎠을 고통을 안쓰러워한다. 뭉클하고 야릇한 작별인사를 남기며 쉽사리 전화를 끊지 못하는 파디가티.
술렁이는 마을 분위기에도 아랑곳없이 미국에 유학중이던 동생이 돌아온다는 소식에 어머니는 잔뜩 들뜨고, 아버지는 당의 고위관료와 친분이 있는 인사가 개인적으로 ‘이탈리아에서 인종법이 절대 공포되지 않도록 보증하겠다’는 약속을 받았다며 기뻐한다. 행복해하는 아버지를 보면서 절망하는 나. 가족들 사이에서조차 고독감을 느끼던 차에 신문에서 파디가티의 익사 소식을 발견하고, 침착하고 냉정하게 그의 부고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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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기쁨은 부당하게 쫓겨났다가 선생님의 복귀 명령을 받고 교실로 돌아온 학생의 기쁨과 같았다. 그 학생은, 벌칙을 면했을뿐 아니라 아무 잘못이 없음을 인정받고 완전히 명예를 회복했다고 기뻐한다. 결국 아버지가 그 아이처럼 기뻐하는 것이 옳지 못한 걸까? 나에겐 그렇다. 지난 두 달 동안 내게서 한시도 떨어지지 않았던 고독감이 바로 그 순간 한층 더 심해졌다.
총체적이며 결정적이었다. 나는 나의 유배지에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절대로.
#금테안경 #조르조바시니 #문학동네 #독서 #책읽기 #북스타그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