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 코리아》는 책방지기님이 1월 <작고느린 책모임>을 위해 추천해 주신 책입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지금껏 읽은 책모임 책 중에서 가장 빨리 사서 읽은 책인 것 같아요. 그런데 1월 책모임 이벤트 준비를 너무 열심히 하느라 정작 감상문 쓰는 것이 미뤄지고 말았네요. 이왕 늦은 김에 《키스, 동양의 창을 열다》도 함께 읽었습니다.


옮긴이인 송영달 교수님에 따르면 키스는 9남매 중 다섯 째 딸이었는데 9남매 모두 '전통에 집착'하는 성향이 있었다고 해요. 키스를 일본에 초대한 엘스펫 언니 부부는 일본의 농업을 연구했고, 다른 언니는 고대 직조물을 수집했고, 다른 형제는 인류학을 공부했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키스는 서양 물질문명의 확산으로 동양(한국, 중국, 일본, 필리핀 등)에서 사라져 가는 것들을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봅니다.
1887년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난 키스는 1915년 엘스펫 언니 부부 초청으로 일본에 와서 5년간 머무르다가 영국으로 돌아가기 직전인 1919년 3월, '일본제국의 일부'라 생각했던 조선에 구경삼아 오게 됩니다.
그런데 막상 조선에 와 보니 일제가 말하는 '게으르고 더럽고 거짓말을 일삼는 미개한 조선인'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검과 총으로 무장한 지배자인 일본 경찰을 초라하게 만드는 조선인의 '의젓한 몸가짐'에 놀라고, 조선인의 아름다운 의복, 건축물, 자연풍광, 그리고 높은 정신문화에 감탄하게 됩니다.
그래서 "깊이 살펴보면 볼수록 (...) 존경하고 보존해야 할 아름다운" 한국의 것들을 생생하게 그림으로 그려 1946년《올드 코리아》라는 제목으로 서양에 미지의 작은 나라 조선을 최초로 소개합니다. 책방지기님이 추천해 주신 책이 바로 이 책입니다.
이 책은 조선의 아름답고 고유한 문화유산을 그림으로 기록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림 못지 않게 키스와 언니 엘스펫이 조선에 대해 쓴 글도 중요해 보입니다.
특히 키스 자매가 조선에 오기 직전에 일어났던 3.1만세 운동에 대한 상세한 자료를 탐문하여 글로 기록하고, 또 3.1운동의 성격과 의의를 "도덕적 용기"에서 비롯된 비폭력 저항운동임을 분명히 밝히고 일제가 이러한 비폭력운동을 무자비한 폭력으로 짓밟았다는 키스 자신의 목격담을 기록으로 남겨 세계에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화가의 직업을 뛰어 넘는 중요한 역할을 해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이 책은 그림과 글이 어우러져 술술 읽히는 책임에도 결코 가볍지 않은 책입니다. 조선팔도 유람을 막 마치고 돌아온 사람이 조선의 평범한 사람들, 풍속, 거리 풍경 등이 담긴 이야기 보따리를 떠들썩하게 풀어놓는 것 같기도 하고, 3.1만세운동의 한복판에서 보고 들은 것을 비장하고 비밀스럽게 전달해 주는 것 같기도 합니다.
다음은 제가 이 책에서 인상적으로 보았던 그림들입니다.
1. 이순신 장군 초상화(추정)
1946년에 출판된《올드 코리아》는 이 책의 번역자이며 미국에 살면서 한국 관련 서양 고서와 서양 화가들이 그린 한국 소재 그림을 수집하던 송영달 교수님이 발굴하여 오늘날 우리가 읽을 수 있게 된 책입니다.
《올드 코리아》의 초판 번역본은 2006년에 나왔지만, 키스가 한국을 소재로 그린 작품 85점을 모두 소개하는 완전 복원판은 2020년에 출판되는데, 이 완전 복원판에 <이순신 장군 초상화>(추정)가 실려있습니다.
키스를 세계적인 화가로 만들어 준 작품은 <달빛 아래 서울의 동대문>입니다.

<달빛 아래 서울의 동대문>, 1920
그러나 3.1만세 운동이 일어나던 1919년 3월에서 5월까지 석 달 동안 한국에 머물면서 키스가 가장 큰 화폭(77×55)에 그린 그림은 <이순신 장군 초상화>라고 합니다.

<이순신 장군 초상화>(추정)
송영달 교수님에 따르면 당시 키스는 이순신 장군이 어떤 인물인지 알고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일본의 눈에 띌 위험을 감수하고도 일제에 억압받고 있는 조선을 위해 이순신 장군의 초상화를 그렸을 것이라고 추정합니다.
키스가 조선에 머물 당시에는 이순신 장군 사당 서너 곳에 장군의 초상이 걸려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우리나라에는 이순신 장군의 원래 모습이 담긴 초상화는 단 한 점도 남아있지 않다고 합니다. 일본과 맞서 싸웠던 장군의 비극은 홍범도 장군만이 아닌 것 같아 마음이 안 좋습니다.
2. 조선의 여성들
키스는 조선인의 가장 훌륭한 덕목으로 "의젓한 몸가짐"을 뽑았습니다. 키스는 학식이 많은 선비나 학자가 아닌 조선의 여성들에게서도 이 의젓함을 보았고, 그것을 <바느질 하는 여자>와 <과부>에 담아냈습니다.
<바느질 하는 여자>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직접 만든 옷을 꺼내 보고 있는 여자를 그린 것입니다. 이 여인의 방에는 유일한 가구인 장롱이 하나 있는데, 그 장롱 안에 직접 만든 이런 옷이 가지런히 차곡차곡 들어 있었다고 합니다. 깔끔한 방과 단정한 옷매무새와 머리, 곧은 자세에서 조선 여인의 올곧은 아름다움이 느껴집니다.

<바느질 하는 여자>
<과부>는 일본 경찰에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하고 나온 부인을 그린 그림인데, 얼굴과 목에 고문의 흔적이 남아있었음에도 표정은 온화했고 원한에 찬 모습도 아니었다고 합니다. 본인은 고문을 당하고, 남편은 죽었고, 아들은 일제에 끌려갔음에도 타고난 기품과 아름다움이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여인이었다고 합니다. 이런 여인의 가르침이 조선의 딸과 아들 들에게 이어지는 한 일본은 한국을 머리카락 한 올 만큼도 건들지 못할 거란 생각이 듭니다.

<과부>
3. 조선의 풍속 : 결혼식과 장례식
지금은 결혼은 결혼식장에서, 장례는 장례식장에서 하기 때문에 키스의 그림이 보여주는 결혼식과 장례식이 낯설게 느껴집니다.
요즘은 '의식'을 귀찮은 형식으로 치부해서 무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키스의 그림을 보면서 공동체 의식의 부활이 결혼식과 장례식 같은 기쁨과 슬픔을 '함께 하는' 의식의 부활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신부 행차>, 1921
<신부 행차 >그림을 보고 있으면 신부 행차의 떠들썩한 행렬이 지나가면서 마을이 덩달아 들떠오르는 게 느껴집니다. 뒤에 보이는 높은 건물은 동대문이라고 합니다. <장례를 치르고 돌아오며>는 저녁 어스름이 한 세대가 마감했음을 보여 주는 것 같습니다. 내일 아침에는 새로운 해가 떠오르겠지요.

<장례를 치르고 돌아오며>, 1922
4. 건축물과 어우러지는 조선의 아름다운 자연경관
서양인이 조선에 처음 왔을 때 가장 눈에 띄는 것이 나지막한 초가집들 위로 웅장하게 솟아오른 성문이나 누각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키스도 조선의 성문이나 누각을 많이 그렸습니다.

<평양 강변>, 1925

<수원의 수문, 화홍문>

<한국의 성벽과 광희문>
요즘 서울의 성문 주변은 높은 건물과 자동차 들로 넘쳐나 주변 경관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없는데 키스의 그림에서는 사라져 버린 자연경관의 아름다움이 그내로 담겨 있습니다. 한참을 바라보아도 마냥 좋았던 그림들이었어요.
5. 조선의 학자들
키스가 조선에서 주목한 것은 물질에 집착하는 일제와 달리 조선이 학문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키스는《키스, 동양의 창을 열다》에 중국, 일본, 필리핀에 관한 그림을 실었는데 이들 나라에서 학자들을 그린 그림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키스는 다른 사람을 사랑할 줄 아는 마음과 3.1만세운동을 주도한 도덕적 용기가 조선인들의 학문 중시에서 나온 것으로 보고 있는 듯 합니다. 물론 키스는 고전 학문에 빠져 '잠'을 자느라 일본의 침략을 받았다는 뼈아픈 지적도 합니다. 그러나 물질문명이 쇠락했을 때 나라와 공동체를 재건하는 힘은 분명 물질문명이 아니라 정신과 도덕성에 있음을 조선의 젊은 의사의 말을 빌어 강조합니다.
키스는 <모자 가게> 그림 설명에서 학자는 특별한 모자(갓)를 쓰는데 이 모자는 오로지 중국 고전을 다 읽은 사람만 쓸 수 있다고 말합니다. 모자 가게 외부 벽과 길가 매대에 갓을 넣어 운반하는 뾰족한 상자들이 보입니다.

<모자 가게>
중국 고전을 토론하고 있는 <두 학자> 머리 위에도 갓 상자가 그려져 있습니다. 토론하고 있는 모습을 '서양 여성'이 스케치하고 싶어 한다는 것을 길게 에둘러 이 동양 학자들에게 전달하느라 시간이 한참 걸렸다는 일화도 소개하고 있습니다.

<두 학자>
어느 미술평론가에 따르면 키스는 동양인을 그린 서양화가 중에서 중국인, 일본인, 한국인을 구별해서 그릴 줄 알았던 유일한 화가였다고 합니다.
제가 인상 깊게 본 그림들을 간략하게 소개했는데, 《올드 코리아》에는 더 생생한 그림과 풍부한 이야기가 가득 들어 있답니다. 기회가 되면 꼭 읽어 보시길 권해 드립니다.
《올드 코리아》는 책방지기님이 1월 <작고느린 책모임>을 위해 추천해 주신 책입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지금껏 읽은 책모임 책 중에서 가장 빨리 사서 읽은 책인 것 같아요. 그런데 1월 책모임 이벤트 준비를 너무 열심히 하느라 정작 감상문 쓰는 것이 미뤄지고 말았네요. 이왕 늦은 김에 《키스, 동양의 창을 열다》도 함께 읽었습니다.
옮긴이인 송영달 교수님에 따르면 키스는 9남매 중 다섯 째 딸이었는데 9남매 모두 '전통에 집착'하는 성향이 있었다고 해요. 키스를 일본에 초대한 엘스펫 언니 부부는 일본의 농업을 연구했고, 다른 언니는 고대 직조물을 수집했고, 다른 형제는 인류학을 공부했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키스는 서양 물질문명의 확산으로 동양(한국, 중국, 일본, 필리핀 등)에서 사라져 가는 것들을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봅니다.
1887년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난 키스는 1915년 엘스펫 언니 부부 초청으로 일본에 와서 5년간 머무르다가 영국으로 돌아가기 직전인 1919년 3월, '일본제국의 일부'라 생각했던 조선에 구경삼아 오게 됩니다.
그런데 막상 조선에 와 보니 일제가 말하는 '게으르고 더럽고 거짓말을 일삼는 미개한 조선인'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검과 총으로 무장한 지배자인 일본 경찰을 초라하게 만드는 조선인의 '의젓한 몸가짐'에 놀라고, 조선인의 아름다운 의복, 건축물, 자연풍광, 그리고 높은 정신문화에 감탄하게 됩니다.
그래서 "깊이 살펴보면 볼수록 (...) 존경하고 보존해야 할 아름다운" 한국의 것들을 생생하게 그림으로 그려 1946년《올드 코리아》라는 제목으로 서양에 미지의 작은 나라 조선을 최초로 소개합니다. 책방지기님이 추천해 주신 책이 바로 이 책입니다.
이 책은 조선의 아름답고 고유한 문화유산을 그림으로 기록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림 못지 않게 키스와 언니 엘스펫이 조선에 대해 쓴 글도 중요해 보입니다.
특히 키스 자매가 조선에 오기 직전에 일어났던 3.1만세 운동에 대한 상세한 자료를 탐문하여 글로 기록하고, 또 3.1운동의 성격과 의의를 "도덕적 용기"에서 비롯된 비폭력 저항운동임을 분명히 밝히고 일제가 이러한 비폭력운동을 무자비한 폭력으로 짓밟았다는 키스 자신의 목격담을 기록으로 남겨 세계에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화가의 직업을 뛰어 넘는 중요한 역할을 해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이 책은 그림과 글이 어우러져 술술 읽히는 책임에도 결코 가볍지 않은 책입니다. 조선팔도 유람을 막 마치고 돌아온 사람이 조선의 평범한 사람들, 풍속, 거리 풍경 등이 담긴 이야기 보따리를 떠들썩하게 풀어놓는 것 같기도 하고, 3.1만세운동의 한복판에서 보고 들은 것을 비장하고 비밀스럽게 전달해 주는 것 같기도 합니다.
다음은 제가 이 책에서 인상적으로 보았던 그림들입니다.
1. 이순신 장군 초상화(추정)
1946년에 출판된《올드 코리아》는 이 책의 번역자이며 미국에 살면서 한국 관련 서양 고서와 서양 화가들이 그린 한국 소재 그림을 수집하던 송영달 교수님이 발굴하여 오늘날 우리가 읽을 수 있게 된 책입니다.
《올드 코리아》의 초판 번역본은 2006년에 나왔지만, 키스가 한국을 소재로 그린 작품 85점을 모두 소개하는 완전 복원판은 2020년에 출판되는데, 이 완전 복원판에 <이순신 장군 초상화>(추정)가 실려있습니다.
키스를 세계적인 화가로 만들어 준 작품은 <달빛 아래 서울의 동대문>입니다.
<달빛 아래 서울의 동대문>, 1920
그러나 3.1만세 운동이 일어나던 1919년 3월에서 5월까지 석 달 동안 한국에 머물면서 키스가 가장 큰 화폭(77×55)에 그린 그림은 <이순신 장군 초상화>라고 합니다.
<이순신 장군 초상화>(추정)
송영달 교수님에 따르면 당시 키스는 이순신 장군이 어떤 인물인지 알고 있었고, 그렇기 때문에 일본의 눈에 띌 위험을 감수하고도 일제에 억압받고 있는 조선을 위해 이순신 장군의 초상화를 그렸을 것이라고 추정합니다.
키스가 조선에 머물 당시에는 이순신 장군 사당 서너 곳에 장군의 초상이 걸려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우리나라에는 이순신 장군의 원래 모습이 담긴 초상화는 단 한 점도 남아있지 않다고 합니다. 일본과 맞서 싸웠던 장군의 비극은 홍범도 장군만이 아닌 것 같아 마음이 안 좋습니다.
2. 조선의 여성들
키스는 조선인의 가장 훌륭한 덕목으로 "의젓한 몸가짐"을 뽑았습니다. 키스는 학식이 많은 선비나 학자가 아닌 조선의 여성들에게서도 이 의젓함을 보았고, 그것을 <바느질 하는 여자>와 <과부>에 담아냈습니다.
<바느질 하는 여자>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직접 만든 옷을 꺼내 보고 있는 여자를 그린 것입니다. 이 여인의 방에는 유일한 가구인 장롱이 하나 있는데, 그 장롱 안에 직접 만든 이런 옷이 가지런히 차곡차곡 들어 있었다고 합니다. 깔끔한 방과 단정한 옷매무새와 머리, 곧은 자세에서 조선 여인의 올곧은 아름다움이 느껴집니다.
<바느질 하는 여자>
<과부>는 일본 경찰에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하고 나온 부인을 그린 그림인데, 얼굴과 목에 고문의 흔적이 남아있었음에도 표정은 온화했고 원한에 찬 모습도 아니었다고 합니다. 본인은 고문을 당하고, 남편은 죽었고, 아들은 일제에 끌려갔음에도 타고난 기품과 아름다움이 전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여인이었다고 합니다. 이런 여인의 가르침이 조선의 딸과 아들 들에게 이어지는 한 일본은 한국을 머리카락 한 올 만큼도 건들지 못할 거란 생각이 듭니다.
<과부>
3. 조선의 풍속 : 결혼식과 장례식
지금은 결혼은 결혼식장에서, 장례는 장례식장에서 하기 때문에 키스의 그림이 보여주는 결혼식과 장례식이 낯설게 느껴집니다.
요즘은 '의식'을 귀찮은 형식으로 치부해서 무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키스의 그림을 보면서 공동체 의식의 부활이 결혼식과 장례식 같은 기쁨과 슬픔을 '함께 하는' 의식의 부활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신부 행차>, 1921
<신부 행차 >그림을 보고 있으면 신부 행차의 떠들썩한 행렬이 지나가면서 마을이 덩달아 들떠오르는 게 느껴집니다. 뒤에 보이는 높은 건물은 동대문이라고 합니다. <장례를 치르고 돌아오며>는 저녁 어스름이 한 세대가 마감했음을 보여 주는 것 같습니다. 내일 아침에는 새로운 해가 떠오르겠지요.
<장례를 치르고 돌아오며>, 1922
4. 건축물과 어우러지는 조선의 아름다운 자연경관
서양인이 조선에 처음 왔을 때 가장 눈에 띄는 것이 나지막한 초가집들 위로 웅장하게 솟아오른 성문이나 누각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키스도 조선의 성문이나 누각을 많이 그렸습니다.
<평양 강변>, 1925
<수원의 수문, 화홍문>
<한국의 성벽과 광희문>
요즘 서울의 성문 주변은 높은 건물과 자동차 들로 넘쳐나 주변 경관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없는데 키스의 그림에서는 사라져 버린 자연경관의 아름다움이 그내로 담겨 있습니다. 한참을 바라보아도 마냥 좋았던 그림들이었어요.
5. 조선의 학자들
키스가 조선에서 주목한 것은 물질에 집착하는 일제와 달리 조선이 학문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키스는《키스, 동양의 창을 열다》에 중국, 일본, 필리핀에 관한 그림을 실었는데 이들 나라에서 학자들을 그린 그림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키스는 다른 사람을 사랑할 줄 아는 마음과 3.1만세운동을 주도한 도덕적 용기가 조선인들의 학문 중시에서 나온 것으로 보고 있는 듯 합니다. 물론 키스는 고전 학문에 빠져 '잠'을 자느라 일본의 침략을 받았다는 뼈아픈 지적도 합니다. 그러나 물질문명이 쇠락했을 때 나라와 공동체를 재건하는 힘은 분명 물질문명이 아니라 정신과 도덕성에 있음을 조선의 젊은 의사의 말을 빌어 강조합니다.
키스는 <모자 가게> 그림 설명에서 학자는 특별한 모자(갓)를 쓰는데 이 모자는 오로지 중국 고전을 다 읽은 사람만 쓸 수 있다고 말합니다. 모자 가게 외부 벽과 길가 매대에 갓을 넣어 운반하는 뾰족한 상자들이 보입니다.
<모자 가게>
중국 고전을 토론하고 있는 <두 학자> 머리 위에도 갓 상자가 그려져 있습니다. 토론하고 있는 모습을 '서양 여성'이 스케치하고 싶어 한다는 것을 길게 에둘러 이 동양 학자들에게 전달하느라 시간이 한참 걸렸다는 일화도 소개하고 있습니다.
<두 학자>
어느 미술평론가에 따르면 키스는 동양인을 그린 서양화가 중에서 중국인, 일본인, 한국인을 구별해서 그릴 줄 알았던 유일한 화가였다고 합니다.
제가 인상 깊게 본 그림들을 간략하게 소개했는데, 《올드 코리아》에는 더 생생한 그림과 풍부한 이야기가 가득 들어 있답니다. 기회가 되면 꼭 읽어 보시길 권해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