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아이>에서 언급되었던 책이라서 간만에 다시 도스토옙스키 책을 들었다. ’완벽한 아이‘로 길러지던 ’모드‘는 <지하로부터의 수기>를 읽고 여기 나오는 ’지하 인간‘이 자기 아버지를 닮았다고 생각했다.
“ 내 마음을 그토록 강하게 흔든 그 주인공은 바로 내 아버지의 모습이다. 둘은 똑같이 다른 사람들을, 세상을, 관습을 밀어낸다. 똑같이 광기 상태를, 거창한 말들을, 가혹함을 좋아한다. 어쩌면 아버지 역시 굳은 외관 아래 아직까지 벌어져 있는 상처가 있지 않을까? 아버지가 말하고 생각하는 것, 스스로 행하고 어머니와 나에게도 강요하는 것, 그 모두가, 아버지가 우리를 가두어놓은 이 세상 전부가 사실은 탁월한 통찰력이 아니라 은밀한 고통에서 나온 게 아닐까?___완벽한 아이 | 모드 쥘리앵, 윤진 저 ”
짧은 책이지만 역시나 한 번 읽어서는 무슨 소린지 맥락을 잡기가 힘들었다는. 도스토옙스키는 보수적인 생각을 가진 작가여서 이 작품을 통해 당시에 유행하던 급진적인 이데올로기, 맹목적인 합리주의와 공리주의, 그에 기초한 낙관적이지만 동시에 기만적인 역사관들에 대한 비판을 했다고 한다.
2X2=4라는 수식처럼 당연하고 합리적으로 보이는 이론들이 때로는 고통 속에서 담긴 쾌락을 탐닉하기도 하는 설명이 불가능한 인간의 본성을 설명하기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 이야기 속 화자 ‘지하 인간’의 입을 빌린 도스토옙스키의 주장이다. 지하 인간은 결국 자신의 추한 면까지 끄집어올려 솔직하게 드러낼 수 있는가,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진정으로 추구해야 할 삶의 목표를 따를 용기가 있는가를 묻는 작가의 대리인이라 할 수 있겠다.
‘지하 인간’은 자신은 누구보다 똑똑하다고 자부하지만 실제로는 새로운 시대의 철학도 이념도 모두 경멸하고, 나아가 자기 자신을 가장 경멸하는 지식인이다. 그는 누구보다 찌질하고 이기적이며 자존심도 강하다. 소설같은 책에서 본 대사나 인물들의 행동과 대사를 현실에서 구현하며 자신만의 세계에서 만족을 느끼지만, 현실 속의 자신은 가난에 찌들어 체면차리기도 힘들어 하인에게 지불할 돈 조차 밀리는 실정이다.
“나는 정상적인 사람이 배알이 꼴릴 만큼 부럽다고 말했지만, 그가 지금 내 눈에 보이는 상태에 있는 한 그런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은 손톱만큼도 없다.”
‘구린내 나고 추악한 지하’에서 이십 년 동안이나 싸늘한 독기를 품은 채 살아온 한 남자. 그는 젊은 시절 하급 관리로 사회생활을 했지만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으며 자신을 무시하는 이들에게 온갖 방법으로 복수할 궁리를 한다. 그러나 그뿐, 실제로는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는다. 그렇게 이십 년간 아무도 만나지 않고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채 지하에 틀어박혀 있었다.
그리고 그는 이십 대에 겪었던 사건 두 가지를 들려준다. 하나는 초대받지도 않은 동창생들 모임에 굳이 참석해 그들에게 무시를 당한 일이다.
다른 하나는 유곽에서 만난 매춘부 리자에게 온갖 잔인한 말을 늘어놓았다가 그녀가 집으로 찾아올까 노심초사했던 일이다. 그는 조롱과 경멸을 자초하고서 그들을 증오하다 결국에는 스스로를 괴롭히고 저주하는 지경에까지 이른다.
________
실상 우리는 잘 알지도 못한다, 지금 대체 어디에 살아 있는 것이 있는가, 그것은 대체 무엇이며 또 그 이름은 무엇인가? 우리를 단 한 권의 책도 없이 홀로 남겨 둬 보라, 그럼 우리는 당장에 갈팡질팡하고 어리둥절해질 것이며, 어디에 합류해야 하고 무엇에 따라야 할지, 무엇을 사랑해야 하고 무엇을 증오해야 할지, 무엇을 존경해야 하고 무엇을 경멸해야 할지 통 모를 것이다. 심지어 우리가 인간이라는 것조차, 자신만의 진짜 육체와 피를 가진 인간이라는 것조차 부담스러워한다. 이것이 너무 부끄럽고 치욕스러운 나머지, 지금까지는 존재한 적도 없는 무슨 보편 인간이 되려고 안달복달한다. 우리는 사산아, 더욱이 이미 오래전부터 살아 있는 것이 아닌 아버지에게서 태어나는 존재이며, 또 이것이 우리는 점점 더 마음에 든다. 취향에 맞는 모양이다. 조만간 우리는 어떻게든 관념으로부터 태어날 궁리를 할 것이다. 하지만 됐다. 더 이상 ‘지하에서’ 이렇게 쓰고 싶지 않다…….
지하로부터의 수기 |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예프스키, 김연경 저
#지하로부터의수기 #표도르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예프스키 #민음사 #도스토엡스키 #독서 #책읽기 #북스타그램









<완벽한 아이>에서 언급되었던 책이라서 간만에 다시 도스토옙스키 책을 들었다. ’완벽한 아이‘로 길러지던 ’모드‘는 <지하로부터의 수기>를 읽고 여기 나오는 ’지하 인간‘이 자기 아버지를 닮았다고 생각했다.
“ 내 마음을 그토록 강하게 흔든 그 주인공은 바로 내 아버지의 모습이다. 둘은 똑같이 다른 사람들을, 세상을, 관습을 밀어낸다. 똑같이 광기 상태를, 거창한 말들을, 가혹함을 좋아한다. 어쩌면 아버지 역시 굳은 외관 아래 아직까지 벌어져 있는 상처가 있지 않을까? 아버지가 말하고 생각하는 것, 스스로 행하고 어머니와 나에게도 강요하는 것, 그 모두가, 아버지가 우리를 가두어놓은 이 세상 전부가 사실은 탁월한 통찰력이 아니라 은밀한 고통에서 나온 게 아닐까?___완벽한 아이 | 모드 쥘리앵, 윤진 저 ”
짧은 책이지만 역시나 한 번 읽어서는 무슨 소린지 맥락을 잡기가 힘들었다는. 도스토옙스키는 보수적인 생각을 가진 작가여서 이 작품을 통해 당시에 유행하던 급진적인 이데올로기, 맹목적인 합리주의와 공리주의, 그에 기초한 낙관적이지만 동시에 기만적인 역사관들에 대한 비판을 했다고 한다.
2X2=4라는 수식처럼 당연하고 합리적으로 보이는 이론들이 때로는 고통 속에서 담긴 쾌락을 탐닉하기도 하는 설명이 불가능한 인간의 본성을 설명하기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 이야기 속 화자 ‘지하 인간’의 입을 빌린 도스토옙스키의 주장이다. 지하 인간은 결국 자신의 추한 면까지 끄집어올려 솔직하게 드러낼 수 있는가,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진정으로 추구해야 할 삶의 목표를 따를 용기가 있는가를 묻는 작가의 대리인이라 할 수 있겠다.
‘지하 인간’은 자신은 누구보다 똑똑하다고 자부하지만 실제로는 새로운 시대의 철학도 이념도 모두 경멸하고, 나아가 자기 자신을 가장 경멸하는 지식인이다. 그는 누구보다 찌질하고 이기적이며 자존심도 강하다. 소설같은 책에서 본 대사나 인물들의 행동과 대사를 현실에서 구현하며 자신만의 세계에서 만족을 느끼지만, 현실 속의 자신은 가난에 찌들어 체면차리기도 힘들어 하인에게 지불할 돈 조차 밀리는 실정이다.
“나는 정상적인 사람이 배알이 꼴릴 만큼 부럽다고 말했지만, 그가 지금 내 눈에 보이는 상태에 있는 한 그런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은 손톱만큼도 없다.”
‘구린내 나고 추악한 지하’에서 이십 년 동안이나 싸늘한 독기를 품은 채 살아온 한 남자. 그는 젊은 시절 하급 관리로 사회생활을 했지만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으며 자신을 무시하는 이들에게 온갖 방법으로 복수할 궁리를 한다. 그러나 그뿐, 실제로는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는다. 그렇게 이십 년간 아무도 만나지 않고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채 지하에 틀어박혀 있었다.
그리고 그는 이십 대에 겪었던 사건 두 가지를 들려준다. 하나는 초대받지도 않은 동창생들 모임에 굳이 참석해 그들에게 무시를 당한 일이다.
다른 하나는 유곽에서 만난 매춘부 리자에게 온갖 잔인한 말을 늘어놓았다가 그녀가 집으로 찾아올까 노심초사했던 일이다. 그는 조롱과 경멸을 자초하고서 그들을 증오하다 결국에는 스스로를 괴롭히고 저주하는 지경에까지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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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상 우리는 잘 알지도 못한다, 지금 대체 어디에 살아 있는 것이 있는가, 그것은 대체 무엇이며 또 그 이름은 무엇인가? 우리를 단 한 권의 책도 없이 홀로 남겨 둬 보라, 그럼 우리는 당장에 갈팡질팡하고 어리둥절해질 것이며, 어디에 합류해야 하고 무엇에 따라야 할지, 무엇을 사랑해야 하고 무엇을 증오해야 할지, 무엇을 존경해야 하고 무엇을 경멸해야 할지 통 모를 것이다. 심지어 우리가 인간이라는 것조차, 자신만의 진짜 육체와 피를 가진 인간이라는 것조차 부담스러워한다. 이것이 너무 부끄럽고 치욕스러운 나머지, 지금까지는 존재한 적도 없는 무슨 보편 인간이 되려고 안달복달한다. 우리는 사산아, 더욱이 이미 오래전부터 살아 있는 것이 아닌 아버지에게서 태어나는 존재이며, 또 이것이 우리는 점점 더 마음에 든다. 취향에 맞는 모양이다. 조만간 우리는 어떻게든 관념으로부터 태어날 궁리를 할 것이다. 하지만 됐다. 더 이상 ‘지하에서’ 이렇게 쓰고 싶지 않다…….
지하로부터의 수기 | 표도르 미하일로비치 도스토예프스키, 김연경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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