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책방에 방문했을 때 책모임 1월 도서를 아직 못 정한 상태여서 책방지기님께 추천을 부탁드렸는데, 덕분에 계속 모르고 지나쳤으면 너무나도 섭섭했을 <올드 코리아> 책을 접했습니다.
이 책의 저자는 두 명인데 엘스펫은 언니, 키스는 동생입니다. 엘스펫이 글을 대부분 썼고, 키스가 그림을 그렸어요. 엘리자베스 키스는 9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는데 당시 시대상으로 어쩔 수 없이 키스는 미술에 소질이 뛰어났음에도 불구하고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습니다.
그녀의 작품을 보면 그림에 있는 모든 사람이 살아 숨 쉬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데, 미술 공부를 따로 한 번도 해본 적 없었다는 사실이 그저 놀라울 뿐입니다. 악보를 볼 줄 모르면서 대단한 음악을 남긴 비틀즈 같달까요?
엘스펫의 남편은 출판사를 운영했는데 일본에 몇 년 다녀올 기회가 생겨 키스도 언니를 따라갔다가 언니와 함께 1919년 3월부터 몇 개월 동안 한국에 여행을 하며, 둘은 한국의 멋에 깊이 빠지게 됩니다. 그렇게 그들이 듣고, 보고, 느낀 것을 모두 담은 것이 <올드 코리아>입니다.
자매가 한국에 왔을 때는 3·1 만세 운동 직후라 우리나라의 화려한 전통 색상, 당시 한국인의 굳은 결의를 보여주는 사람들의 눈빛, 표정과 행동, 그리고 이를 경계하는 일본인들의 긴장감 모두를 느낄 수 있습니다.
조선시대 전통을 끝까지 지키는 사람들, 갓 들어온 서구 문화, 죽음이 바로 닥칠 수 있는 상황에서도 일본에게 허리도 굽히지 않는 독립운동가들, 선교 활동을 위해 한국에 왔다가 우리의 독립운동을 지지하고 돕는 외국인 선교사들, 그리고 눈으로 본 모든 것을 기록으로 남겨 우리의 역사가 흐리게 되지 않게 도와준 키스 자매. 이 모든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제가 이렇게 한글로 감상문을 자유롭게 쓸 수 있다는 생각에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또한 <올드 코리아>에 수록된 그림과 더불어 이곳저곳을 다니시며, 엘리자베스 키스의 그림을 추가로 수집하여 이 방대한 역사 자료를 정리해 주신 송영달 역자 선생님께 무한한 존경을 표합니다.
책에서 인상적인 몇 부분 정리해 보았습니다.
- "남자들이 하얀 두루마기에 하얀 바지만 입기 때문에 당연히 세탁물이 많을 수밖에 없는데 이 나라에서 세탁은 오로지 여자의 몫이다. 일본과 중국에서는 남자가 세탁을 하는데, 한국에서는 유독 여자만 어마어마한 양의 빨래를 담당한다."
일본과 중국에서는 남자가 세탁을 담당했다는 사실이 흥미로웠습니다(한국은 왜!!!). 여자들의 빨래 방망이는 옷을 때리는 걸까요? 아니면...^^;;
- 이 집을 닮은 초라한 다른 주막이 하나 있었는데 그 집 문 위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달을 쳐다보는 데 최고로 좋은 집"
주막 그림에 있던 글입니다. 주막의 소개글이 달을 쳐다보는 데 최고로 좋은 집이라니 한국인들은 참 따뜻하고 감수성이 풍부한 민족이에요.
"달을 쳐다보는 데 최고로 좋은 집은 평산책방!"
- 한국에 삼십 년 넘게 살면서 누구보다도 한국을 잘 알고 한국인을 사랑했으며, 한국인의 사고방식을 서양 사람에게 이해시키는 데 선구적인 역할을 한 제임스 게일 박사님. 내 나라가 아닌 다른 나라를 그렇게 사랑할 수 있다는 게 저한테는 불가능한 일인 것처럼 느껴져서 더 감사하고, 존경스럽습니다.
- 게일 박사는 아시아에서 기독교 전파가 쉽지 않았던 이유는 일반 대중이 문맹이 워낙 많아서 성경을 읽지 못했기 때문인데 한국은 유일한 예외였다고 합니다. 누구나 쉽게 배우고 쓸 수 있는 글자가 있었기에 남녀노소, 빈부의 차이, 직업의 고하, 생계의 방법을 막론하고 누구나 글을 읽을 수 있었지요. 또한 한국에서는 이미 '하느님'이라는 개념이 있어서 유일신 개념을 쉽게 전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언어만큼 그 나라의 문화를 더 깊게 발전시키는 것은 없습니다. 모두에게 글을 읽을 수 있는 평등한 기회를 마련해 주신 세종대왕님 덕분에 우리 민족이 더 단단해진 듯 합니다.
- 한국의 신부는 결혼식 날 꼼짝 못하고 앉아서 아무것도 보지도 먹지도 못했습니다. 안방에 하루종일 앉아 말 없이 모든 칭찬과 품평을 견뎌야 했대요. 잔인해요...ㅠㅠ 신랑은 나가서 먹고 노느라 온종일 바쁜데 말이에요.
- 키스의 수많은 그림 중 저에게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은 '과부'였습니다. 키스에게 모델을 서주려고 앞에 앉았던 이 과부는 한국 북부 지방 출신으로, 당시 일제에 끌려가 온갖 고문을 당하고 감옥에서 풀려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다고 합니다. 몸에는 아직도 고문당한 흔적이 남아 있었지만 그의 표정은 평온했고 원한에 찬 모습도 아니었어요. 남편의 죽음만을 슬퍼할 수도 없었던 게 외아들도 3·1 운동에 적극 가담했다는 이유로 일제에 끌려가 언제 다시 만날 수 있는지 기약이 없는 상태였습니다. 차마 형용할 수 없는 슬픔과 분노가 들끓고 있었을텐데 의연하게 견디는 표정을 한참 보았어요.

- 한국인 청년 의사 부분은 곱씹어 여러 번 읽었습니다. "우리들이 정치, 경제, 사회적 기구를 건설하는 것은 쉽지 않겠지만 우리는 결국 해낼 것입니다. 반면에 일본 사람들은 정신적으로 가치 있는 문화를 절대로 건설하지 못할 것입니다."
- 가장 오래된 이순신 초상화가 키스가 그린 그림일 수 있다는 부분은 굉장히 흥미로웠습니다. 키스 그림에는 이순신 장군이라는 설명은 없지만 눈빛만 봐도 이순신 장군이 맞는 것 같아요. 아, 갑자기 세종대왕님과 이순신 장군님이 보고 싶어요. 조만간 광화문 다녀올게요!
- 키스는 해외에서 한국 소재 그림 전시를 처음으로 한 화가입니다. 그녀가 최초 'K-'
'내 한국 친구들은 독립적이고, 철저한 이상주의자이며, 강인한 애국자다. 그들은 마음이 너그럽고, 늘 유머가 있으며, 친절하고, 오래된 것을 사랑하지만 새 것을 쉽게 받아들인다. 그들은 이 하와이란 섬의 중요한 일부가 되었다. 언젠가 한국이 다시 '고요한 아침의 나라'로 불리는 그날, 그들은 반가운 인사 알로하를 널리널리 전할 것이다.' -엘리자베스 키스
지난 12월 책방에 방문했을 때 책모임 1월 도서를 아직 못 정한 상태여서 책방지기님께 추천을 부탁드렸는데, 덕분에 계속 모르고 지나쳤으면 너무나도 섭섭했을 <올드 코리아> 책을 접했습니다.
이 책의 저자는 두 명인데 엘스펫은 언니, 키스는 동생입니다. 엘스펫이 글을 대부분 썼고, 키스가 그림을 그렸어요. 엘리자베스 키스는 9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는데 당시 시대상으로 어쩔 수 없이 키스는 미술에 소질이 뛰어났음에도 불구하고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습니다.
그녀의 작품을 보면 그림에 있는 모든 사람이 살아 숨 쉬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데, 미술 공부를 따로 한 번도 해본 적 없었다는 사실이 그저 놀라울 뿐입니다. 악보를 볼 줄 모르면서 대단한 음악을 남긴 비틀즈 같달까요?
엘스펫의 남편은 출판사를 운영했는데 일본에 몇 년 다녀올 기회가 생겨 키스도 언니를 따라갔다가 언니와 함께 1919년 3월부터 몇 개월 동안 한국에 여행을 하며, 둘은 한국의 멋에 깊이 빠지게 됩니다. 그렇게 그들이 듣고, 보고, 느낀 것을 모두 담은 것이 <올드 코리아>입니다.
자매가 한국에 왔을 때는 3·1 만세 운동 직후라 우리나라의 화려한 전통 색상, 당시 한국인의 굳은 결의를 보여주는 사람들의 눈빛, 표정과 행동, 그리고 이를 경계하는 일본인들의 긴장감 모두를 느낄 수 있습니다.
조선시대 전통을 끝까지 지키는 사람들, 갓 들어온 서구 문화, 죽음이 바로 닥칠 수 있는 상황에서도 일본에게 허리도 굽히지 않는 독립운동가들, 선교 활동을 위해 한국에 왔다가 우리의 독립운동을 지지하고 돕는 외국인 선교사들, 그리고 눈으로 본 모든 것을 기록으로 남겨 우리의 역사가 흐리게 되지 않게 도와준 키스 자매. 이 모든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제가 이렇게 한글로 감상문을 자유롭게 쓸 수 있다는 생각에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또한 <올드 코리아>에 수록된 그림과 더불어 이곳저곳을 다니시며, 엘리자베스 키스의 그림을 추가로 수집하여 이 방대한 역사 자료를 정리해 주신 송영달 역자 선생님께 무한한 존경을 표합니다.
책에서 인상적인 몇 부분 정리해 보았습니다.
- "남자들이 하얀 두루마기에 하얀 바지만 입기 때문에 당연히 세탁물이 많을 수밖에 없는데 이 나라에서 세탁은 오로지 여자의 몫이다. 일본과 중국에서는 남자가 세탁을 하는데, 한국에서는 유독 여자만 어마어마한 양의 빨래를 담당한다."
일본과 중국에서는 남자가 세탁을 담당했다는 사실이 흥미로웠습니다(한국은 왜!!!). 여자들의 빨래 방망이는 옷을 때리는 걸까요? 아니면...^^;;
- 이 집을 닮은 초라한 다른 주막이 하나 있었는데 그 집 문 위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달을 쳐다보는 데 최고로 좋은 집"
주막 그림에 있던 글입니다. 주막의 소개글이 달을 쳐다보는 데 최고로 좋은 집이라니 한국인들은 참 따뜻하고 감수성이 풍부한 민족이에요.
"달을 쳐다보는 데 최고로 좋은 집은 평산책방!"
- 한국에 삼십 년 넘게 살면서 누구보다도 한국을 잘 알고 한국인을 사랑했으며, 한국인의 사고방식을 서양 사람에게 이해시키는 데 선구적인 역할을 한 제임스 게일 박사님. 내 나라가 아닌 다른 나라를 그렇게 사랑할 수 있다는 게 저한테는 불가능한 일인 것처럼 느껴져서 더 감사하고, 존경스럽습니다.
- 게일 박사는 아시아에서 기독교 전파가 쉽지 않았던 이유는 일반 대중이 문맹이 워낙 많아서 성경을 읽지 못했기 때문인데 한국은 유일한 예외였다고 합니다. 누구나 쉽게 배우고 쓸 수 있는 글자가 있었기에 남녀노소, 빈부의 차이, 직업의 고하, 생계의 방법을 막론하고 누구나 글을 읽을 수 있었지요. 또한 한국에서는 이미 '하느님'이라는 개념이 있어서 유일신 개념을 쉽게 전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언어만큼 그 나라의 문화를 더 깊게 발전시키는 것은 없습니다. 모두에게 글을 읽을 수 있는 평등한 기회를 마련해 주신 세종대왕님 덕분에 우리 민족이 더 단단해진 듯 합니다.
- 한국의 신부는 결혼식 날 꼼짝 못하고 앉아서 아무것도 보지도 먹지도 못했습니다. 안방에 하루종일 앉아 말 없이 모든 칭찬과 품평을 견뎌야 했대요. 잔인해요...ㅠㅠ 신랑은 나가서 먹고 노느라 온종일 바쁜데 말이에요.
- 키스의 수많은 그림 중 저에게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은 '과부'였습니다. 키스에게 모델을 서주려고 앞에 앉았던 이 과부는 한국 북부 지방 출신으로, 당시 일제에 끌려가 온갖 고문을 당하고 감옥에서 풀려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다고 합니다. 몸에는 아직도 고문당한 흔적이 남아 있었지만 그의 표정은 평온했고 원한에 찬 모습도 아니었어요. 남편의 죽음만을 슬퍼할 수도 없었던 게 외아들도 3·1 운동에 적극 가담했다는 이유로 일제에 끌려가 언제 다시 만날 수 있는지 기약이 없는 상태였습니다. 차마 형용할 수 없는 슬픔과 분노가 들끓고 있었을텐데 의연하게 견디는 표정을 한참 보았어요.
- 한국인 청년 의사 부분은 곱씹어 여러 번 읽었습니다. "우리들이 정치, 경제, 사회적 기구를 건설하는 것은 쉽지 않겠지만 우리는 결국 해낼 것입니다. 반면에 일본 사람들은 정신적으로 가치 있는 문화를 절대로 건설하지 못할 것입니다."
- 가장 오래된 이순신 초상화가 키스가 그린 그림일 수 있다는 부분은 굉장히 흥미로웠습니다. 키스 그림에는 이순신 장군이라는 설명은 없지만 눈빛만 봐도 이순신 장군이 맞는 것 같아요. 아, 갑자기 세종대왕님과 이순신 장군님이 보고 싶어요. 조만간 광화문 다녀올게요!
- 키스는 해외에서 한국 소재 그림 전시를 처음으로 한 화가입니다. 그녀가 최초 'K-'
'내 한국 친구들은 독립적이고, 철저한 이상주의자이며, 강인한 애국자다. 그들은 마음이 너그럽고, 늘 유머가 있으며, 친절하고, 오래된 것을 사랑하지만 새 것을 쉽게 받아들인다. 그들은 이 하와이란 섬의 중요한 일부가 되었다. 언젠가 한국이 다시 '고요한 아침의 나라'로 불리는 그날, 그들은 반가운 인사 알로하를 널리널리 전할 것이다.' -엘리자베스 키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