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스라이팅의 단어가 유래된 희곡, <가스등>을 읽었다.
본 희곡에는 총 다섯 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잭 매닝엄: 45세. 훤칠하고 잘생겼다. 수염이 무성하며 평소에도 꽤 잘 차려 입는 남자다. 어찌 보면 권위적이고, 어찌 보면 신비로운 모습이 있다. 희곡에서는 '매닝엄'으로 표기된다.
*벨라 매닝엄: 34세. 원래 뛰어난 미녀였지만, 지금은 초췌하고 창백한 분위기를 띤다. 눈 밑의 짙은 그늘이 꽤 오랫동안 잠들지 못했음을 말해준다.
*러프: 중년의 전직 수사관. 젠틀하지만 집요하고 날카로운 면모를 보인다.
*엘리자베스: 50세. 건강하고 정감 있는 요리사이자 가정부이다.
*낸시: 19세. 조숙하고 예쁘장한 다소 건방진 소녀이다.
첫 부분에서 잭 매닝엄은 자신의 부인 벨라 매닝엄을 매번 물건을 잃어버리고 기억하지 못하는 미친 정신병자 취급을 하며 계속 심리적으로 억압한다. 오늘도 잭은 벨라에게 거실 벽에 있던 그림 어디로 치웠냐, 영수증은 또 어디에 있냐고 자신이 외출하고 돌아올 때까지 영수증을 찾지 못하면 이번엔 진짜 벨라를 정신병원에 가둔다고 한다. 그리고 집에서 일하는 하녀들 엘리자베스와 낸시에게도 벨라의 모친이 정신병원에서 돌아가셨기 때문에 이런 가족력을 잘 알고 있으라며 신신당부한다. 어디에 치운 기억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그런 이야기를 듣다 보니 벨라도 자신이 정신적인 문제가 극심하다고 생각하여 그럼에도 자신을 살펴주는 남편 잭에게 의존한다.
그렇게 잭이 벨라를 두고 외출한 사이에 '러프'라는 수사관이 벨라를 찾아온다. 그리고 벨라에게 20년 전에 있었던 살인사건을 이야기한다.
당시 비싼 루비를 가지고 있던 앨리스 발로 여사가 자신의 집에서 살해되었다. 그때 러프는 앨리스 발로의 먼 친척이었던 ‘시드니 파워’를 탐문했는데, 그는 시드니가 발로 여사를 죽였다고 확신했지만 명확한 증거가 없었다. 그런데 그가 최근에 시드니 파워를 길에서 우연히 보게 된 것이다. 그의 품 안에 안겨 있던 사람은 바로 벨라였다. 즉, 시드니 파워가 잭 매닝엄이었다. 시드니 파워는 발로 여사의 루비를 손에 얻기 위해 발로 여사를 죽이려 했는데, 낌새를 챘던 여사는 루비를 아무도 찾을 수 없는 곳에 숨긴 채 그렇게 세상을 떠났다.
루비를 가지지 못한 살인자 시드니 파워는 ‘잭 매닝엄’으로 신분을 세탁한 후 발로 여사의 집에 벨라와 이사를 온 것이다. 벨라가 집에서 유일하게 접근하지 못한 곳이 위층 다락이었는데, 잭이 외출을 하고 나면 갑자기 다락에서 발소리가 나더니 거실 가스등 불빛이 약해졌다. 누군가 부엌이나 침실 가스등을 켜면 거실 가스등 불빛이 약해지는 것이 당연했는데, 부엌과 침실 불이 켜지지 않았음에도 불빛이 약해지는 것을 벨라는 항상 이상하게 여겨왔다. 그러나 이를 잭에게 말하면, 잭은 또 벨라를 미친 사람으로 취급했다.
이 이야기를 들은 러프는 벨라에게 진실을 말해준다. 벨라에게 외출한다 하고 몰래 위층 다락으로 올라가 발로 여사의 루비를 계속 찾고 있던 것이라고 말이다. 잭은 자신의 범죄가 드러나면 안 되기에 가스등을 의심하는 벨라를 망상증 환자로 매도하여 정신병원에 보낼 계획이었다. 혹은 벨라가 벨라 자신을 미친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해서 정신적으로 더 쇠약하게 하거나.
러프는 잭의 잠긴 책상 서랍을 몰래 따서 안에 있던 물건들을 벨라에게 보여준다. 그러자 희곡 첫 부분에서 잭이 벨라가 잃어버렸다고 말한 그림, 영수증이 발견되고, 벨라 가족이 그녀에게 보냈던 편지 또한 찾게 되었다. 벨라는 정신병자가 아니라 지극히 정상이라는 것이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녀가 가지고 있던 루비는 잭이 발로 여사를 살해한 범인이라는 것이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곧 잭이 집에 돌아올 시간이 되자 러프는 체포를 위해 방 어딘가 숨어있는다. 그리고 잭을 대면하게 되는데, 이때 잭은 자신이 세뇌시킨 벨라의 도움을 받아 탈출을 시도한다. 그러나 벨라는 더 이상 그가 알던 벨라가 아니었다. 그녀는 러프가 잭을 체포하게 도와주고 막이 내린다.
마지막 속이 시원해지는 장면을 제외하고는, 잭한테 100% 세뇌되어 자신의 모습을 잃어가는 벨라가 너무 안타깝고 답답했다. 가스라이팅을 당하는 사람들은 옆에서 아무리 말을 해줘도 듣지 못하니 역시 실체를 알게 되는 충격을 받아서 가스등을 깨야 비로소 나올 수 있는 걸까? 그런 생각에 답답하다가 나도 이렇게 가스라이팅을 당할 수 있다는 생각에 두렵기도 하다. 나쁜 방향으로 신념을 가지는 것만큼 무서운 것은 없다. 가스라이팅이란 말이 일반화된 요즘, 단어가 유래된 이 희곡을 읽으며 잭의 심리적 조종에 벨라의 심리를 간접경험 해보는 것은 우리가 가스라이팅을 예방하는데 도움이 될 듯 하다.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가스등>이 1938년에 쓰여진 거라 시대적 배경으로 어쩔 수는 없지만 45세 잭이 자신 집에서 일하는 19세 소녀 낸시와 불륜 사이었다는 것이다. 극중 초반에 벨라가 낸시는 자신을 항상 비웃는다며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는데, 잭이 벨라가 또 헛소리한다고 무시한다. 여기서 낸시 역할이 굳이 필요했을까? 난 아니라고 본다.
가스라이팅의 단어가 유래된 희곡, <가스등>을 읽었다.
본 희곡에는 총 다섯 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잭 매닝엄: 45세. 훤칠하고 잘생겼다. 수염이 무성하며 평소에도 꽤 잘 차려 입는 남자다. 어찌 보면 권위적이고, 어찌 보면 신비로운 모습이 있다. 희곡에서는 '매닝엄'으로 표기된다.
*벨라 매닝엄: 34세. 원래 뛰어난 미녀였지만, 지금은 초췌하고 창백한 분위기를 띤다. 눈 밑의 짙은 그늘이 꽤 오랫동안 잠들지 못했음을 말해준다.
*러프: 중년의 전직 수사관. 젠틀하지만 집요하고 날카로운 면모를 보인다.
*엘리자베스: 50세. 건강하고 정감 있는 요리사이자 가정부이다.
*낸시: 19세. 조숙하고 예쁘장한 다소 건방진 소녀이다.
첫 부분에서 잭 매닝엄은 자신의 부인 벨라 매닝엄을 매번 물건을 잃어버리고 기억하지 못하는 미친 정신병자 취급을 하며 계속 심리적으로 억압한다. 오늘도 잭은 벨라에게 거실 벽에 있던 그림 어디로 치웠냐, 영수증은 또 어디에 있냐고 자신이 외출하고 돌아올 때까지 영수증을 찾지 못하면 이번엔 진짜 벨라를 정신병원에 가둔다고 한다. 그리고 집에서 일하는 하녀들 엘리자베스와 낸시에게도 벨라의 모친이 정신병원에서 돌아가셨기 때문에 이런 가족력을 잘 알고 있으라며 신신당부한다. 어디에 치운 기억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그런 이야기를 듣다 보니 벨라도 자신이 정신적인 문제가 극심하다고 생각하여 그럼에도 자신을 살펴주는 남편 잭에게 의존한다.
그렇게 잭이 벨라를 두고 외출한 사이에 '러프'라는 수사관이 벨라를 찾아온다. 그리고 벨라에게 20년 전에 있었던 살인사건을 이야기한다.
당시 비싼 루비를 가지고 있던 앨리스 발로 여사가 자신의 집에서 살해되었다. 그때 러프는 앨리스 발로의 먼 친척이었던 ‘시드니 파워’를 탐문했는데, 그는 시드니가 발로 여사를 죽였다고 확신했지만 명확한 증거가 없었다. 그런데 그가 최근에 시드니 파워를 길에서 우연히 보게 된 것이다. 그의 품 안에 안겨 있던 사람은 바로 벨라였다. 즉, 시드니 파워가 잭 매닝엄이었다. 시드니 파워는 발로 여사의 루비를 손에 얻기 위해 발로 여사를 죽이려 했는데, 낌새를 챘던 여사는 루비를 아무도 찾을 수 없는 곳에 숨긴 채 그렇게 세상을 떠났다.
루비를 가지지 못한 살인자 시드니 파워는 ‘잭 매닝엄’으로 신분을 세탁한 후 발로 여사의 집에 벨라와 이사를 온 것이다. 벨라가 집에서 유일하게 접근하지 못한 곳이 위층 다락이었는데, 잭이 외출을 하고 나면 갑자기 다락에서 발소리가 나더니 거실 가스등 불빛이 약해졌다. 누군가 부엌이나 침실 가스등을 켜면 거실 가스등 불빛이 약해지는 것이 당연했는데, 부엌과 침실 불이 켜지지 않았음에도 불빛이 약해지는 것을 벨라는 항상 이상하게 여겨왔다. 그러나 이를 잭에게 말하면, 잭은 또 벨라를 미친 사람으로 취급했다.
이 이야기를 들은 러프는 벨라에게 진실을 말해준다. 벨라에게 외출한다 하고 몰래 위층 다락으로 올라가 발로 여사의 루비를 계속 찾고 있던 것이라고 말이다. 잭은 자신의 범죄가 드러나면 안 되기에 가스등을 의심하는 벨라를 망상증 환자로 매도하여 정신병원에 보낼 계획이었다. 혹은 벨라가 벨라 자신을 미친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해서 정신적으로 더 쇠약하게 하거나.
러프는 잭의 잠긴 책상 서랍을 몰래 따서 안에 있던 물건들을 벨라에게 보여준다. 그러자 희곡 첫 부분에서 잭이 벨라가 잃어버렸다고 말한 그림, 영수증이 발견되고, 벨라 가족이 그녀에게 보냈던 편지 또한 찾게 되었다. 벨라는 정신병자가 아니라 지극히 정상이라는 것이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녀가 가지고 있던 루비는 잭이 발로 여사를 살해한 범인이라는 것이 증명되는 순간이었다.
곧 잭이 집에 돌아올 시간이 되자 러프는 체포를 위해 방 어딘가 숨어있는다. 그리고 잭을 대면하게 되는데, 이때 잭은 자신이 세뇌시킨 벨라의 도움을 받아 탈출을 시도한다. 그러나 벨라는 더 이상 그가 알던 벨라가 아니었다. 그녀는 러프가 잭을 체포하게 도와주고 막이 내린다.
마지막 속이 시원해지는 장면을 제외하고는, 잭한테 100% 세뇌되어 자신의 모습을 잃어가는 벨라가 너무 안타깝고 답답했다. 가스라이팅을 당하는 사람들은 옆에서 아무리 말을 해줘도 듣지 못하니 역시 실체를 알게 되는 충격을 받아서 가스등을 깨야 비로소 나올 수 있는 걸까? 그런 생각에 답답하다가 나도 이렇게 가스라이팅을 당할 수 있다는 생각에 두렵기도 하다. 나쁜 방향으로 신념을 가지는 것만큼 무서운 것은 없다. 가스라이팅이란 말이 일반화된 요즘, 단어가 유래된 이 희곡을 읽으며 잭의 심리적 조종에 벨라의 심리를 간접경험 해보는 것은 우리가 가스라이팅을 예방하는데 도움이 될 듯 하다.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가스등>이 1938년에 쓰여진 거라 시대적 배경으로 어쩔 수는 없지만 45세 잭이 자신 집에서 일하는 19세 소녀 낸시와 불륜 사이었다는 것이다. 극중 초반에 벨라가 낸시는 자신을 항상 비웃는다며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는데, 잭이 벨라가 또 헛소리한다고 무시한다. 여기서 낸시 역할이 굳이 필요했을까? 난 아니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