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우 >
-1970년 강릉 출생.
-강릉 외곽 당두마을에서 태어남. 초가집에서 함석집으로 바뀜.
-강릉 시내 가까운 교동마을로 이사. 기와집이었고 후박나무와 석류나무가 있었음. 근처 향교가 있고 은행나무가 있었음.
-7형제.(딸6, 아들1) 아버지는 초등학교 교장. 중학생 오빠의 죽음 이후 시인이 태어남. 아들을바라던 부모님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 아들처럼 자람.
-문학적으로 의지했던 둘째 언니의 출가.
-강원대 사범대 국어교육과 진학. 대학 때 데모를 많이 함. 가두시를 많이 쓰다가 ‘검불을 태우며’란 서정시로 학내 문학상 당선.
시인에 대해 궁금해서 예전에 인터뷰 했던 내용을 살펴 보았다. 89학번으로 국어교육과를 나왔지만 교사가 아닌 시인으로 등단하여 지금까지 글을 쓰고 있다. 이번 시모임에서 선택한 「내 혀가 입속에 갇혀 있길 거부한다면」이란 시집은 출간과 동시에 많은 반향을 일으킨 모양이다. “서정적이면서 감각적인 시어, 모성성과 여성성을 아우르는 관능적인 시 세계. 생태적 페미니즘. 탈중심성의 지향과 거대담론에 대한 해체를 지향해온 90년대 시들의 관념성을 극복한 구체성의 미학, 자연 상태의 식물을 통해 여성적 정체성과 육체적인 여성의 이미지를 발견.” 등의 평가를 들었다. 나는 이 시집을 읽으면서 어휘나 표현이 참 독특하다는 생각을 했다. 어머니의 이미지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갖고 있는 것과 사뭇 달랐다. 대부분 어머니하면 성적인 부분이 사라진 ‘성모’의 모습을 떠올리겠지만 시인은 어머니가 가지고 있는 육체적인 아름다움, 관능미를 강조한다. 그것이 생명을 탄생시키는 ‘생산성’과 연결이 된다. 그래서 더욱 건강하고 인간적인, 또는 근원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여기에 문단에서 주목받았던 시들보다 요즘의 내 마음에 와닿은 시들을 소개해 보겠다.
사랑의 거처
말하지 마라. 아무 말도 하지 마라. 이 나무도 생각이 있어 여기 이렇게 자라고 있을 것이다.-「장자」 인간세편
살다보면 그렇다지
병마저 사랑해야 하는 때가 온다지
치료하기 어려운 슬픔을 가진
한 얼굴과 우연히 마주칠 때
긴 목의 걸인 여자-
나는 자유예요 당신이 얻고자 하는
많은 것들과 아랑곳없는 완전한 폐허예요
가만히 나를 응시하는 눈
나는 텅 빈 집이 된 듯했네
살다보면 그렇다면 내 혼이
다른 육체에 머물고 있는 느낌
그마저 사랑해야 하는 때가 온다네
「내 혀가 입속에 갇혀 있길 거부한다면」, 2023
--> 20대 후반이었을 시인에게서 ‘살다보면’이란 말이 나오다니!! 살다보면 치료하기 어려운 슬픔과 만날 때가 있다. 자신이 그러쥐고 있는 것을 내려놓아야 한다. 욕망을 버리고 완전한 폐허가 되는 일이 그것이다. ‘내 혼이 다른 육체에 머물고 있는 느낌’. 가끔씩 내가 아닌 나를 만나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내 안의 다른 나를 만날 때가 있다. 그럴 때 그마저도 사랑해야 하는 때가 온다. 살다보면 그런 일이 생긴다. 지금의 나보다 훨씬 어렸던 젊은 시인이 이 경지를 알다니!!
점
나는 지금 애인의 왼쪽 엉덩이에 나 있는
푸른 점 하나를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오래 전 내가 당신이었을 때
이 푸른 반점은 내 왼쪽 가슴 밑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지구과학 시간 칠판에 점 하나 쾅, 찍은 선생님이
이것이 우리 은하계다! 하시던 날
솟증이 솟아, 종일토록 꽃밭을 헤맨 기억이 납니다
한 세계를 품고 이곳까지 건너온 고단한 당신,
당신의 푸른 점 속 으로 내가 걸어들어갑니다
푸른 점 속에 까마득한 시간을 날아
다시 하나의 푸른 별을 찾아낸
내 심장이 만년설 위에 얹힙니다
들어오세요 당신, 광대하고도 겨자씨 같은,
당신이 내 속으로 들어올 때 나, 시시로 사나워지는 것은
불 붙은 뼈가 물소리를 내며
자꾸만 몸 밖으로 흘러나오려 하는 것은
푸른 별 깎아지른 벼랑 끝에서
당신과 내가 풀씨 하나로 버티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 혀가 입속에 갇혀 있길 거부한다면」, 2023
--> 사랑하는 이가 있다면 그가 내 세계의 전부가 된다. 그는 나의 전부다. 우주의 한 점인 우리 은하계. 그 은하계에서도 푸른 점이 우리가 사는 세계, 푸른 별이다. 푸른 별 속에서 푸른 점인 나와 당신. 광대하고도 겨자씨 같은 당신과 내가 하나가 되는 영원한 사랑을 꿈꾼다. 깎아지른 벼랑 같은 이 세상에서 당신과 나의 관계는 위태롭고 나약하지만 언젠가 울창한 숲을 이룰 수 있는 풀씨 같은 관계다. 사랑은 작고 약하나 위대한 것이다. 이 세상을 만들어내는 작은 점인 것이다.
헤모글로빈, 알코올, 머리칼
(머리가 깨진 날 기뻤어요
내상보다 외상이 덜 위험하거든요)
보도블록을 깨다 손목 베이자 불타는 머리칼,
바리케이드 위에 살점을 널던 팔십년대
그 격렬한 외상의 날들
자고 일어나면 새살이 돋아 있곤 했지요
추억의 쓴물에 어금니를 담그거나
이적성 표현은 아닙니다
구십년대는 우울한 내상으 날들이어서
걸핏하면 넘어지고 발목을 삐는데
피 한방울 흐르지 않고 멍만 듭니다
세계 인구의 열배도 넘는 세포가 모여 이룬,
육체의 나날은 출혈 없이 평화롭습니다
그런데 어제 머리를 깼지요
만취해 돌아오다 길에 누워버렸습니다
두개골은 멀쩡하고 상처도 크지 않은데
폭포처럼, 피 흘리는 머리칼
친구의 웃옷을 벌겋게, 치마를 물들이고
길바닥에 누워 헤실헤실 웃더랍니다
“아아 상쾌해”하면서 말예요
빨간 다알리아 꽃들이(기억나요?)
뭉텅뭉텅 꿈 밖으로 걸어나갑니다
편지를 썼다가 구겨버렸어요
-내 몸은 나를 보호할 의작 없나봐
방금 당신께 전보를 쳤습니다
-안 보이는 상처가 나를 시들게 해
나는 갑자기 무서워져
다알리아 꽃모갱이를 꺾으며 울었습니다
「내 혀가 입속에 갇혀 있길 거부한다면」, 2023
--> 89학번이었을 시인이 겪었던 90년대의 변화들. 치열했던 80년대를 지나 90년대의 변화에 시인이 답답했을지도 모른다. 80년대 거대담론들의 횡포(?)에 맞서 대안을 찾아내려고 하지만 희망이 보이지 않던 시절이었다. 겉으로는 평온해 보이지만 모순덩어리였던 90년대. 흘러간 운동권들의 구호만 부여잡고 있는 사람들, 포스트모더니즘이라며 세상을 알 수 없는 대상, 모호한 대상으로 만들어 버렸던 말들. 속으로 곪아가는 세상이다. 세상을 바꾸려던 사람들의 무기력한 변화들을 바라보며 화자는 ‘안 보이는 상처가 나를 시들게 해’라며 절규한다. 차라리 머리가 깨지는 게 자신을 기쁘게 한다. 탈중심적 담론들 속에서 여성성 강조과 생태주의적 태도를 갖게 된 것은 이런 모색과 갈등의 결과가 아니었을까.
선운사, 똥낭구
볼혹의 누이 영덕 스님께
선운사에 와
해우소 앞 은행나무 아래 잠시 앉았습니다
이상한 냄새에 내 뒤춤을 자꾸 흘끔거렸는데
갓 여문 은행열매가 피우는 냄새였습니다
애기똥 냄새..... 달짝지근한,
저렇게 대기 속에 하초를 활짝 펼치고
배내똥 같은 열매를 길러낼 수 있다면
당신 생각이 났습니다
폐소공포증을 앓는 당신이 지하서울역에서
황급히 뛰어올라가 파하, 하던
그 계단의 끝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바랑을 지고 플랫폼을 들어서던
당신이 문득 그랬지요... 썩자...
푹 썩어 맑은 물 한국자 우려낼 수 있다면
목어가 울립니다
짭쪼롬하니 곰삭은 목어 소리 속에
온갖 허드렛물 이윽히 발효시키는
선운사 이 똥낭구가 나를 때립니다
「내 혀가 입속에 갇혀 있길 거부한다면」, 2023
--> 시인에게는 출가한 둘째 언니가 있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긴 하지만 시인은 언니에게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언니가 읽었던 책을 읽고 문학 소녀가 되었고 또 시인이 될 수 있었다고 한다. 정신적으로 의지를 많이 했던 사람이다. 시인이 대학에 진학하기 전에 언니가 출가를 했는데 언니의 부재가 참 컸다고 한다. 언니는 선운사에 있다. 선운사의 은행나무가 하체를 펼치고 애기똥 냄새를 풍기며 은행을 떨구자 언니 생각이 난다. 지하철역에서 "썩자"고 했던 기억을 떠올린다. 지하로 들어가 더러워진 몸을 정화시킬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더러워진 몸을 발효시키는 은행나무처럼 썩어야 깨끗해질 수 있을지 모른다. 오염된 인간 세상을 바로잡기 위해 필요한 것은 푹 썩어 맑은 물이 되는 것이다.
<김선우 >
-1970년 강릉 출생.
-강릉 외곽 당두마을에서 태어남. 초가집에서 함석집으로 바뀜.
-강릉 시내 가까운 교동마을로 이사. 기와집이었고 후박나무와 석류나무가 있었음. 근처 향교가 있고 은행나무가 있었음.
-7형제.(딸6, 아들1) 아버지는 초등학교 교장. 중학생 오빠의 죽음 이후 시인이 태어남. 아들을바라던 부모님의 영향으로 어린 시절 아들처럼 자람.
-문학적으로 의지했던 둘째 언니의 출가.
-강원대 사범대 국어교육과 진학. 대학 때 데모를 많이 함. 가두시를 많이 쓰다가 ‘검불을 태우며’란 서정시로 학내 문학상 당선.
시인에 대해 궁금해서 예전에 인터뷰 했던 내용을 살펴 보았다. 89학번으로 국어교육과를 나왔지만 교사가 아닌 시인으로 등단하여 지금까지 글을 쓰고 있다. 이번 시모임에서 선택한 「내 혀가 입속에 갇혀 있길 거부한다면」이란 시집은 출간과 동시에 많은 반향을 일으킨 모양이다. “서정적이면서 감각적인 시어, 모성성과 여성성을 아우르는 관능적인 시 세계. 생태적 페미니즘. 탈중심성의 지향과 거대담론에 대한 해체를 지향해온 90년대 시들의 관념성을 극복한 구체성의 미학, 자연 상태의 식물을 통해 여성적 정체성과 육체적인 여성의 이미지를 발견.” 등의 평가를 들었다. 나는 이 시집을 읽으면서 어휘나 표현이 참 독특하다는 생각을 했다. 어머니의 이미지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갖고 있는 것과 사뭇 달랐다. 대부분 어머니하면 성적인 부분이 사라진 ‘성모’의 모습을 떠올리겠지만 시인은 어머니가 가지고 있는 육체적인 아름다움, 관능미를 강조한다. 그것이 생명을 탄생시키는 ‘생산성’과 연결이 된다. 그래서 더욱 건강하고 인간적인, 또는 근원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여기에 문단에서 주목받았던 시들보다 요즘의 내 마음에 와닿은 시들을 소개해 보겠다.
사랑의 거처
말하지 마라. 아무 말도 하지 마라. 이 나무도 생각이 있어 여기 이렇게 자라고 있을 것이다.-「장자」 인간세편
살다보면 그렇다지
병마저 사랑해야 하는 때가 온다지
치료하기 어려운 슬픔을 가진
한 얼굴과 우연히 마주칠 때
긴 목의 걸인 여자-
나는 자유예요 당신이 얻고자 하는
많은 것들과 아랑곳없는 완전한 폐허예요
가만히 나를 응시하는 눈
나는 텅 빈 집이 된 듯했네
살다보면 그렇다면 내 혼이
다른 육체에 머물고 있는 느낌
그마저 사랑해야 하는 때가 온다네
「내 혀가 입속에 갇혀 있길 거부한다면」, 2023
--> 20대 후반이었을 시인에게서 ‘살다보면’이란 말이 나오다니!! 살다보면 치료하기 어려운 슬픔과 만날 때가 있다. 자신이 그러쥐고 있는 것을 내려놓아야 한다. 욕망을 버리고 완전한 폐허가 되는 일이 그것이다. ‘내 혼이 다른 육체에 머물고 있는 느낌’. 가끔씩 내가 아닌 나를 만나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내 안의 다른 나를 만날 때가 있다. 그럴 때 그마저도 사랑해야 하는 때가 온다. 살다보면 그런 일이 생긴다. 지금의 나보다 훨씬 어렸던 젊은 시인이 이 경지를 알다니!!
점
나는 지금 애인의 왼쪽 엉덩이에 나 있는
푸른 점 하나를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오래 전 내가 당신이었을 때
이 푸른 반점은 내 왼쪽 가슴 밑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지구과학 시간 칠판에 점 하나 쾅, 찍은 선생님이
이것이 우리 은하계다! 하시던 날
솟증이 솟아, 종일토록 꽃밭을 헤맨 기억이 납니다
한 세계를 품고 이곳까지 건너온 고단한 당신,
당신의 푸른 점 속 으로 내가 걸어들어갑니다
푸른 점 속에 까마득한 시간을 날아
다시 하나의 푸른 별을 찾아낸
내 심장이 만년설 위에 얹힙니다
들어오세요 당신, 광대하고도 겨자씨 같은,
당신이 내 속으로 들어올 때 나, 시시로 사나워지는 것은
불 붙은 뼈가 물소리를 내며
자꾸만 몸 밖으로 흘러나오려 하는 것은
푸른 별 깎아지른 벼랑 끝에서
당신과 내가 풀씨 하나로 버티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 혀가 입속에 갇혀 있길 거부한다면」, 2023
--> 사랑하는 이가 있다면 그가 내 세계의 전부가 된다. 그는 나의 전부다. 우주의 한 점인 우리 은하계. 그 은하계에서도 푸른 점이 우리가 사는 세계, 푸른 별이다. 푸른 별 속에서 푸른 점인 나와 당신. 광대하고도 겨자씨 같은 당신과 내가 하나가 되는 영원한 사랑을 꿈꾼다. 깎아지른 벼랑 같은 이 세상에서 당신과 나의 관계는 위태롭고 나약하지만 언젠가 울창한 숲을 이룰 수 있는 풀씨 같은 관계다. 사랑은 작고 약하나 위대한 것이다. 이 세상을 만들어내는 작은 점인 것이다.
헤모글로빈, 알코올, 머리칼
(머리가 깨진 날 기뻤어요
내상보다 외상이 덜 위험하거든요)
보도블록을 깨다 손목 베이자 불타는 머리칼,
바리케이드 위에 살점을 널던 팔십년대
그 격렬한 외상의 날들
자고 일어나면 새살이 돋아 있곤 했지요
추억의 쓴물에 어금니를 담그거나
이적성 표현은 아닙니다
구십년대는 우울한 내상으 날들이어서
걸핏하면 넘어지고 발목을 삐는데
피 한방울 흐르지 않고 멍만 듭니다
세계 인구의 열배도 넘는 세포가 모여 이룬,
육체의 나날은 출혈 없이 평화롭습니다
그런데 어제 머리를 깼지요
만취해 돌아오다 길에 누워버렸습니다
두개골은 멀쩡하고 상처도 크지 않은데
폭포처럼, 피 흘리는 머리칼
친구의 웃옷을 벌겋게, 치마를 물들이고
길바닥에 누워 헤실헤실 웃더랍니다
“아아 상쾌해”하면서 말예요
빨간 다알리아 꽃들이(기억나요?)
뭉텅뭉텅 꿈 밖으로 걸어나갑니다
편지를 썼다가 구겨버렸어요
-내 몸은 나를 보호할 의작 없나봐
방금 당신께 전보를 쳤습니다
-안 보이는 상처가 나를 시들게 해
나는 갑자기 무서워져
다알리아 꽃모갱이를 꺾으며 울었습니다
「내 혀가 입속에 갇혀 있길 거부한다면」, 2023
--> 89학번이었을 시인이 겪었던 90년대의 변화들. 치열했던 80년대를 지나 90년대의 변화에 시인이 답답했을지도 모른다. 80년대 거대담론들의 횡포(?)에 맞서 대안을 찾아내려고 하지만 희망이 보이지 않던 시절이었다. 겉으로는 평온해 보이지만 모순덩어리였던 90년대. 흘러간 운동권들의 구호만 부여잡고 있는 사람들, 포스트모더니즘이라며 세상을 알 수 없는 대상, 모호한 대상으로 만들어 버렸던 말들. 속으로 곪아가는 세상이다. 세상을 바꾸려던 사람들의 무기력한 변화들을 바라보며 화자는 ‘안 보이는 상처가 나를 시들게 해’라며 절규한다. 차라리 머리가 깨지는 게 자신을 기쁘게 한다. 탈중심적 담론들 속에서 여성성 강조과 생태주의적 태도를 갖게 된 것은 이런 모색과 갈등의 결과가 아니었을까.
선운사, 똥낭구
볼혹의 누이 영덕 스님께
선운사에 와
해우소 앞 은행나무 아래 잠시 앉았습니다
이상한 냄새에 내 뒤춤을 자꾸 흘끔거렸는데
갓 여문 은행열매가 피우는 냄새였습니다
애기똥 냄새..... 달짝지근한,
저렇게 대기 속에 하초를 활짝 펼치고
배내똥 같은 열매를 길러낼 수 있다면
당신 생각이 났습니다
폐소공포증을 앓는 당신이 지하서울역에서
황급히 뛰어올라가 파하, 하던
그 계단의 끝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바랑을 지고 플랫폼을 들어서던
당신이 문득 그랬지요... 썩자...
푹 썩어 맑은 물 한국자 우려낼 수 있다면
목어가 울립니다
짭쪼롬하니 곰삭은 목어 소리 속에
온갖 허드렛물 이윽히 발효시키는
선운사 이 똥낭구가 나를 때립니다
「내 혀가 입속에 갇혀 있길 거부한다면」, 2023
--> 시인에게는 출가한 둘째 언니가 있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긴 하지만 시인은 언니에게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언니가 읽었던 책을 읽고 문학 소녀가 되었고 또 시인이 될 수 있었다고 한다. 정신적으로 의지를 많이 했던 사람이다. 시인이 대학에 진학하기 전에 언니가 출가를 했는데 언니의 부재가 참 컸다고 한다. 언니는 선운사에 있다. 선운사의 은행나무가 하체를 펼치고 애기똥 냄새를 풍기며 은행을 떨구자 언니 생각이 난다. 지하철역에서 "썩자"고 했던 기억을 떠올린다. 지하로 들어가 더러워진 몸을 정화시킬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더러워진 몸을 발효시키는 은행나무처럼 썩어야 깨끗해질 수 있을지 모른다. 오염된 인간 세상을 바로잡기 위해 필요한 것은 푹 썩어 맑은 물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