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산책친구 회원들이 읽은 책, 함께 읽고 싶은 도서를 소개하는 공간입니다. 책의 표지, 한 페이지 등 사진과 함께 공유해보세요.
※ 욕설, 비방, 게시판 목적과 무관한 내용은 관리자가 이동 또는 삭제할 수 있습니다.

<긴긴밤> 루리 지음 / 문학동네 출판

길위의집
2024-01-30
조회수 846

오랜만에 읽어보는 동화책이네요. 이름 없는 ‘나’와 ‘나’를 지켜준 아버지들인 치쿠, 윔보, 노든의 이야기입니다.

기억하는 순간부터 코끼리와 함께였던 코뿔소 노든은 코끼리 고아원에서 자랍니다. 지혜로운 코끼리가 부러웠지만 선택의 날에 세상으로 향합니다. 아름다운 뿔을 가진 코뿔소를 만나 가족이 되고 딸을 낳아 반짝이는 행복을 누리지만, 밀렵꾼에게 가족을 잃고 사람들에게 겨우 구조되어 노든이라는 이름으로 동물원에서 악몽에 시달리는 암흑의 밤들을 보내게 됩니다. 동물원의 펭귄 우리에서는 버려진 알을 두 젊은 단짝 펭귄 치쿠와 윔보가 걱정과 희망을 번갈아 나누며 지킵니다. 그러다 전쟁이 찾아온 날, 죽어버린 동물들 사이에서 만나게 된 노든과 치쿠(알을 가지고 있어 몹시 사납고, 윔보를 잃고 몹시 괴로운)는 동물원을 빠져나가며 긴긴밤을 맞게 됩니다. 지치고 힘들지만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우리’가 되어 함께 바다를 향해 걸어갑니다. 치쿠가 영원히 잠든 날 밤, 드디어 ‘나’는 알에서 태어납니다. 그리고 그들 덕에 살아남았다고 말하는 노든에게 살아남는 법을 배우며 서로에게 유일한 가족이자 친구가 되어 바다를 향해 나아갑니다. ‘나’에게 밤이 가장 길었던 날, 사냥꾼을 만난 노든은 복수를 포기하고 나를 데리고 멀리 달아나 엉망진창인 채 살아남게 됩니다. 다시 둘만의 여정이 시작되지만 노든이 쓰러지고 사람들에게 구조되면서 노든이 들려주는 나의 아빠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혼자 바다를 향하게 됩니다. 노든이 지켜봐 주던 모습 그대로 포기하지 않고 나아가 바다에 다다른 ‘나’는 수많은 긴긴밤이 와도 견뎌내리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때때로 동화책이 어른의 책보다 더 깊은 내용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책이 최고네요. 페이지마다 다시 읽게 되는 문장이 많습니다.

18P.  훌륭한 코끼리는 후회를 많이 하지. 덕분에 다음 날은 전날보다 나은 코끼리가 될 수 있는 거야.

67P.  그저 다시 모래를 털고 일어나 앞으로 걸어 나가는 것이 노든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81P.  하지만 노든은 한 존재가 다른 존재에게 해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내게 주었다.

99P.  누구든 너를 좋아하게 되면, 네가 누구인지 알아볼 수 있어, 아마 처음에는 호기심으로 너를 관찰하겠지, 하지만 점점 너를 좋아하게 되어서 너를 눈여겨보게 되고, 네가 가까이 있을 때는 어떤 냄새가 나는지 알게 될 거고, 네가 걸을 때는 어떤 소리가 나는지에도 귀 기울이게 될 거야, 그게 바로 너야.

115P.  너는 이미 훌륭한 코뿔소야. 그러니 이제 훌륭한 펭귄이 되는 일만 남았네

 

불편한 부분을 당연하게 채워주는 코끼리 가족과 펭귄 친구, 버려진 알을 보살피는 청년 펭귄들, 코뿔소에게 수영을 배우는 펭귄이라니 참 놀랍고도 따뜻합니다. 서로의 부족함을 도와주며 함께 가는 세상, 포기하지 않은 사람들로 인해 혼자여도 긴긴밤을 견디고 바다에 도달하는 기적을 만들 수 있는 세상, 우리가 바라는 세상이네요. 나의 긴긴밤을 함께 보내준 사람들을 생각해보며 덕분에 오늘의 내가 되었다는 걸 생각하니 감사한 마음입니다. 나도 누군가에게 잠깐이라도 함께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해봅니다.


이 책을 읽고 우연히 본 뉴스에서 북부흰코뿔소의 멸종을 막기 위한 해결책이 제시되고 있다고 합니다. 코뿔소 뿔에 대한 수요가 많아 불법 밀렵이 성행하여 이제 세계에 남은 북부흰코뿔소는 ‘나진’이라는 이름을 가진 어미 북부흰코뿔소와 그의 딸인 ‘파투’ 두 마리 암컷이 두 마리 뿐입니다. 부디 멸종을 가져온 인간의 욕심을 과학의 힘으로 회복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래봅니다.

🔽 북부흰코뿔소 사진입니다


마지막으로 기억하고 싶은 송수연 평론가님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긴긴밤> 속 전언처럼 우리 삶은 더러운 웅덩이 같은 곳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작품은 그 더러운 웅덩이 속에 빛나는 별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고 이야기한다. 오늘도 “별이 빛나는 더러운 웅덩이” 속을 타박타박 걷고 있을 아이들에게 이 책이 작은 버팀목이 되어 주리라 믿는다. 힘들고 무서워도 도망가지 않고 소리 지르고 울면서 똥을 뿌리는 것이 최선임을, 다리나 눈이 불편한 친구를 놀리는 것이 아니라 그의 불편한 다리와 눈 옆에 자연스레 서는 것이 순리임을, 그렇게 나와 친구를 지키는 것이 더러운 웅덩이를 별빛같이 만드는 일임을 알고 서로에게 기대어 오늘을 버티고 내일로 힘차게 나아가기를. 그러다 보면 언젠가 우리는 다시 인사하게 될 것이다. “코와 부리를 맞대고” 눈과 눈으로, 마음과 마음으로, 영혼과 영혼으로.

 

10 7
Kea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