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토끼를 사랑한다. 그것도 몹시.
대부분의 어린이들이 순하고 귀여운 외모, 보드라운 털과 솜방울 같은 꼬리까지 토끼라는 동물을 좋아하기 쉽다. 내 인생 여덟 글자에 있다는 세 개의 卯 때문일까. 토끼 머리핀, 토끼 인형.... 어릴 때부터 내 토끼 집착은 또래 아이보다 더 컸던 것 같다.
지금은 다 하늘로 떠나보냈지만 3마리 토끼들을 키웠다. 그 중 첫 토끼가 13살로 가장 오래 살았고, 보호소에서 데려온 마지막 토끼는 치료법 없는 병으로 2살 어린 나이에 고통스레 떠났다. 첫 토끼가 죽은 직후, 이미 한참 어른인데도 집착이 다시 도졌다. 토끼문양이 들어간 것은 그릇이든 옷이든 공책이든 막 사들였던 것 같다. 그 집착은 지금까지 지속 중이다(사실 고양이, 새, 꽃, 동식물이면 다 집착한다!).
첫 토끼가 중년, 장년을 거쳐 양눈에 백내장이 오고 털이 빠지고 말 그대로 호호 할머니처럼 늙어갈 때, 내가 많이 했던 상상은 '만약 토끼 크기가 지금보다 훨씬 크다면?' 이었다.
토끼가 풍산개만하다면, 호랑이 만하다면....기린처럼 키가 크고, 코끼리처럼 덩치 크다면, 눈망울이 메론만큼 크고 앞니가 기왓장만해서 껑충 껑충 뛰어다닌다면 어떨까. 귀여운 게 아니라 무섭고, 그 큰 눈으로 쳐다만봐도 압도 당하겠지? 뼈마디 마저 가늘고 가벼워서, 안아들면 천상 먹이사슬 하위에 있는 초식동물이라는 게 확 와닿는 이 동물이 갑자기 확 커진다면. 동물들 사이에서도 아무도 얕보지 않을 텐데. 사람들도 늙어가고 병들어 죽어가는 토끼를 바라보는 내 고독을 이해하기 어려워하지 않을텐데.
풍문으로만 들었던 이 소설을 '사게 된 것'도 초판 복원이라는 토끼 표지 덕분이었다. 소설집은 보통의 단편보다 짧게 느껴지는 10개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재미있다. 아니 내 구미에 잘 맞는다.
작가는 P.355 "책 전체를 통해서 전달하려는 메시지나 교훈은 없다."며 자신의 소설은 대중문학인 환상호러 장르이므로 즐겁게 읽어달라고 부탁하지만, 웬걸!
각기 다른 상황과 맥락에서 썼다는 이야기들 대부분은,
"약한 것, 보잘 것 없는 것, 잊혀진 것들의 봉기"
아닌가. 굳이 '이야기'라고 함은 걔 중 <흉터>, <바람과 모래의 지배자>처럼 동화, 우화 같은 단편도 있어서다.
생각해 보면 마을을 습격하는 거대 지네나 뱀을 달래기 위해 마을 처녀를 바쳐야하는 전래동화나 자신의 욕망을 포기하지 않았다가 벌로 발이 잘릴 때까지 춤춰야하는 소녀가 나오는 안데르센 동화도 어린이 용으로 읽고 자라지 않았나. 그에 비하면 작가의 서사는 우아하고 차분한 인과응보, 복수인데.
책 표제작인 <저주토끼>는 내가 최근 세상에 대해 느끼는 감각을 어슴프레 느껴온 토끼라는 물성-조용한 복수자- 으로 전복한다는 점에서 묘하게 짜릿하다.
P. 36 "아침에 일어나면 나는 분노와 슬픔과 원한이 넘치는 세상에서 타인에게 고통과 불행과 죽음을 기원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야할 것이다. 돈과 권력이 정의이고 폭력이 합리이자 상식인 사회에서 상처 입고 짓밟힌 사람들이 막다른 골목에 몰렸을 때 찾아오는 마지막 해결책이 나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상은 그 어느 때보다 끔찍하고 비참한 곳이 되어가고 있으며, 그 덕에 사업은 그 어느 때보다 더 호황이다."
개인적으로 모성/ 여성성을 권력의 괸계로 그리고 '결핍'에 대한 비틀기로 표현된 <머리>, <몸하다>가 제일 흥미로웠다. 여성이라서 그려낼 수 있는 상상에 독자인 나도 여성이라서 공감이 극세사처럼 된다. 남성 독자라면 어떻게 느낄까도궁금하다.
특히 <머리>는 영화로 변주해서 찍는다면.... 진짜 무섭고도 재미있지 않을까. 자고로 진정한 호러, 진정한 공포는 (당연히)모성-여성성이 폭발될 때 생긴다. 쉘리의 <프랑켄슈타인>이 그렇고, 영화 <에일리언>이 그렇다. <파묘> 속 일본 오니도 화림의 몸주신 할머니 앞에서 꼼짝 못하지 않는가!
정보라 작가가 좀 길게, 말 그대로 고딕소설을 쓴다면 참 좋겠다 싶은데 마침 신작 소설을 출간하셨나보다. 고딕은 아닌 것 같지만.
작가의 신작 제목을 영감 얻어, 분노와 슬픔과 원한이 넘치는 현 세계에 상처 입고 짓밟힌 여리고 보잘것 없는 것들에게 감히 명령해 본다. 이미 호주나 제주도 어느 섬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토끼 사태'는 생태계를 걱정하는 환경론자 시각에서 심각하게 우려되지만 토끼계의 입장에서는 이처럼 통렬한 승리가 어디 있을까.
"전 지구의 토끼들은 더 이상 참지 말고 봉기하라."
https://naver.me/FfAn4qFU
나는 토끼를 사랑한다. 그것도 몹시.
대부분의 어린이들이 순하고 귀여운 외모, 보드라운 털과 솜방울 같은 꼬리까지 토끼라는 동물을 좋아하기 쉽다. 내 인생 여덟 글자에 있다는 세 개의 卯 때문일까. 토끼 머리핀, 토끼 인형.... 어릴 때부터 내 토끼 집착은 또래 아이보다 더 컸던 것 같다.
지금은 다 하늘로 떠나보냈지만 3마리 토끼들을 키웠다. 그 중 첫 토끼가 13살로 가장 오래 살았고, 보호소에서 데려온 마지막 토끼는 치료법 없는 병으로 2살 어린 나이에 고통스레 떠났다. 첫 토끼가 죽은 직후, 이미 한참 어른인데도 집착이 다시 도졌다. 토끼문양이 들어간 것은 그릇이든 옷이든 공책이든 막 사들였던 것 같다. 그 집착은 지금까지 지속 중이다(
사실 고양이, 새, 꽃, 동식물이면 다 집착한다!).첫 토끼가 중년, 장년을 거쳐 양눈에 백내장이 오고 털이 빠지고 말 그대로 호호 할머니처럼 늙어갈 때, 내가 많이 했던 상상은 '만약 토끼 크기가 지금보다 훨씬 크다면?' 이었다.
토끼가 풍산개만하다면, 호랑이 만하다면....기린처럼 키가 크고, 코끼리처럼 덩치 크다면, 눈망울이 메론만큼 크고 앞니가 기왓장만해서 껑충 껑충 뛰어다닌다면 어떨까. 귀여운 게 아니라 무섭고, 그 큰 눈으로 쳐다만봐도 압도 당하겠지? 뼈마디 마저 가늘고 가벼워서, 안아들면 천상 먹이사슬 하위에 있는 초식동물이라는 게 확 와닿는 이 동물이 갑자기 확 커진다면. 동물들 사이에서도 아무도 얕보지 않을 텐데. 사람들도 늙어가고 병들어 죽어가는 토끼를 바라보는 내 고독을 이해하기 어려워하지 않을텐데.
풍문으로만 들었던 이 소설을 '사게 된 것'도 초판 복원이라는 토끼 표지 덕분이었다. 소설집은 보통의 단편보다 짧게 느껴지는 10개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재미있다. 아니 내 구미에 잘 맞는다.
작가는 P.355 "책 전체를 통해서 전달하려는 메시지나 교훈은 없다."며 자신의 소설은 대중문학인 환상호러 장르이므로 즐겁게 읽어달라고 부탁하지만, 웬걸!
각기 다른 상황과 맥락에서 썼다는 이야기들 대부분은,
"약한 것, 보잘 것 없는 것, 잊혀진 것들의 봉기"
아닌가. 굳이 '이야기'라고 함은 걔 중 <흉터>, <바람과 모래의 지배자>처럼 동화, 우화 같은 단편도 있어서다.
생각해 보면 마을을 습격하는 거대 지네나 뱀을 달래기 위해 마을 처녀를 바쳐야하는 전래동화나 자신의 욕망을 포기하지 않았다가 벌로 발이 잘릴 때까지 춤춰야하는 소녀가 나오는 안데르센 동화도 어린이 용으로 읽고 자라지 않았나. 그에 비하면 작가의 서사는 우아하고 차분한 인과응보, 복수인데.
책 표제작인 <저주토끼>는 내가 최근 세상에 대해 느끼는 감각을 어슴프레 느껴온 토끼라는 물성-조용한 복수자- 으로 전복한다는 점에서 묘하게 짜릿하다.
P. 36 "아침에 일어나면 나는 분노와 슬픔과 원한이 넘치는 세상에서 타인에게 고통과 불행과 죽음을 기원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야할 것이다. 돈과 권력이 정의이고 폭력이 합리이자 상식인 사회에서 상처 입고 짓밟힌 사람들이 막다른 골목에 몰렸을 때 찾아오는 마지막 해결책이 나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세상은 그 어느 때보다 끔찍하고 비참한 곳이 되어가고 있으며, 그 덕에 사업은 그 어느 때보다 더 호황이다."
개인적으로 모성/ 여성성을 권력의 괸계로 그리고 '결핍'에 대한 비틀기로 표현된 <머리>, <몸하다>가 제일 흥미로웠다. 여성이라서 그려낼 수 있는 상상에 독자인 나도 여성이라서 공감이 극세사처럼 된다. 남성 독자라면 어떻게 느낄까도궁금하다.
특히 <머리>는 영화로 변주해서 찍는다면.... 진짜 무섭고도 재미있지 않을까. 자고로 진정한 호러, 진정한 공포는 (당연히)모성-여성성이 폭발될 때 생긴다. 쉘리의 <프랑켄슈타인>이 그렇고, 영화 <에일리언>이 그렇다. <파묘> 속 일본 오니도 화림의 몸주신 할머니 앞에서 꼼짝 못하지 않는가!
정보라 작가가 좀 길게, 말 그대로 고딕소설을 쓴다면 참 좋겠다 싶은데 마침 신작 소설을 출간하셨나보다. 고딕은 아닌 것 같지만.
작가의 신작 제목을 영감 얻어, 분노와 슬픔과 원한이 넘치는 현 세계에 상처 입고 짓밟힌 여리고 보잘것 없는 것들에게 감히 명령해 본다. 이미 호주나 제주도 어느 섬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토끼 사태'는 생태계를 걱정하는 환경론자 시각에서 심각하게 우려되지만 토끼계의 입장에서는 이처럼 통렬한 승리가 어디 있을까.
"전 지구의 토끼들은 더 이상 참지 말고 봉기하라."
https://naver.me/FfAn4qF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