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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 못했던 그 친구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구론산바몬드 지음, 루미 그림, 홍림.

'퀸캣' aka 양산퀸캣 찡찡이
2024-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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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채***💙존경하는 작가 님, 그리고 책친구 님들. 꽤 솔직하게 쓸 이 감상문은요. 지극히 개인적인 제 경험과 느낌을 따라갔고요. 제 감수성은 늘! 대부분! 극소수 내지 비주류에 가깝습니다. 달리 말하면 책에 대한 보편적 공감과 정서에는 거리 있을 수도 있답니다. 책에 대한 오해 없으시기를 바래요 🤗


  드디어 책방지기 님이 추천하신지 얼마 안 된 나름 따끈따끈한 추천서를 읽었다! 그나마 책모임 시작하고는 한 달에 한 권은 읽는 책은 해병대 캠프 입소하는 기분으로 심호흡 후 시작하는데, 한 시간 조금 넘는 시간 동안 훌훌 넘기며 완독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책 중반까지 재미있기보다 마음이 불편하고 살짝 가라앉기도 했다.... 왜지, 왜?
  1차적으로 책방지기 님과 공감대를 느끼고 싶은데 그러지 못한다는 소외감. 그날 책방에서 '누구에게라도 재미있을 책이다!'라고 힘주어 말씀하셨는데, 내 비주류적 감성은 또 왜 재미있음을 잘 못 느끼지? 나도 공감대에 속해있고 싶은데! 

  2차적으론 최대한 내 안의 안테나와 분석기를 총 가동해서 공감되지 않는 이유 분석하기: 비교적 동세대라고 해도 작가 님과 나는 태어나고 자란 지역(경상도/수도권), 성별(남/녀)이 다르고, 책방지기 님과 나는 또 나이부터 성장 환경까지 더욱 더 차이 나니까 상대적으로 공감대가 적은 건가?....


  혹은 아주 적나라하게 묘사되는, 작가 님의 어린 시절부터 교사로 일하시면서 일어난 크고 작은 '변' 에피소드 때문인가. 처음엔 재미있었는데 계속 반복되니까 왜 이렇게 '변'고가 끊이지 않으시는걸까 의문과 함께 적나라한 연상이 돼서 머쓱하기도 했다. 마치 모차르트가 생전 주고 받은 편지에서 넘쳐나는 '변'과 방귀 운운 같이 좀 과한데? 작가 님도 개구지고 엉뚱한 분이셔셔 '변' 이야기에 끌리셨나? 프로이트가 읽었다면 어떻게 해석했을까 하는 많이 나간 생각들?


아니면 따뜻하신 작가 님이 주변에 도움 주셨는데 된통 당하시거나, 주변 분들이 작가 님의 어리바리함이나 건망증에 본의 아니게 골탕 먹게 되는 웃픈 에피소드 때문? 분명히 웃음 나는 일화이기는 한데, 나는 어딘가 '악의 없지만 약점이나 민망한 점을 자꾸만 희화화 하는 눈치는 없는 중년 남성 상사'가 떠올랐다. 예전에 초면의 나에게 '아니 금니가 엄청 번쩍거리네요'라고 내 컴플렉스이기도 한 안 좋은 치아를 언급한 이십여년 전 상사가 떠오르기도 하고, 웃기기보다 웃어야 할 것 같은 부담감 이랄까.

모든 단락 중 제일 속이 부대끼지 않게 재미있었던 4부 <생활 바보는 피곤해>까지 다 읽고 나서야 알았다. 작가 님의 학창 생활 혹은 학창 시절의 작가님의 어떤 면이 너무 나 같았다! 내 흑역사를 적나라하게 건드셔서 불편했다는 것.


  '바보' 라는 정의에 완전히 부합되지는 않겠지만, 이를테면 나는 우리 가족 안에서는 좀 뒤떨어지는 아이였다. 

  우리 어머니에 의하면 자식 삼남매 중 언니와 오빠는 한글 가르쳐 준 적 없는데도 일정한 나이가 되니까, 길거리 간판의 첫글자를 줄줄 읽었다고 한다. 그런데 막내라는 서열의 수혜로 유일하게 유치원을 무려 1년 반이나 다녔던 나는 초등학교 입학 직전까지 한글 떼지 못했다. 어머니에 의하면 '얘는 다르구나' 싶어서, 마음 급해지셔서 디즈니 명작동화 그림책 한 질 주문하셨단다. 더듬더듬 그림책 몇 권 읽은 나는 드디어 한글 문장 읽게 되었다. 생애 최초로 읽은 책이 [아기돼지 삼형제]. 그때의 나는 책 속 '막내'를 [망내]라고 읽어도 될 지, [막, 내]라고 읽어야 하는지 고민했던 기억이 난다.


  혼자 단어나 어휘를 엉뚱하게 이해해서 '우천시'를 부산시처럼 이해했던 어린 작가님(p. 33)과 딱 그쯤 되는 나이, 같이 놀던 사촌 언니가 '설날'이라는 단어를 말하는데 도대체 '설'이 무슨 뜻인지를 몰라서 "서울? 서울 날?"이라는 반문을 대여섯번 하고도 무슨 뜻인지 결국 못 알아채서 '서울날'이라고 생각했던 나. 

  아마 음력으로 세는 설날이란 말을 국가적으로 없애고 '신정, 구정'이라는 개념을 주입해서 국민을 개도(!)하려던 80년대 정부 시절, 내 어머니도 설날 대신 구정이란 단어를 즐겨 써서였을테지. 그렇지만 동시대를 사는 두 살 위 사촌 언니는 아는 걸 왜 나는 8~9살 되도록 몰랐단 말인가! 


  동아리가 의무인 줄 알고 가입한 동아리 차장이 되었다가 2년 내내 공부 잘 하는 전교 학생회에 참석하며 "일찌감치 고독과 비참함을 배워야 했던" 고등학교 시절 작가님(p.39)과 한 50명 중후반 정도되는 반에서 한 10등? 12등 정도의 어중간한 등수를 가진 고등학교 1학년 나. 

  다행히 [성문종합영어]가 뭔 줄은 알았지만 [수학의 정석]은 요즘 말로 '수포자'에 가까운 무능력으로 나와 인연이 없었다. 입학 초 앞 등수 우등생들이 줄줄이 거절한 부반장을 내 차례에 좋다고 맡았다가, 1학년 내내 나는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바보 취급을 당하고 전교 학생회나 임원 수련회에 같 때마다 위축되었다. 1학년 수학 시간에 혹시라도 '부반장 누구야? 나와서 풀어봐'라는 선생님의 지시가 있을까봐 얼마나 긴장했었나. 

  특히 <리더는 아무나 하나> 에피소드에서 자연스럽게 그 시절의 나를 보면서, 당시에는 크게 상처 입지 않았다고 느꼈던 몇 십 년 전 그 때가 생각보다 공포와 수치심으로 남아있구나 싶어서 놀랐다. 당시에 체육과 담당이고 솔직히 논리와 상식이 조금은 없으셨던 그 담임 선생님을 당시의 나 역시 '진짜 무식하다'며 몹시 싫어했다. 사실 2학년이 되고 또 3학년이 되서까지 오래 싫어해드리고 싶었는데, 2학년 된 어느 날 1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 급작스럽게 학교 주차장에서 세상 떠나시는 비극이 일어났었다. 장례식장 반 대표로 반장이랑 갔던 나는, 강북삼성병원 장례식장에서 그 선생님에 대한 원망도 조기 종료된 줄만 알았다.


  그리고 "그냥 아무 생각이 없었다."(p.52)로 대변되는, 남들은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그럭저럭 익히는 사회적 과업의 순서나 절차를 나 혼자 까맣게 모르는 순간들. 이 당황스러운 나날은 지금 역시도 진행 중 아닌가. 도대체 핸드폰에 넘쳐 나는 사진을 공유 드라이브로 어떻게 옮기는 걸까? 나는 계속 검색해보면서도 안 되는데 10대부터 70대까지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남들은 이걸 자연스럽게 다 하고 사는 건가? 나 빼고 모든 사람들이 스마트폰 이용학교를 다니는 것도 아닌데.


책을 끝까지 읽고 나니 나 혼자 작가 님의 망가짐, 실수 그리고 '바보'짓을 너무 잘 알것 같은 착각이 든다.
초반 다소 과하고 적나라하게, 아무리 필명으로 쓰시는 글이여도 왜 이렇게까지 집요하게 자신의 망가졌던 순간을 묘사하지라고 느낀 '변고'는 왜 그리 반복되었어야 하는지. 일반 독자 입장에서는 웃기고 황당했을 그 사연들은 사실 과하고 적나라한 게 아니라 최소 한번은 남김 없이 고해하고 싶으셨던 건 아닐까. 

  작가 님이 예전 동창의 '밥은 먹고 다니냐'는 안부전화를 받았을 때 현재 "공부 못했던 그때 그 친구는 이렇게 멀쩡하게 잘 산다."고 여유롭게 눙치시면서도 옆구리 한 편이 서늘하게 과거의 흑역사 속 허우적대던 자신이 안쓰럽기도 하시지 않았을까.


  이제 남들 보기엔 사회적으로 대충 멀쩡한(.... 그치만 티가 나고 있겠지, 이 허술함과 엉뚱짓은) 현재의 나는 요즘도 고양이 치약을 내 피부과 연고인 줄 바르고, 종종 가디건이나 티셔츠를 뒤집어서 입고 다닌다. 그리고 나에게 있는 그나마 재능이라면 재능일, 나처럼 허술하거나 정리정돈 안 되거나 주의력 좀 부족한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공감하고, 그들의 부단한 노력- 평균만큼만 살기를 응원하기도 한다.


  평균적으론 말랑말랑, 유쾌하고 웃음 터지는 이야기인데, 나에겐 나를 떠올리게 해서 조금 뜨끔하고 슬프고 민망한 이야기였다. 보편적이지는 못 한 내 감상이 어딘가 분명 존재할, 이 책 읽고 편안하게 폭소 터뜨리기 애매한, 허술하고 산만하고 눈치 없는 친애하는 내 '형제 자매'들에게 공감 되어주면 바랄 게 없겠다. 

.....괜찮아요, 저도 이러고 산답니다. 매일 매일요.

9 10
Kea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