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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멍가게 이야기> 박혜진, 심우장 지음 / 책과함께 출판

길위의집
2024-03-26
조회수 269


<작고 느린 책모임> 9번째 책입니다. 

지난 1월 모임 때 방문해주셨던 《책과함께》 이정우 주간님께서 선물해주신 책입니다. (선물 정말 감사합니다😁)

제법 두꺼운 책이지만 표지부터 뭔가 많은 이야기가 느껴졌습니다.

 

이 책은 골목상권을 대표하던 구멍가게가 이제는 찾아보기 힘들 만큼 우리의 일상 속에서 사라져가고 있는 현실에서 구멍가게가 짊어져 온 역할을 되짚어 보고자 박혜진, 심우장 두 작가님이 전라남도의 구멍가게들을 약 2년 간 직접 찾아가 보고 기록한 구멍가게 답사보고서입니다. 

경제적 관점에서 변화하는 유통환경에서 피해를 보고 몰락하는 대표주자로서의 구멍가게, 인문학적 관점으로는 따뜻한 정과 소소하고 행복한 추억이 담긴 골목의 구멍가게라는 두 가지 관점에서 1부 구멍가게는 어디에 있을까, 2부 구멍가게가 걸어온 길, 3부 구멍가게 들여다보기, 4부 구멍가게, 치열한 삶의 현장, 총 4부로 나뉘어 기록하고 있습니다.

 

스물두 개의 시와 군에 위치한 백여 곳의 구멍가게를 찾아 주인과 주민을 만났는데 비슷하면서도 다른 사연이 담겨 있습니다. 

대부분의 구멍가게는 마을의 입구에 자리하고 있고, 외지에서 흘러들어와 생계를 위해 시작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규모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은행, 우체국, 약국, 문구점, 술집, 버스터미널 등의 중요한 역할도 겸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역할을 통해 외지인이 마을의 구심점이자 관계의 중심이었다는 사실은 신기합니다.

 

구멍가게에서 취급하는 다양한 업무와 제품에 대해서도 소개하고 있습니다. 

구멍가게에서 시작한 공중전화(이제는 정말 찾아보기 어렵죠), 시내버스 표로 사용되었던 토큰과 회수권, 문방구의 다양한 장난감과 불량식품들, 우리나라 담배의 역사, 막걸리와 소주 용기의 변천사 등은 신기합니다. 

특히 공과금을 받아준다던가 현금을 융통해주는 은행의 역할까지 하다니 구멍가게가 아니라 필요한 것을 모두 해결해주는 만능가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물트럭이 돌아다니며 이동식 구멍가게의 역할을 하기도 하는데 영광군 묘량면에서는 공동조합의 형태로 <동락점빵>이라는 이동식슈퍼를 마련하여 고령의 주민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으며 구멍가게가 사라진 곳에서는 보편적인 풍경이라고 합니다.

 

장성 북하면의 <백양슈퍼편의점>, <고바우마트>, <현대편의점>은 역사적 상황에 따라 구멍가게는 다양한 이름을 갖게 되었다는 것을 구멍가게 간판을 통해 보여줍니다. 

구판장, 연쇄점, 수퍼마케트, 슈퍼마켓, 마트, 편의점, 대형할인유통점(참 경쟁자들도 다양하네요😭)과의 경쟁과 트렌드에 뒤처지지 않기 위한 구멍가게의 안간힘이 느껴집니다.

 

가게 내부를 설명하는 내용에서는 소주 홍보 포스터로 도배 하기( 해남 <해성슈퍼> ), 벽을 외상장부로 사용하기( 장흥 <하꼬방가게> ), 다양한 진열장들과 술탁자들( 해남 <초호리슈퍼>와 나주<와룡수퍼>의 케이블드럼을 이용한 술탁자, 무안 <해광상회>의 ‘바’ 형태의 술탁자 ), 의자들을 사진으로 볼 수 있는데 옛날박물관을 만들어 전시를 해도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구멍가게에서는 어떤 물건이든 정해진 용도대로 쓰이는 것이 아니라 그때그때 상황과 필요에 따라 기발한 아이디어와 만나 새로운 목적으로 재탄생하는 경우가 많다는 설명이 이해되었습니다.

술을 팔며 겪은 괴로움으로 다시 태어나면 절대로 안 한다는 이야기, 외상거래로 속상해 하다 포기하고 장부를 태워버리기까지 했던 이야기는 마음이 아팠습니다. 

5살 어린이도 외상거래에 익숙하다는 신문기사나 졸업식날 문구점 주인이 찾아와 부모에게 외상값을 요구하고 백화점도 외상을 했었다니 참 놀랍습니다.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본 기분입니다. 

처음 접해보는 구멍가게의 역사와 감당해온 수 많은 역할들, 그 속에서 세월을 아실아실 보내신 어르신들, 점점 어려워지고 있지만 쉽게 그만두기 어려운 사정들이 안타깝습니다. 

공동체적 결속에 의해 합리적인 소비가 이루어지던 구멍가게 시절이 지나고 욕망의 소비를 유도하는 편의점이 골목을 채운 요즘 출간 준비를 하면서 다시 접하게 된 구멍가게는 사라지기도 하고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기도 하다고 작가님은 전합니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서 새로운 것이 등장하는 만큼 사라져가는 것들도 많은 데 특히 골목에서 사람들을 연결해주던 구멍가게의 소멸은 그만큼 사람이 사라졌음을 알려주는 지표라는 생각이 들어 더 마음이 무겁기도 합니다. 

문명과 문화와 신비가 있는 점방이라는 작가님의 표현처럼 구멍가게의 역사를 통해 우리나라의 문화와 사람들을 볼 수 있는 의미있는 내용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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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a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