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작고느린 책모임>에서는 여성서사와 관련된 소설을 선택해 읽기로 했는데 나는 파격적인 내용으로 세상의 관심을 끌었던 한강 작가의《채식주의자》를 선택했다.
이 소설은 불교적 '구원'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한강의 아버지인 한승원 작가가 쓴 <아제아제바라아제>의 연장선상에 있는 소설처럼 보여진다.
독후감을 이렇게 늦게 올리는 것은 이 소설을 소화시키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기 때문이다.

소설에서 말하는 '채식주의'는 동물의 고통에 대한 공감을 넘어 인간 내면에 숨어 있는 폭력성에 맞서는 용어이다. 한강은 인간의 이러한 은밀한 폭력성을 육식을 통해 드러내고, 이 육식의 거부를 기존의 가부장적 상식과 질서에 저항하는 행위로 확장시킨다.
따라서 한강은 육식이 보편화된 사회에서 채식주의자가 겪는 일상의 불편함이 아니라 인간이 인간에게 행하는 폭력을 보여준다. 즉 베트남전 참전 용사였던 아버지가 육식을 거부하는 딸의 팔을 붙잡게 하고 손으로 탕수육을 집어 강제로 딸의 입에 밀어넣는 행위는 딸의 건강을 걱정하는 부성애라기 보다는 고기를 먹으라는 아버지의 명령을 거부하는 딸에게 행하는 고문처럼 보인다.
또 높게 쌓아올린 성을 암시하는 '축성' 정신병원에서 영혜의 사지를 묶고 코에 튜브를 찔러 넣어 미음을 주입하는 의사들 역시 영혜를 고문하는 것처럼 보여진다.
영혜의 언니 인혜는 고기는 물론 모든 음식을 거부하는 영혜가 죽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의사들의 행위를 묵인한다. 그러나 고통스러워하는 동생을 보다못해 "하지 마......!"라고 외침으로써 의사들의 행위를 멈추게 한다.
영혜에게 오랫동안 가해지는 이러한 폭력은 어렸을 때 영혜의 다리를 물어뜯은 개에게 아버지가 행한 폭력을 연상시킨다. 아버지는 주인의 딸을 문 개를 오토바이에 매달아 개가 죽을 때까지 오랫동안 끌고 다녔다. 그리고 죽은 개는 저녁에 가족들이 둘러앉아 먹는 음식이 되었다. 오토바이에 매달려 끌려다니는 개를 보았지만 어린 영혜는 "하지 마......!"라고 외치지도 못했다.
세편의 소설로 구성된 연작소설인《채식주의자》는 2007년에 발표되었다. 그 뒤로 한강은 80년 광주를 다룬 《소년이 온다》(2014)와 제주 4.3을 다룬 《작별하지 않는다》(2021)를 쓰게 된다. 그렇다면 자신의 폭력성을 마주하고 채식주의를 선언하는 영혜의 이야기인 이 소설은 한강이 광주와 제주에서 벌어졌던 국가 폭력과 마주하기 위한 준비단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소설에서 영혜가 자신의 폭력성과 처음으로 마주하는 순간은 화를 내며 아침을 재촉하는 남편의 성화에 칼질을 급하게 하다가 손가락을 베었을 때이다. 피가 나는 속가락을 입속에 넣었는데 이상하게도 들큰한 맛이 자신을 진정시키는 것을 느끼며 자신이 피에 중독된 것을 자각한다.
영혜는 베트남전 참전용사인 아버지가 육식을 좋아해서 가족들과 함께 고기를 즐겨 먹었다. 그래서 집에는 늘 고기굽는 냄새와 마늘 타는 연기가 자욱했다. 고기 요리도 잘 하는 영혜는 결혼해서도 남편과 함께 곧잘 고기를 먹었다.
그런데 우연히 자각한 폭력성은 잠만 자면 꿈속에 나타나 영혜를 괴롭힌다. 꿈속에서 영혜는 옷과 입에 피를 묻히며 날고기를 훔쳐먹기도 하고 시뻘건 피웅덩이에 비치는 자신의 얼굴을 보기도 한다. 그래서 떨면서 눈을 뜰 때마다 "내 손톱이 아직 부드러운지, 내 이빨이 아직 온순한지" 확인한다.
생시에는 "뒤뚱거리며 내 앞을 걸어가는 비둘기를 죽이고 싶어질 때, 오래 지켜보았던 이웃집 고양이를 목조르고 싶을 때, (...) 내가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은 때", 정육점 앞을 지나갈 때, 입 안에 침이 고여 입을 막는다고 말한다.
영혜는 그동안 자신이 너무 많이 먹은 고기가 끔찍한 꿈의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피와 살은 모두 소화돼 몸 구석구석으로 흩어지고, 찌꺼기는 배설됐지만, 목숨들만은 끈질기게 명치에 달라붙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영혜는 꿈에 시달리지 않기 위해 잠시라도 의식을 놓았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그리고 냉장고의 고기를 모두 버리고 육식을 거부한다.
그러나 남편 회사의 사장 부부와의 식사자리에서 영혜가 육식을 거부하는 바람에 남편은 승진 기회를 놓쳐버린다. 남편은 가족모임에서 아내가 다시 고기를 먹게 하도록 장인에게 도움을 청한다. 베트남전 참전 용사였던 장인은 딸 영혜를 달래다가 말을 듣지 않자 딸의 뺨을 치고는 팔을 붙잡게 하고 탕수육을 억지로 먹게 한다.
하지만 영혜는 탕수육을 곧 뱉어낸다. 그리고 "비켜!"라고 외치며 몸을 빼내 아버지가 다가오지 못하도록 칼로 손목을 긋는다.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의 손찌검을 저항없이 뼛속까지 받아들였던 영혜는 이날 처음으로 아버지에게 저항한다. 그러나 이로써 영혜의 폭력성은 꿈속에 머물지 않고 현실에 나타나기 시작한다.
1부 <채식주의자>의 마지막 장면은 영혜가 정말 괴물이 되었음을 보여준다. 병원에 실려간 영혜는 치료를 받고 밖에 나와 벤치에 앉아 웃옷을 벗고 나무처럼 햇볕을 쬐고 있다. 그러나 이런 평화로운 모습을 자세히 살펴보면 오른손에 이빨로 목을 물어뜯은 새가 꼭 쥐어져 있다.
화른 내며 아침을 재촉하는 남편 때문에 손을 베면서 우연히 맛본 피맛으로 자신 안에 숨어 있던 폭력성을 자각하고, 그뒤로 아버지가 자신에게 행하는 폭력에 폭력으로 저항하다 스스로 폭력을 행하는 괴물이 되어버린 영혜.
한강은 이처럼 현실에서 벌어지는 끔찍한 폭력이 사실은 일상의 작은 언어폭력에서 시작하여 커진 것임을 보여준다. 그리고 폭력에 폭력으로 저항하는 것은 결국 스스로를 괴물로 만드는 자기 파괴적 결과를 낳는다는 것도 보여준다. 이 부분에서 비폭력 저항이 왜 중요하지 깨닫게 된다. 사실 비폭력 저항이 뜻은 좋지만 폭력에 저항하는 무기력한 방법이라고 대부분 생각하기 때문이다.
2부 <몽고반점>에서 형부 수영이 자신의 내면에 숨어 있는 처제 영혜에 대한 '폭력적' 욕망을 자각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다. 수영은 스스로 도덕적인 사람이라고 자부하며 노숙자와 난치병 어린이들, 그리고 붕괴사고 현장 등을 찾아 영상에 담는 비디오 예술가이다.
그런데 장인이 처제 영혜에게 행하는 폭력을 목격하고, 손목을 그은 영혜를 등에 업고 병원에 가면서 와이셔츠에 영혜의 피를 묻히게 된다. 그리고 우연히 어린 아이들의 엉덩이에만 있는 몽고반점이 처제한테도 있다는 말을 아내에게 듣게 된다.
이후로 수영은 고통받는 사람들이 미워지고 그들을 카메라로 찍는 일이 자신에게 폭력으로 다가옴을 느끼며 현실에 강한 구역질을 느낀다. 동시에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향해내려가기 보다는 고통을 가하는 쪽, 즉 승자가 되어 날아오르려는 욕망에 시달린다. 이렇게 아버지의 폭력의 대상이었던 아이처럼 순수하고 여린 영혜는 또다른 폭력인 형부의 욕망의 대상이 된다.
한편 자신이 괴물이 되었다는 것을 자각한 영혜는 자신에게서 동물성을 완전히 제거하고 식물성 존재가 되기 위해 스스로를 파괴하는 방법을 선택한다. 자기파괴는 자신이 괴물이라는 사실을 자각한 존재의 피할수 없는 운명이다.
그래서 영혜는 몸에 꽃을 그리고 형부와 교접하는 과정을 비디오에 담는 것을 무저항으로 받아들인다. 자신이 요리하고 먹었을 고기들이 '생존'이라는 미명하에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겪었을 고통스런 폭력을 스스로에게 가한다. 그 폭력은 형부의 욕망을 충족시켜주는 것이지만 '현실을 초월하는 관능'이라는 예술적 미명하에 행해진다. 영혜의 이러한 선택은 자신이 그리고 인간이 생명 있는 존재에게 행한 모든 폭력에 대한 속죄의 의미를 띄기도 한다.
"가장 추악하며, 동시에 가장 아름다운 이미지의 끔찍한 결합"이라는 속죄의식을 행하고 나서 영혜는 더 이상 꿈을 꾸지 않는다. 그리고 말도 생각도 하지 않고 먹지도 않는 진짜 나무가 되려고 한다. 소설은 의사들의 연명치료에 온몸으로 고통스럽게 저항하는 동생을 보다못해 언니 인혜가 동생을 정신병원에서 데리고 나오면서 끝난다.
《채식주의자》는 단순히 육식을 거부하는 한 여자의 이야기가 아니라 폭력이 폭력을 부르고, 현실의 끔찍한 폭력도 일상의 사소한 작은 폭력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따라서 폭력은 그것이 비록 저항의 수단일지라도 세상과 인간을 구원할 수 없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이 사실은아무리 힘들고 비참한 상황에서도 우리가 사랑을 포기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불편한 이야기에 상처를 받는다면 추천하고 싶지 않은 소설이다. 그러나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고 있지만 사회에 만연되어 있는 폭력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도록 한다는 점에서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12월 <작고느린 책모임>에서는 여성서사와 관련된 소설을 선택해 읽기로 했는데 나는 파격적인 내용으로 세상의 관심을 끌었던 한강 작가의《채식주의자》를 선택했다.
이 소설은 불교적 '구원'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한강의 아버지인 한승원 작가가 쓴 <아제아제바라아제>의 연장선상에 있는 소설처럼 보여진다.
독후감을 이렇게 늦게 올리는 것은 이 소설을 소화시키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기 때문이다.
소설에서 말하는 '채식주의'는 동물의 고통에 대한 공감을 넘어 인간 내면에 숨어 있는 폭력성에 맞서는 용어이다. 한강은 인간의 이러한 은밀한 폭력성을 육식을 통해 드러내고, 이 육식의 거부를 기존의 가부장적 상식과 질서에 저항하는 행위로 확장시킨다.
따라서 한강은 육식이 보편화된 사회에서 채식주의자가 겪는 일상의 불편함이 아니라 인간이 인간에게 행하는 폭력을 보여준다. 즉 베트남전 참전 용사였던 아버지가 육식을 거부하는 딸의 팔을 붙잡게 하고 손으로 탕수육을 집어 강제로 딸의 입에 밀어넣는 행위는 딸의 건강을 걱정하는 부성애라기 보다는 고기를 먹으라는 아버지의 명령을 거부하는 딸에게 행하는 고문처럼 보인다.
또 높게 쌓아올린 성을 암시하는 '축성' 정신병원에서 영혜의 사지를 묶고 코에 튜브를 찔러 넣어 미음을 주입하는 의사들 역시 영혜를 고문하는 것처럼 보여진다.
영혜의 언니 인혜는 고기는 물론 모든 음식을 거부하는 영혜가 죽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의사들의 행위를 묵인한다. 그러나 고통스러워하는 동생을 보다못해 "하지 마......!"라고 외침으로써 의사들의 행위를 멈추게 한다.
영혜에게 오랫동안 가해지는 이러한 폭력은 어렸을 때 영혜의 다리를 물어뜯은 개에게 아버지가 행한 폭력을 연상시킨다. 아버지는 주인의 딸을 문 개를 오토바이에 매달아 개가 죽을 때까지 오랫동안 끌고 다녔다. 그리고 죽은 개는 저녁에 가족들이 둘러앉아 먹는 음식이 되었다. 오토바이에 매달려 끌려다니는 개를 보았지만 어린 영혜는 "하지 마......!"라고 외치지도 못했다.
세편의 소설로 구성된 연작소설인《채식주의자》는 2007년에 발표되었다. 그 뒤로 한강은 80년 광주를 다룬 《소년이 온다》(2014)와 제주 4.3을 다룬 《작별하지 않는다》(2021)를 쓰게 된다. 그렇다면 자신의 폭력성을 마주하고 채식주의를 선언하는 영혜의 이야기인 이 소설은 한강이 광주와 제주에서 벌어졌던 국가 폭력과 마주하기 위한 준비단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소설에서 영혜가 자신의 폭력성과 처음으로 마주하는 순간은 화를 내며 아침을 재촉하는 남편의 성화에 칼질을 급하게 하다가 손가락을 베었을 때이다. 피가 나는 속가락을 입속에 넣었는데 이상하게도 들큰한 맛이 자신을 진정시키는 것을 느끼며 자신이 피에 중독된 것을 자각한다.
영혜는 베트남전 참전용사인 아버지가 육식을 좋아해서 가족들과 함께 고기를 즐겨 먹었다. 그래서 집에는 늘 고기굽는 냄새와 마늘 타는 연기가 자욱했다. 고기 요리도 잘 하는 영혜는 결혼해서도 남편과 함께 곧잘 고기를 먹었다.
그런데 우연히 자각한 폭력성은 잠만 자면 꿈속에 나타나 영혜를 괴롭힌다. 꿈속에서 영혜는 옷과 입에 피를 묻히며 날고기를 훔쳐먹기도 하고 시뻘건 피웅덩이에 비치는 자신의 얼굴을 보기도 한다. 그래서 떨면서 눈을 뜰 때마다 "내 손톱이 아직 부드러운지, 내 이빨이 아직 온순한지" 확인한다.
생시에는 "뒤뚱거리며 내 앞을 걸어가는 비둘기를 죽이고 싶어질 때, 오래 지켜보았던 이웃집 고양이를 목조르고 싶을 때, (...) 내가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은 때", 정육점 앞을 지나갈 때, 입 안에 침이 고여 입을 막는다고 말한다.
영혜는 그동안 자신이 너무 많이 먹은 고기가 끔찍한 꿈의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피와 살은 모두 소화돼 몸 구석구석으로 흩어지고, 찌꺼기는 배설됐지만, 목숨들만은 끈질기게 명치에 달라붙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영혜는 꿈에 시달리지 않기 위해 잠시라도 의식을 놓았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그리고 냉장고의 고기를 모두 버리고 육식을 거부한다.
그러나 남편 회사의 사장 부부와의 식사자리에서 영혜가 육식을 거부하는 바람에 남편은 승진 기회를 놓쳐버린다. 남편은 가족모임에서 아내가 다시 고기를 먹게 하도록 장인에게 도움을 청한다. 베트남전 참전 용사였던 장인은 딸 영혜를 달래다가 말을 듣지 않자 딸의 뺨을 치고는 팔을 붙잡게 하고 탕수육을 억지로 먹게 한다.
하지만 영혜는 탕수육을 곧 뱉어낸다. 그리고 "비켜!"라고 외치며 몸을 빼내 아버지가 다가오지 못하도록 칼로 손목을 긋는다.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의 손찌검을 저항없이 뼛속까지 받아들였던 영혜는 이날 처음으로 아버지에게 저항한다. 그러나 이로써 영혜의 폭력성은 꿈속에 머물지 않고 현실에 나타나기 시작한다.
1부 <채식주의자>의 마지막 장면은 영혜가 정말 괴물이 되었음을 보여준다. 병원에 실려간 영혜는 치료를 받고 밖에 나와 벤치에 앉아 웃옷을 벗고 나무처럼 햇볕을 쬐고 있다. 그러나 이런 평화로운 모습을 자세히 살펴보면 오른손에 이빨로 목을 물어뜯은 새가 꼭 쥐어져 있다.
화른 내며 아침을 재촉하는 남편 때문에 손을 베면서 우연히 맛본 피맛으로 자신 안에 숨어 있던 폭력성을 자각하고, 그뒤로 아버지가 자신에게 행하는 폭력에 폭력으로 저항하다 스스로 폭력을 행하는 괴물이 되어버린 영혜.
한강은 이처럼 현실에서 벌어지는 끔찍한 폭력이 사실은 일상의 작은 언어폭력에서 시작하여 커진 것임을 보여준다. 그리고 폭력에 폭력으로 저항하는 것은 결국 스스로를 괴물로 만드는 자기 파괴적 결과를 낳는다는 것도 보여준다. 이 부분에서 비폭력 저항이 왜 중요하지 깨닫게 된다. 사실 비폭력 저항이 뜻은 좋지만 폭력에 저항하는 무기력한 방법이라고 대부분 생각하기 때문이다.
2부 <몽고반점>에서 형부 수영이 자신의 내면에 숨어 있는 처제 영혜에 대한 '폭력적' 욕망을 자각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다. 수영은 스스로 도덕적인 사람이라고 자부하며 노숙자와 난치병 어린이들, 그리고 붕괴사고 현장 등을 찾아 영상에 담는 비디오 예술가이다.
그런데 장인이 처제 영혜에게 행하는 폭력을 목격하고, 손목을 그은 영혜를 등에 업고 병원에 가면서 와이셔츠에 영혜의 피를 묻히게 된다. 그리고 우연히 어린 아이들의 엉덩이에만 있는 몽고반점이 처제한테도 있다는 말을 아내에게 듣게 된다.
이후로 수영은 고통받는 사람들이 미워지고 그들을 카메라로 찍는 일이 자신에게 폭력으로 다가옴을 느끼며 현실에 강한 구역질을 느낀다. 동시에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향해내려가기 보다는 고통을 가하는 쪽, 즉 승자가 되어 날아오르려는 욕망에 시달린다. 이렇게 아버지의 폭력의 대상이었던 아이처럼 순수하고 여린 영혜는 또다른 폭력인 형부의 욕망의 대상이 된다.
한편 자신이 괴물이 되었다는 것을 자각한 영혜는 자신에게서 동물성을 완전히 제거하고 식물성 존재가 되기 위해 스스로를 파괴하는 방법을 선택한다. 자기파괴는 자신이 괴물이라는 사실을 자각한 존재의 피할수 없는 운명이다.
그래서 영혜는 몸에 꽃을 그리고 형부와 교접하는 과정을 비디오에 담는 것을 무저항으로 받아들인다. 자신이 요리하고 먹었을 고기들이 '생존'이라는 미명하에 인간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겪었을 고통스런 폭력을 스스로에게 가한다. 그 폭력은 형부의 욕망을 충족시켜주는 것이지만 '현실을 초월하는 관능'이라는 예술적 미명하에 행해진다. 영혜의 이러한 선택은 자신이 그리고 인간이 생명 있는 존재에게 행한 모든 폭력에 대한 속죄의 의미를 띄기도 한다.
"가장 추악하며, 동시에 가장 아름다운 이미지의 끔찍한 결합"이라는 속죄의식을 행하고 나서 영혜는 더 이상 꿈을 꾸지 않는다. 그리고 말도 생각도 하지 않고 먹지도 않는 진짜 나무가 되려고 한다. 소설은 의사들의 연명치료에 온몸으로 고통스럽게 저항하는 동생을 보다못해 언니 인혜가 동생을 정신병원에서 데리고 나오면서 끝난다.
《채식주의자》는 단순히 육식을 거부하는 한 여자의 이야기가 아니라 폭력이 폭력을 부르고, 현실의 끔찍한 폭력도 일상의 사소한 작은 폭력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따라서 폭력은 그것이 비록 저항의 수단일지라도 세상과 인간을 구원할 수 없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이 사실은아무리 힘들고 비참한 상황에서도 우리가 사랑을 포기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불편한 이야기에 상처를 받는다면 추천하고 싶지 않은 소설이다. 그러나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고 있지만 사회에 만연되어 있는 폭력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도록 한다는 점에서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