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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어머니를 거쳐 이어진 우리네 음식과 살아가는 이야기 <계절을 먹다>, 이혜숙

도사
2024-01-28
조회수 567

지난해 고희(古稀)를 넘긴 이혜숙 작가가 2020년 3월에 낸 첫에세이집 <쓰지 않으면 죽을거 같아서(글항아리)>를 만나던 순간을 나는 이렇게 썼다. 


"광주 학동에는 단정한 노부인께서 운영하는 '데이지'라는 돈가스집이 있다.

음식사진의 정갈한 모습을 보고 예단하지말고 가서 먹어보기 전까지는 그집 맛에 대한 평가는 보류할 것을 권한다.

맛에도 등급이 있고 최상은 마음에 울림을 일으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이들이 장성한 뒤 시작해서 20여년 운영하던 식당을 정리한 올해 작가의 두번째 에세이집이 나왔다.

우리 음식에 대한 정겨움이 가득하다. '어머니들의 리틀 포레스트'라는 부제처럼 어머니의 어머니를 거치면서 내려온 우리 음식의 정서가 작가 특유의 담담하면서도 마음끝을 툭 건드리는 필체로 그려져 있다.

굳이 음식에 대한 삽화나 사진이 없어도 레시피에 대한 자세한 소개가 없어도 어머니가 정성스레 차려준 밥상이 그려지며 색성향미촉(色聲香味觸)을 자극한다.


그래서 이번에 나온 책에 대한 나의 소감도 동일하다.

"어쩌면 잊혀져 후대가 기억하지 못하게 되었을 사람살았던 그 시절의 음식과 이야기들을 정겨운 언어로 기록한 작가의 기억과 정성에 경의를 드린다."


작가의 고향인 바닷가 함평이나 내가 나서 자란 산골 안동의 음식은 재료와 요리법이 다른데도 불구하고 정서는 정확히 일치한다는걸 책을 읽으면서 또 느끼게 된다.


나는 겨울 이맘때쯤의 첩첩산중 안동을 이렇게 기억한다.

"간밤에 내린 눈에 무릎이 빠지고 바람이 시릴지라도 아이도 어른도 평화로웠다.

방학이었지만 밭을 매거나 소꼴을 베러갈 일도 없었으며,

쌀을 독에 채웠고 고방에 둘러친 발에 고구마가 그득했고 사립문밖 텃밭 언저리에 묻어둔 무우와 배추가 든든하였고 처마밑에 쌓아둔 장작이 넉넉하였다.

세상의 소문들이 십리 떨어진 넙티고개를 넘어오기에는 마을의 평온은 빈틈없이 강건하였고 이때만큼은 세상 그 누구도 부럽지 않았다."


계절을 먹다_어머니들의 리틀 포레스트

- 이혜숙 산문집

- 글항아리, 2023.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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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a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