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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다시 외로워질 것이다>, 공지영 지음, 해냄.

'퀸캣' aka 양산퀸캣 찡찡이
2024-03-13
조회수 280

  공지영 작가의 글을 읽는 것은 참 오래간만이다. <무소의 뿔처럼 가라>라는 공 작가의 세번 째 소설이 베스트셀러가 되던 시기, 여성주의 소설이라는 생각에 읽고, 그 뒤 소설집과 장편소설 두 권 정도를 더 읽은 뒤니까 십여 년 만. 

  이후 공 작가를 뵙게 되는 건 주로 신문이나 포털 사회면에서였다. 그 분께 영광스러운 순간이든 그렇지 않은 순간이든 공통적으로 공 작가는 늘 '뜨거운' 사람으로 느껴졌다. 더 정확하게는, 그 '뜨거움'을 스스로도 어찌 하지 못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일말의 불안감이 느껴지는 사람. 

  그 온도와 감각은 내게 그닥 친밀감이나 호감을 주지 않았다. 오히려 반대라면 반대였다. 내 최근 독서가 대부분 그렇지만, 아마 책방지기 님의 추천이 아니었다면 쉬이 이 책을 고르지는 않았을 것 같다.


  작가의 특유 필력은 상당히 흡입력 강하다. 약해진 내 집중력으로도 쭉쭉, 앉은 자리에서 글을 다 읽게끔 만들었다. 다 읽고 난 첫 소감은,  드라마 대사처럼, '작가님, 편안함에 이르셨나요?'

 

  십여 년간의 글은 읽지 않았기에  내가 청취했던 작가의 고됨은 실시간으로 주고 받아지는 SNS에서도 가장 가쉽화 되기 쉬운 단편이 신문지상까지 올라왔을 때였다. 그래서 작가가 겪어온 고통과 불화를 속속들이 헤아릴 수는 없지만 P. 23 "소 떼에게 쫒기듯 불행에 쯫겨 다녔다."는 지난 시간을 중간 중간 회고하거나 자책하시는 대목은 나도 안타까웠다. 


P. 74 "나는 내가 원하는 것만 믿었다."

P. 76 "가난이나 사랑, 정의, 신앙 같은 것도 집착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내 마음은 많이 아팠다. 그리고 지금도 그건 아프다."

P. 184 "내가 믿고 노력하며 지키려고 애쓴 인생이 헛된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죽음 직전에서야 들면 인간은 얼마나 마음이 아플까."


 '우리가 믿고 지지하는 게 진짜이고 대의다. 그리고 우리만이 선택 받았다'고 말에 대한 회의감이 깊어진 요즘이다. 

 왜? 나는 그 신념을 반대할 생각은 없지만, '우리의 믿음만이 절대적 선택지니까 상식 있다면 입을 다물어라'라는 강요나 선 긋기는 익숙해서 화가 나기 때문이다. 나 또한 '그게 맹목이다. 있는 그대로 현상을 보는 대신 왜 보고 싶은 것만 보는가? 이미 맹목으로 오판한 적 있지 않은가'라고 맞받아치고픈 강한 내 신념에 차 있기 때문이다.

 안다, 내 신념 또한 맹목일 수 있고 오판일 수 있음을. 그렇지만 동시에 여전히 깨우치지 않았기에 치밀어오르는 신 소리가 계속 입안에 머물겠지. 작가 역시 수십년 전의 많이 아프셨을 선택들과 그 후 긴 시간들을 되새김질하고 소화해내시느라 P. 218 "침묵이 가져올 여백을 감당하는 여유"를 강제하듯 몇 년간을 가지셔야했나보다.


P. 189 "약간 깨달은 것 가지고는 삶은 바뀌지 않는다. 대게는 약간 더 괴로워질 뿐이다. 삶은 존재를 쪼개는 듯한 고통 끝에서야 바뀐다. 결국 이렇게, 이러다 죽는구나 하는 고통 말이다. 변화는 그렇게나 어렵다.가끔은 존재를 찢는 듯한 고통을 겪고도 바뀌지 않는 사람이 있는데, 대신 고통을 거부하려고 헛되이 싸우던 그가 망가지는 것을 나는 여러 번 보았다."


  작가는 전쟁과 폭력과 성스러움이 공존하는 성지에서 성 스테파노, 성 프란치스코, 예수님 그리고 성 샤를 드 푸코의 발자취를 따라간다. 생전 사랑 받았던 기록(그 분들에게 그런 순간도 있으셨지만) 대신 오욕과 배신 당한 순간들에 깊이 공감하며.

 나는 가톨릭 신자가 아니지만 늘 마음 한조각을 신께 드리기는 한다. 성 프란치스코께서 생전 청빈을 강조했던 자신의 수도원이 재산 축적하는 과정을 지켜보셨어야했는지 처음 알았고, 샤를 드 푸코라는 성인이 계심은 아예 몰랐다. 십자가의 길을 걸어간 예수님의 삶은 얼핏 알고 공경했지만, 일가친척들에게 광인 취급 받았기에 어머니까지 포함한 가족들을 '내 어머니와 형제 자매가 아니다'라고 내치면서 당신의 사명을 다 하신 줄은 몰랐다.


  아무리 존재를 쪼개는 고통을 겪고, 어렵게 어렵게 변화를 받아들인들, 외부 세계는 여전히 예고하지 않고 외력을 가한다. 내면의 변화가 외부와 조응하지만은 않는다. 성지순례에서 돌아온 다음 날, 반려견 동백이의 전 주인에게서 느닷없이 폭력과 모욕을 당하는 가운데,  작가는 갈릴래아라는 현실과 맞닦뜨린다.

 우연히 책 읽기 직전, 호흡이 긴 연작 SF 소설 감상문을 읽다가 <토지>를 떠올렸는데 작가는 마지막 장에서 고 박경리 작가의 삶을 떠올리며 회고한다. 반복되는 가족들의 상실, 청상과부로써 경제적 어려움, 때로는 사회적 모욕과 수치를 견디며 손바느질 하듯 용맹정진하듯 고립 속에서 자신을 일구고 지켜나간 삶에서 자신을  떠올리듯.


 책방지기 님께서는 평화를 기원하시며 전보다 깊어지고 단단해진 작가를 응원하셨다. 내게는 이미 단단해지고 드디어 알게 되었다기보다, 여전히 순례길을 한 발 한 발 걸어가는 작가의 뒷모습이 더 짙게 느껴졌다. 진심으로 공지영 작가님의 편안함과, 내 자신의 편안함을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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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a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