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현우 작가의 ‘쇳밥일지’를 주제로, 예비 책친구 한 분과 함께 온라인으로 독서 모임을 진행했습니다.
대화 내용을 책방에도 공유합니다. 형식을 정하지 않은 자유로운 대화를 나누었기 때문에 내용이 정리 되지 않은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습니다.
- 참가자 : 구름이, 바람이(가명, 책방에는 추후 가입 한다고 하십니다.)
- 일시 : 2024년 2월 23일
바람이 : 저는 창원, 통영의 공업단지쪽과 교류하는 직업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직접 용접하고 공장일 하시는 분들을 많이 봤어요.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서 생생한 현장감을 느끼고 많이 압도되었어요. 눈 앞에서 용접을 보는 듯한 신선한 충격을 느끼기도 했구요. 구름이님은 어떠셨어요?
구름이 : 읽으면 읽을수록 이 천현우라는 작가가, 육체노동보다는 공부가 더 잘 어울리는 사람일수도 있겠다는 개인적인 추측이 들었어요. (육체노동 하는 모습을 본 적은 없기도 하지만) 작가로서의 관찰력과 표현력이 뛰어난 사람이고, 그래서 글을 쓰고 연구를 해야 하는 사람인데 타고난 환경 때문에 육체노동을 하는 사람이다! 하고 혼자 감히 생각했죠. 그 만큼 글솜씨가 뛰어나더라구요.
그리고 그 글솜씨로 평범한 남성 청년의 내면을 솔직하게 기술했더군요. 연애도 하고 싶고 놀고도 싶은 본인의 욕망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한계도 인정하고, 반성도 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단편적으로 끝내는 게 아니라 연속적으로 발전시키는 걸 따라 가는 게 재밌었어요.
바람이 : 저는 사실 그런 남성들의 욕망에서 거북함을 느낄 때가 많아요. 왜냐하면 ‘기득권 남성 집단들의 욕망’이 ‘남성 전체 집단의 욕망’으로 대표되는 경우가 많으니까. 근데 이 책에 나타난 욕망은 매우 날것이었음에도 ‘쇠락한 공업 도시의 삶’을 제가 알고 있기 때문에 이해가 되었어요. 집안 환경이 좋지 않은 공업 고등학생의 치열한 삶부터 시작해서 지방 청년으로서 자기 삶에 대해서 포장하지 않은 솔직한 서사를 읽으며, 이 사람의 삶을 이해하고 공감하고 응원하게 되더라고요.
그리고 용접이라는 게 정말 위험하거든요. 제가 직접 지켜 본 바로는 정말 사람이 쉽게 죽는 일이에요. 무거운 쇠판을 잡아 올리다가 떨어뜨렸을 때 그 밑에 사람이 있었다거나 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런 위험한 현장의 일을 글로 써 내는 일은 이 사람 밖에는 못 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이 글의 후반부에 나오는 르포 기자 등 사회적으로 인정 받는 사람들이 쓴다고 이런 글이 절대 나올 수 없거든요. 그래서 이 분이 힘든 일을 그만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과 동시에, 이 현장을 떠나지 말고 계속 현장의 글을 써 줬으면 좋겠다는 이율배반적인 생각이 들더라구요. 정말 감동 많이 받았어요. 작가 본인이 속한, 월 200 초반을 받는 청년 용접공의 삶을 조명한 자체가 현대 한국에 굉장히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구름이 : 맞아요. 이 분과 같은 환경을 가진 사람들이 여러 가지 이유로 목소리를 잘 내지 못 하고 있는데, 그 와중에 작문 능력과 시사에 밝은 시야를 가진 천현우 작가가 글을 쓰는 것 자체가... 어쩌면 천현우 작가 개인에게는 작가로서의 자아실현일 수도 있었겠지만 결과적으로는 이 사회에 부족한 목소리를 제시 했잖아요. 이 부분이 공공의 성격을 띠고 있는 것 같아요.
바람이 : 이 책을 쓴 작가, 출판을 도운 사람, 추천한 사람, 사서 읽은 사람 모두 그 공공선에 기여를 하고 있는 것이고요. 그리고 2차 3차 창작 등으로 변주 되거나 영상으로 재생산 되어 더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가지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어요. 이게 정말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실인데, 아직 관련된 창작물이 부족해서 ‘그 현실을 알고 싶으면 이 창작물을 읽어 봐’라고 할 수 있는 매개가 부족하니까요. 그 중에서도 책은 특히 고전이거나 특정 정치적 성향을 띠면 주변에 추천하기 한계가 있는데 이 책은 접근성도 좋기 때문에 모두가 꼭 읽어야 하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직접 2차 3차 창작을 하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더군요.
구름이 : 작가도 책 속에서 본인의 당사자성에 한계를 인정하는 부분이 있었잖아요 (바람이 : 그 부분 정말 좋았어요) 근데 저는 아직 지방 청년공의 당사자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하고, 천현우 작가가 이 책 한 권으로 무리 없이 잘 먹고 잘 살 만한 인세를 벌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ㅎㅎ
바람이 : 그리고 저는 지방에서 태어났지만 이제 서울로 편입되어 가는 상태인데, 지방에서 태어나 지방에서 살기를 선택하거나 지방을 떠나지 못 하는 청년들도 많기 때문에 다양한 분야에서의 천현우가 생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예를 들어 중년 여성 청소노동자, 청년 여성 서비스직 종사자, 농업 종사자 등… 우리가 모르는 그 현장의 줌을 당기는 창작물이 많아 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요즘은 그런 현장의 문제에서 일부러 눈을 돌리고 있는 것 같아서요.
구름이 : 맞아요. 요즘 미디어에서는 펜트하우스 같은 집에서 본부장같은 직함 달면서 멋있게 사는 사람들만 조명 하잖아요. 책도 판교 IT 종사자같은 특정 직업성과 지역성을 띤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이 생산 및 소비되고요. 그런 사람들의 삶은 상위 몇 퍼센트 밖에 되지 않는데, 미디어를 통해서 일종의 ‘정상성’과 ‘특별성’을 동시에 띠면서 소비 되어야 마땅하다는 식의 지위를 누리고 있어요. 저는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한국 사회가 상류사회(하이쏘사회)를 동경하는 비상류사회 사람들로 구성된 태국처럼 특정 ‘계층’ 자체를 선망하는 사회로 변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그들의 삶이 SNS를 통해 생산되고 소비되면서… (바람이 : 전 세계적으로 그렇게 변하고 있죠.) 그래서 저는 말씀하신 것처럼 조금 더 현실에서의 일상을 다룬 이야기가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생각이 들었어요. 저도 그런 이야기를 많이 해보려고 노력하구요.
우리가 이 사회에서 어떤 계층과 계급에 속해 있는지를 계속 객관화 하다 보면, 내 위치에서만 할 수 있는 나만의 이야기가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그 이야기가 사실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현실일 수 있는 거죠. 예를 들면 책 속의 천현우 작가는 환경도 힘들고, 외적 자신감도 떨어지고, 사랑하는 사람과 만나 가정도 꾸리고 싶겠지만 그게 어려운 상태잖아요. 사실 저도 연애, 결혼에 관심이 없다가 최근에 혼자 사는 것에 한계를 느끼고 왜 사람들이 연애, 결혼하는지 알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리고 나서 다시 깨달은 건, 서울에서 결혼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은 사실 선택 된 몇 명 밖에 없다는 거였어요. 제가 생각을 바꾸는 건 중요하지 않더군요. 지방에 계신 부모님은 형편이 빠듯하시고, 저 역시 서울에서의 삶을 지탱하느라 투잡을 하고 근검절약이 생활화되어 있는데 이런 부분을 서울 사람들은 쉽게 상상하지 못 하더라고요. 이런 문제는 지금의 저만 할 수 있는 이야기 같으면서도, 막상 공유하면 많은 사람들이 공감해 줄 거라 생각해요. 지방에 일자리가 없어서 유출되는 여성들이 정말 많잖아요. 과연 그 사람들이 어디로 가고 있는가… 서울에 정착하기 위해 부지런히 일 하고, 서울 사람들의 ‘정상성, 표준성’을 흉내내기 위해 자기검열 하고, 그 안에 융화 되지 못하는 것에 불안감을 느끼느라 목소리를 잘 못 내고 있을 거라 생각해요. 제가 그랬거든요.
바람이 : 맞아요 저나 구름님은 지방에서 서울로 정착할 기회를 가진 소수의 사람들이죠. 이 조차도 자본주의, 지역주의 계급의 산물일 수 있어요. 그리고 그런 기회를 가졌음에도 수도권 자산을 가진 사람들과 비교했을 땐 불리해지고… 이 책이 다루고 있는 서울과 지방의 괴리감과이나 쇠락한 공업 도시의 배경 등을 생각했을 때, 그런 관점에서의 이야기도 필요하다 생각해요.
구름이 : 그리고 결혼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요. ‘결혼’이라는 건 아직 우리 사회에서 가부장적 성격을 띠고 있기도 하지만 인간의 생애 주기적 관섬에서 보면 타인과 경제 공동체, 생활 공동체를 형성하며 공존하는 방법을 배우고, 자녀를 낳게 되면 양육을 통해 혼자 살 때보다 차원이 다른 책임감을 가지게 되잖아요. 그런 경험과 책임감이 인간의 시야를 넓히고 성숙하게 해 준다고 생각 하거든요. 그러니까 말 하자면, 연애나 결혼을 하지 못 하면 그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성숙의 기회를 얻지 못 하는 거죠. 저도 마찬가지구요. (다른 방식을 통해 채워질 수도 있겠지만요.)
바람이 : 제가 최근에 본 통계인데, 요즘 저희가 초저출생 사회에 살고 있지 않습니까? 요즘 태어나는 아이들은 연 소득 6천 이상의 가정, 직업으로 예를 들면 대기업 직원 + 공무원 혹은 대기업 직원 + 대기업 직원의 결합이 많더라구요. 결혼, 가정 형성, 출산, 양육도 계급화되고 있다는 거죠. 그러면서 결혼 이전의 전 단계, 즉 좋은 파트너를 만나는 단계 까지도 계급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점에서 말씀이 이해가 됩니다. (구름이 : 그런 관점에서 청년 천현우의 삶이 공감이 많이 되더라구요.) 맞아요. 물론 천현우 작가의 그런 욕망은 가부장적 관점을 어느 정도 띠고 있어요. 저희가 살아 가는 불확실성의 사회에서 연애에 대한 욕망과 공동체 형성에 대한 욕망을 분리하여 그런 가부장적 시선의 변화를 촉구할 필요도 있고요. 그리고 결혼 전에 재산, 직업 등 다양한 조건을 따지는 것도 불확실성이 낳은 사회적 현상일 수 있으니 별개의 관점으로 접근해야 할 것이구요.
구름이 : 그런데 그런 조건을 따지는 현상도 굉장히 수도권, 도시적인 풍조란 생각이 들어요. 제가 고향에서 식당 알바를 할 때 친했던 친구들이 있어요. 그 친구들 다 가정 환경에 어려움이 있었고, 주방 직원이라 일도 힘들었어요. 하루 열 세시간을 매장에 있으면서 음식 손질하고 화구 앞에서 요리하고… 그러다 퇴근하면 자기들끼리 소주 한 잔 하고, 다음날 다시 성실하게 출근하고… 저는 이런 삶이 굉장히 진실되다고 느꼈거든요. 이 책을 읽으며 그 친구들이 생각났어요. 말하자면, 천현우 작가가 제 친구처럼 느껴지는 거죠. 어려운 환경인데도 비관하지 않고, 남한테 딱히 폐 안 끼치고, 주어진 자기 몫 성실하게 해내고, 어떻게든 웃으며 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 충분히 진실되고 성실한 삶을 살아 가고 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돈 없고 학력 낮으니까 결혼하지 마’라고 손가락질 당하는 거예요. 이게 너무 안타까운 거죠.
바람이 : 요즘 그런 혐오적 프레임이 심각하잖아요. 어떤 사람들의 시선으로는 저나 구름님도 결혼을 하면 ‘돈도 없는데 지방에서 꾸역꾸역 올라와서 주제에 안 맞게 새끼 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는 거죠. 사실은 그런 사람들도 자기만의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사회적 안전망을 갖추고 있어야 하는 건데! 성실하고 즐겁게 자기 삶을 살다가 가정을 이루는 것은 사실 인간으로서의 당연한 욕망이고 그런 사람들이 사회를 구성하는 건데, 점점 우리 사회에서 간과되고 있어요.
구름이 : 문제를 인식하는 건 필요하다 생각하거든요? '물가가 너무 비싸서 살기 힘들다, 노동소득이 적어서 아무리 일해도 집값을 마련 할 수가 없다!' 이런 거. 그런 문제 인식은 좋은데, 문제 의식은 잘못된 방향으로 발현 되는 것 같아요. 물가가 적으면 물가 안정을, 노동 소득이 적으면 최저 임금 인상을 국가에 요구하면서 모두가 다 같이 진보할 수 있는 방향으로 발현이 되어야 하는데, 그게 아니라 약자에 대한 공격으로 발현이 돼요. ‘가난하면 아무 것도 못 해!’ 에서 ‘가난하면 아무 것도 하지마!’로… 정상성에 대한 과한 기준을 형성하고, 그 프레임 밖으로 벗어난 사람들의 목소리를 완전히 뭉개 버리는 거죠. 그 안에 자기 자신이 속해 있더라도. 그런데 천현우씨는 그 프레임 밖에서 ‘아닌데? 여기도 사람 사는데?’ 무덤덤 하게 한 마디 던지고 또 자기만의 용접을 하러 홀연히 떠나죠.
바람이 : 맞아요! 지방에도 사람 사는데? 용접 하는 20대 청년도 있는데? 라고 목소리를 내는 책이예요.
상당히 올드패션 감성 같아요. 1970~80년대 미국 동부의 쇠락을 다루는 미디어가 많이 나왔잖아요. 공업 도시나 항구 도시 등… 우리 사회에서도 그런 게 필요한데, 적절한 타이밍에 많은 우연이 겹쳐서 잘 나온 책이 아닌가 싶어요. 우연히 글을 잘 쓰고 독서를 좋아 하는 천현우 작가가 좋은 조력자를 만나서 시야를 확장시키고, 또 좋은 기회를 많이 만나기 책도 출판하고… 이런 기회가 더 다양한 지방 청년 노동자에게 허락 된다면 좋겠어요.
최근에 봤던 ‘다음소희’라는 영화도 떠올랐어요. 남성 중장년 노동의 극단은 위험한 중공업에서 최저임금 받는 직종에 몰려 있는 것처럼, 여성 청년 노동의 극단은 콜센터 등 정서 노동을 요구하는 서비스직에 몰려 있잖아요. 그 작품도 제 3자의 눈에서 콜센터 노동자의 환경을 잘 담아낸 작품인데,그런 작품들이 더 많아 진다면 좋겠어요.
여기까지입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천현우 작가의 ‘쇳밥일지’를 주제로, 예비 책친구 한 분과 함께 온라인으로 독서 모임을 진행했습니다.
대화 내용을 책방에도 공유합니다. 형식을 정하지 않은 자유로운 대화를 나누었기 때문에 내용이 정리 되지 않은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습니다.
- 참가자 : 구름이, 바람이(가명, 책방에는 추후 가입 한다고 하십니다.)
- 일시 : 2024년 2월 23일
바람이 : 저는 창원, 통영의 공업단지쪽과 교류하는 직업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직접 용접하고 공장일 하시는 분들을 많이 봤어요.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서 생생한 현장감을 느끼고 많이 압도되었어요. 눈 앞에서 용접을 보는 듯한 신선한 충격을 느끼기도 했구요. 구름이님은 어떠셨어요?
구름이 : 읽으면 읽을수록 이 천현우라는 작가가, 육체노동보다는 공부가 더 잘 어울리는 사람일수도 있겠다는 개인적인 추측이 들었어요. (육체노동 하는 모습을 본 적은 없기도 하지만) 작가로서의 관찰력과 표현력이 뛰어난 사람이고, 그래서 글을 쓰고 연구를 해야 하는 사람인데 타고난 환경 때문에 육체노동을 하는 사람이다! 하고 혼자 감히 생각했죠. 그 만큼 글솜씨가 뛰어나더라구요.
그리고 그 글솜씨로 평범한 남성 청년의 내면을 솔직하게 기술했더군요. 연애도 하고 싶고 놀고도 싶은 본인의 욕망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한계도 인정하고, 반성도 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단편적으로 끝내는 게 아니라 연속적으로 발전시키는 걸 따라 가는 게 재밌었어요.
바람이 : 저는 사실 그런 남성들의 욕망에서 거북함을 느낄 때가 많아요. 왜냐하면 ‘기득권 남성 집단들의 욕망’이 ‘남성 전체 집단의 욕망’으로 대표되는 경우가 많으니까. 근데 이 책에 나타난 욕망은 매우 날것이었음에도 ‘쇠락한 공업 도시의 삶’을 제가 알고 있기 때문에 이해가 되었어요. 집안 환경이 좋지 않은 공업 고등학생의 치열한 삶부터 시작해서 지방 청년으로서 자기 삶에 대해서 포장하지 않은 솔직한 서사를 읽으며, 이 사람의 삶을 이해하고 공감하고 응원하게 되더라고요.
그리고 용접이라는 게 정말 위험하거든요. 제가 직접 지켜 본 바로는 정말 사람이 쉽게 죽는 일이에요. 무거운 쇠판을 잡아 올리다가 떨어뜨렸을 때 그 밑에 사람이 있었다거나 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런 위험한 현장의 일을 글로 써 내는 일은 이 사람 밖에는 못 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이 글의 후반부에 나오는 르포 기자 등 사회적으로 인정 받는 사람들이 쓴다고 이런 글이 절대 나올 수 없거든요. 그래서 이 분이 힘든 일을 그만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과 동시에, 이 현장을 떠나지 말고 계속 현장의 글을 써 줬으면 좋겠다는 이율배반적인 생각이 들더라구요. 정말 감동 많이 받았어요. 작가 본인이 속한, 월 200 초반을 받는 청년 용접공의 삶을 조명한 자체가 현대 한국에 굉장히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구름이 : 맞아요. 이 분과 같은 환경을 가진 사람들이 여러 가지 이유로 목소리를 잘 내지 못 하고 있는데, 그 와중에 작문 능력과 시사에 밝은 시야를 가진 천현우 작가가 글을 쓰는 것 자체가... 어쩌면 천현우 작가 개인에게는 작가로서의 자아실현일 수도 있었겠지만 결과적으로는 이 사회에 부족한 목소리를 제시 했잖아요. 이 부분이 공공의 성격을 띠고 있는 것 같아요.
바람이 : 이 책을 쓴 작가, 출판을 도운 사람, 추천한 사람, 사서 읽은 사람 모두 그 공공선에 기여를 하고 있는 것이고요. 그리고 2차 3차 창작 등으로 변주 되거나 영상으로 재생산 되어 더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가지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어요. 이게 정말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실인데, 아직 관련된 창작물이 부족해서 ‘그 현실을 알고 싶으면 이 창작물을 읽어 봐’라고 할 수 있는 매개가 부족하니까요. 그 중에서도 책은 특히 고전이거나 특정 정치적 성향을 띠면 주변에 추천하기 한계가 있는데 이 책은 접근성도 좋기 때문에 모두가 꼭 읽어야 하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직접 2차 3차 창작을 하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더군요.
구름이 : 작가도 책 속에서 본인의 당사자성에 한계를 인정하는 부분이 있었잖아요 (바람이 : 그 부분 정말 좋았어요) 근데 저는 아직 지방 청년공의 당사자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하고, 천현우 작가가 이 책 한 권으로 무리 없이 잘 먹고 잘 살 만한 인세를 벌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ㅎㅎ
바람이 : 그리고 저는 지방에서 태어났지만 이제 서울로 편입되어 가는 상태인데, 지방에서 태어나 지방에서 살기를 선택하거나 지방을 떠나지 못 하는 청년들도 많기 때문에 다양한 분야에서의 천현우가 생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예를 들어 중년 여성 청소노동자, 청년 여성 서비스직 종사자, 농업 종사자 등… 우리가 모르는 그 현장의 줌을 당기는 창작물이 많아 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요즘은 그런 현장의 문제에서 일부러 눈을 돌리고 있는 것 같아서요.
구름이 : 맞아요. 요즘 미디어에서는 펜트하우스 같은 집에서 본부장같은 직함 달면서 멋있게 사는 사람들만 조명 하잖아요. 책도 판교 IT 종사자같은 특정 직업성과 지역성을 띤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이 생산 및 소비되고요. 그런 사람들의 삶은 상위 몇 퍼센트 밖에 되지 않는데, 미디어를 통해서 일종의 ‘정상성’과 ‘특별성’을 동시에 띠면서 소비 되어야 마땅하다는 식의 지위를 누리고 있어요. 저는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한국 사회가 상류사회(하이쏘사회)를 동경하는 비상류사회 사람들로 구성된 태국처럼 특정 ‘계층’ 자체를 선망하는 사회로 변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그들의 삶이 SNS를 통해 생산되고 소비되면서… (바람이 : 전 세계적으로 그렇게 변하고 있죠.) 그래서 저는 말씀하신 것처럼 조금 더 현실에서의 일상을 다룬 이야기가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생각이 들었어요. 저도 그런 이야기를 많이 해보려고 노력하구요.
우리가 이 사회에서 어떤 계층과 계급에 속해 있는지를 계속 객관화 하다 보면, 내 위치에서만 할 수 있는 나만의 이야기가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그 이야기가 사실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일반적인 현실일 수 있는 거죠. 예를 들면 책 속의 천현우 작가는 환경도 힘들고, 외적 자신감도 떨어지고, 사랑하는 사람과 만나 가정도 꾸리고 싶겠지만 그게 어려운 상태잖아요. 사실 저도 연애, 결혼에 관심이 없다가 최근에 혼자 사는 것에 한계를 느끼고 왜 사람들이 연애, 결혼하는지 알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리고 나서 다시 깨달은 건, 서울에서 결혼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은 사실 선택 된 몇 명 밖에 없다는 거였어요. 제가 생각을 바꾸는 건 중요하지 않더군요. 지방에 계신 부모님은 형편이 빠듯하시고, 저 역시 서울에서의 삶을 지탱하느라 투잡을 하고 근검절약이 생활화되어 있는데 이런 부분을 서울 사람들은 쉽게 상상하지 못 하더라고요. 이런 문제는 지금의 저만 할 수 있는 이야기 같으면서도, 막상 공유하면 많은 사람들이 공감해 줄 거라 생각해요. 지방에 일자리가 없어서 유출되는 여성들이 정말 많잖아요. 과연 그 사람들이 어디로 가고 있는가… 서울에 정착하기 위해 부지런히 일 하고, 서울 사람들의 ‘정상성, 표준성’을 흉내내기 위해 자기검열 하고, 그 안에 융화 되지 못하는 것에 불안감을 느끼느라 목소리를 잘 못 내고 있을 거라 생각해요. 제가 그랬거든요.
바람이 : 맞아요 저나 구름님은 지방에서 서울로 정착할 기회를 가진 소수의 사람들이죠. 이 조차도 자본주의, 지역주의 계급의 산물일 수 있어요. 그리고 그런 기회를 가졌음에도 수도권 자산을 가진 사람들과 비교했을 땐 불리해지고… 이 책이 다루고 있는 서울과 지방의 괴리감과이나 쇠락한 공업 도시의 배경 등을 생각했을 때, 그런 관점에서의 이야기도 필요하다 생각해요.
구름이 : 그리고 결혼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요. ‘결혼’이라는 건 아직 우리 사회에서 가부장적 성격을 띠고 있기도 하지만 인간의 생애 주기적 관섬에서 보면 타인과 경제 공동체, 생활 공동체를 형성하며 공존하는 방법을 배우고, 자녀를 낳게 되면 양육을 통해 혼자 살 때보다 차원이 다른 책임감을 가지게 되잖아요. 그런 경험과 책임감이 인간의 시야를 넓히고 성숙하게 해 준다고 생각 하거든요. 그러니까 말 하자면, 연애나 결혼을 하지 못 하면 그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성숙의 기회를 얻지 못 하는 거죠. 저도 마찬가지구요. (다른 방식을 통해 채워질 수도 있겠지만요.)
바람이 : 제가 최근에 본 통계인데, 요즘 저희가 초저출생 사회에 살고 있지 않습니까? 요즘 태어나는 아이들은 연 소득 6천 이상의 가정, 직업으로 예를 들면 대기업 직원 + 공무원 혹은 대기업 직원 + 대기업 직원의 결합이 많더라구요. 결혼, 가정 형성, 출산, 양육도 계급화되고 있다는 거죠. 그러면서 결혼 이전의 전 단계, 즉 좋은 파트너를 만나는 단계 까지도 계급화가 진행되고 있다는 점에서 말씀이 이해가 됩니다. (구름이 : 그런 관점에서 청년 천현우의 삶이 공감이 많이 되더라구요.) 맞아요. 물론 천현우 작가의 그런 욕망은 가부장적 관점을 어느 정도 띠고 있어요. 저희가 살아 가는 불확실성의 사회에서 연애에 대한 욕망과 공동체 형성에 대한 욕망을 분리하여 그런 가부장적 시선의 변화를 촉구할 필요도 있고요. 그리고 결혼 전에 재산, 직업 등 다양한 조건을 따지는 것도 불확실성이 낳은 사회적 현상일 수 있으니 별개의 관점으로 접근해야 할 것이구요.
구름이 : 그런데 그런 조건을 따지는 현상도 굉장히 수도권, 도시적인 풍조란 생각이 들어요. 제가 고향에서 식당 알바를 할 때 친했던 친구들이 있어요. 그 친구들 다 가정 환경에 어려움이 있었고, 주방 직원이라 일도 힘들었어요. 하루 열 세시간을 매장에 있으면서 음식 손질하고 화구 앞에서 요리하고… 그러다 퇴근하면 자기들끼리 소주 한 잔 하고, 다음날 다시 성실하게 출근하고… 저는 이런 삶이 굉장히 진실되다고 느꼈거든요. 이 책을 읽으며 그 친구들이 생각났어요. 말하자면, 천현우 작가가 제 친구처럼 느껴지는 거죠. 어려운 환경인데도 비관하지 않고, 남한테 딱히 폐 안 끼치고, 주어진 자기 몫 성실하게 해내고, 어떻게든 웃으며 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 충분히 진실되고 성실한 삶을 살아 가고 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돈 없고 학력 낮으니까 결혼하지 마’라고 손가락질 당하는 거예요. 이게 너무 안타까운 거죠.
바람이 : 요즘 그런 혐오적 프레임이 심각하잖아요. 어떤 사람들의 시선으로는 저나 구름님도 결혼을 하면 ‘돈도 없는데 지방에서 꾸역꾸역 올라와서 주제에 안 맞게 새끼 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는 거죠. 사실은 그런 사람들도 자기만의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사회적 안전망을 갖추고 있어야 하는 건데! 성실하고 즐겁게 자기 삶을 살다가 가정을 이루는 것은 사실 인간으로서의 당연한 욕망이고 그런 사람들이 사회를 구성하는 건데, 점점 우리 사회에서 간과되고 있어요.
구름이 : 문제를 인식하는 건 필요하다 생각하거든요? '물가가 너무 비싸서 살기 힘들다, 노동소득이 적어서 아무리 일해도 집값을 마련 할 수가 없다!' 이런 거. 그런 문제 인식은 좋은데, 문제 의식은 잘못된 방향으로 발현 되는 것 같아요. 물가가 적으면 물가 안정을, 노동 소득이 적으면 최저 임금 인상을 국가에 요구하면서 모두가 다 같이 진보할 수 있는 방향으로 발현이 되어야 하는데, 그게 아니라 약자에 대한 공격으로 발현이 돼요. ‘가난하면 아무 것도 못 해!’ 에서 ‘가난하면 아무 것도 하지마!’로… 정상성에 대한 과한 기준을 형성하고, 그 프레임 밖으로 벗어난 사람들의 목소리를 완전히 뭉개 버리는 거죠. 그 안에 자기 자신이 속해 있더라도. 그런데 천현우씨는 그 프레임 밖에서 ‘아닌데? 여기도 사람 사는데?’ 무덤덤 하게 한 마디 던지고 또 자기만의 용접을 하러 홀연히 떠나죠.
바람이 : 맞아요! 지방에도 사람 사는데? 용접 하는 20대 청년도 있는데? 라고 목소리를 내는 책이예요.
상당히 올드패션 감성 같아요. 1970~80년대 미국 동부의 쇠락을 다루는 미디어가 많이 나왔잖아요. 공업 도시나 항구 도시 등… 우리 사회에서도 그런 게 필요한데, 적절한 타이밍에 많은 우연이 겹쳐서 잘 나온 책이 아닌가 싶어요. 우연히 글을 잘 쓰고 독서를 좋아 하는 천현우 작가가 좋은 조력자를 만나서 시야를 확장시키고, 또 좋은 기회를 많이 만나기 책도 출판하고… 이런 기회가 더 다양한 지방 청년 노동자에게 허락 된다면 좋겠어요.
최근에 봤던 ‘다음소희’라는 영화도 떠올랐어요. 남성 중장년 노동의 극단은 위험한 중공업에서 최저임금 받는 직종에 몰려 있는 것처럼, 여성 청년 노동의 극단은 콜센터 등 정서 노동을 요구하는 서비스직에 몰려 있잖아요. 그 작품도 제 3자의 눈에서 콜센터 노동자의 환경을 잘 담아낸 작품인데,그런 작품들이 더 많아 진다면 좋겠어요.
여기까지입니다.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