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길리어드라는 새로운 사회에서 시녀로 살아가는 나(‘오브프레드’라고 불립니다)의 이야기입니다. 출산율의 하락을 위기로 인식한 집단이 쿠데타를 일으켜 세운길리어드는 가부장제와 성경을 근본으로 하는 전체주의 국가로 전 국민을 엄격히 통제합니다. 모든 사람들은 '눈’의 감시 하에 새로운 계급으로 분류되어 살아가는 데 그중 시녀는 엘리트 부부를 위해 자녀를 낳는 것이 전부인 계급으로 이름조차 현재 자신을 소유한 남자들을 따라 불립니다. 나는 권력을 가진 사령관의 가정에 배정되어 아이를 낳는 의무를 부여 받습니다. 일정 기간 안에 그 의무를 이행하지 못하면 콜로니로 끌려가 언제 죽을지 모르는 삶이 기다립니다. 수치스럽지만 죽음의 공포 앞에서 무기력하게 현재의 삶을 받아들입니다. 평범한 사회인이고 한 가정의 아내이자 엄마이며 내 엄마의 딸로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던 과거의 나는 길리어드에서 직업을 잃고 남편과 아이를 잃고 살아갑니다. 살아내고 있는 모든 순간마다 과거의 평범했던 일상과 가족에 대한 소중한 기억을 떠올리며 잊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그러던 중 길리어드를 전복 하고자 하는 조직 ‘메이데이’와 연결되고 불법적인 일에도 연루되며 변화된 일상은 희망과 절망을 동시에 마주하게 합니다. 이 나의 이야기는 먼 미래에 발견된 오래된 녹음테이프에 담긴 내용을 길리어드 시대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발견하여 <시녀이야기>라는 제목의 원고로 옮겨 심포지엄에 소개하는 것으로 마무리됩니다.
이 이야기는 권력자들에 의해 모든 사람이 통제되고 선택과 자유가 허락되지 않는 세상에서 ‘나’를 빼앗긴 여성이 살아간 기록입니다. 수치심과 모욕 속에서도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견디는 삶이라니 상상도 하기 힘듭니다. 여성 서사 소설이기도 하지만 전체주의에 대한 비판 소설이라는 생각입니다. 여성을 ‘출산 서비스’의 도구로 여기는 국가라는 설정부터 놀랍습니다. 소설이 출판된 1980년대 미국은 출산율이 감소하고 도덕성과 가족을 중시하고 낙태와 여성 해방을 반대하는 '근본주의 신앙' 운동이 강하던 시기라고 합니다. 시대 상황을 생각하면 상상해 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출산을 성스럽게 여기면서도 정작 아이를 낳는 여성은 도구로 여기는 국가, 말과 글을 금지하면서도 여자의 생각을 궁금해 하며 불법적인 유흥업소를 운영하는 권력자들의 이중성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국가, 참 무섭습니다.
‘여성을 위해 우리가 만든 더 좋은 세상', '모두가 더 좋을 수는 없는 법’, ‘빼앗은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주었다.’라는 사령관의 말이 기억에 남습니다. 무엇보다 나를 부르는 호칭인 '오브프레드'에서 ‘오브’가 누군가의 소속을 나타내는 것이라는 설정은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생각이 함축된 단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직업을 잃어버리고 경제력을 상실한다는 것이 나로 살아가는 것을 불가능하게 할 수 있음을 알았습니다. 평범한 일상이 주는 행복과 통제에 대해 경각심을 가지고 살아가야 한다는 생각도 다시 해보게 됩니다.
초반에 주인공의 시점이 명확히 구분되지 않아 조금 애매하기도 하지만 중반부터는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설정 자체가 충격적이긴 하지만 우리가 누리는 개인으로의 삶과 자유 의지가 얼마나 소중한 지, 한편으로는 공포라는 무기에 의해 얼마나 쉽게 통제될 수 있는 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열린 결말의 디스토피아 소설로 읽어 보기를 추천합니다.
12월 모임에서 <시녀 이야기> 소개하실 때, YB 친구님들이 반농반진담(?)으로 출산율 고취를 위해 '여성들의 취업을 막아야한다'는 말도 한다고 했을 때 정말 섬뜩했죠.
전 1980년대 미국사회가 레이건시대였어도 낙태 금지 운운하는 보수화가 극대화된 줄은 몰랐는데.... 생각해보니 40년 만에 세계가 비슷하게 회귀하고 있고, 어쩌면 우려만은 아닐 수 있겠다 싶네요.
<작고 느린 책모임> 여섯 번째 책, 여성 서사 소설로 <시녀이야기>를 읽었습니다.
이 책은 길리어드라는 새로운 사회에서 시녀로 살아가는 나(‘오브프레드’라고 불립니다)의 이야기입니다. 출산율의 하락을 위기로 인식한 집단이 쿠데타를 일으켜 세운 길리어드는 가부장제와 성경을 근본으로 하는 전체주의 국가로 전 국민을 엄격히 통제합니다. 모든 사람들은 '눈’의 감시 하에 새로운 계급으로 분류되어 살아가는 데 그중 시녀는 엘리트 부부를 위해 자녀를 낳는 것이 전부인 계급으로 이름조차 현재 자신을 소유한 남자들을 따라 불립니다. 나는 권력을 가진 사령관의 가정에 배정되어 아이를 낳는 의무를 부여 받습니다. 일정 기간 안에 그 의무를 이행하지 못하면 콜로니로 끌려가 언제 죽을지 모르는 삶이 기다립니다. 수치스럽지만 죽음의 공포 앞에서 무기력하게 현재의 삶을 받아들입니다. 평범한 사회인이고 한 가정의 아내이자 엄마이며 내 엄마의 딸로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던 과거의 나는 길리어드에서 직업을 잃고 남편과 아이를 잃고 살아갑니다. 살아내고 있는 모든 순간마다 과거의 평범했던 일상과 가족에 대한 소중한 기억을 떠올리며 잊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그러던 중 길리어드를 전복 하고자 하는 조직 ‘메이데이’와 연결되고 불법적인 일에도 연루되며 변화된 일상은 희망과 절망을 동시에 마주하게 합니다. 이 나의 이야기는 먼 미래에 발견된 오래된 녹음테이프에 담긴 내용을 길리어드 시대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발견하여 <시녀이야기>라는 제목의 원고로 옮겨 심포지엄에 소개하는 것으로 마무리됩니다.
이 이야기는 권력자들에 의해 모든 사람이 통제되고 선택과 자유가 허락되지 않는 세상에서 ‘나’를 빼앗긴 여성이 살아간 기록입니다. 수치심과 모욕 속에서도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견디는 삶이라니 상상도 하기 힘듭니다. 여성 서사 소설이기도 하지만 전체주의에 대한 비판 소설이라는 생각입니다. 여성을 ‘출산 서비스’의 도구로 여기는 국가라는 설정부터 놀랍습니다. 소설이 출판된 1980년대 미국은 출산율이 감소하고 도덕성과 가족을 중시하고 낙태와 여성 해방을 반대하는 '근본주의 신앙' 운동이 강하던 시기라고 합니다. 시대 상황을 생각하면 상상해 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출산을 성스럽게 여기면서도 정작 아이를 낳는 여성은 도구로 여기는 국가, 말과 글을 금지하면서도 여자의 생각을 궁금해 하며 불법적인 유흥업소를 운영하는 권력자들의 이중성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국가, 참 무섭습니다.
‘여성을 위해 우리가 만든 더 좋은 세상', '모두가 더 좋을 수는 없는 법’, ‘빼앗은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주었다.’라는 사령관의 말이 기억에 남습니다. 무엇보다 나를 부르는 호칭인 '오브프레드'에서 ‘오브’가 누군가의 소속을 나타내는 것이라는 설정은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생각이 함축된 단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직업을 잃어버리고 경제력을 상실한다는 것이 나로 살아가는 것을 불가능하게 할 수 있음을 알았습니다. 평범한 일상이 주는 행복과 통제에 대해 경각심을 가지고 살아가야 한다는 생각도 다시 해보게 됩니다.
초반에 주인공의 시점이 명확히 구분되지 않아 조금 애매하기도 하지만 중반부터는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설정 자체가 충격적이긴 하지만 우리가 누리는 개인으로의 삶과 자유 의지가 얼마나 소중한 지, 한편으로는 공포라는 무기에 의해 얼마나 쉽게 통제될 수 있는 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열린 결말의 디스토피아 소설로 읽어 보기를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